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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xd Dec 23. 2023

에필로그


네 엄마를 어떻게 만났냐면how I met your mother이라는 미드가 있다. 시즌9까지 방영된 이 드라마에서 실제 엄마는 시즌8 마지막 화에서나 등장하고 시청자들은 마지막 시즌이 될 때까지도 누가 엄마인지 알 수 없었다. 제주기억이 vol.1에서 vol.2를 지나 vol.3까지 이어지면서 이 드라마를 종종 떠올렸고, 독자들이 행여 이 여자 이러다 제주에 사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다. 고작 3주간의 여행을 이렇게 길게 가져갈 일인가 회의감이 들 때면 b는 11분을 묘사한 장편 소설도 있어, 라며 나의 글쓰기를 지지해 줬다.

지난 4월에 시작해 무려 8개월간 일주일에 두 번씩 제주 이야기를 연재하며 에필로그 쓰는 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일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 애를 먹었고, 어떤 날은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막상 그날이 되니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신기기만 할 따름이고 오래된 딱지떨어져 나간 듯 약간은 허전하다.

제주기억 시리즈가 완결되는 사이 시간이 상당히 기 때문에 제주기억에 등장했던 인물들 이후에 대해 말해 보자면,

병원 검사를 위해 상경한 엄마에게 서점 주인이 추천해 준 박노해의 사진집을 선물하며 아이스크림 막대기에 써진 글자를 읽어보라고 했다. 엄마는 어눌한 음성으로 한 글자씩 또박또박 읽었다. 태어나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점에서처럼 또다시 또르르 눈물 흘다. 그날 함께 박노해 사진전에 다녀왔고 엄마가 계단참에서 핸드폰으로 포스터를 찍는 장면을 아주 흐뭇하게 바라본 기억이 난다. 엄마는 병원 가는 횟수가 더 많아졌고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하신다.


도민의 이야기를 써도 되겠느냐고 물었을 때 도민은 편하게 써도 된다면서도 한 가지 단서를 달았다. 노총각 행색은 아닌 걸로 묘사해 달라는 거였다. 매력적인 사람이 될 거라고 호언장담했는데 어떻게 그려졌을지 모르겠다. *혹시 도민의 매력에 빠지신 분이 계시다면 꼭 알려주세요. 현재 도민은 머리를 탈색해 노란 머리를 하고 여행을 다니고 있다. 도민과 따로 연락하지는 않지만 인스타를 통해 그가 찍은 제주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하고 있다.

j는 집에 돌아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여행에 관한 책을 택배로 보내줬다. 그리고는 내가 헤어지면서 준 책-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인생은 한 번뿐을 돌고 도는 여행하는 책으로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좋다고, 그러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이후 j는 유럽 여행을 다녀왔고 근사한 연인도 생겼다. 사랑스러운 그녀가 행복하길 멀리서 응원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작가가 된 후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 문득 제주 이야기를 떠올렸고 이 방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까 하다 일기이자 수필이자 소설의 형식을 빌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글을 쓰며 다시 한번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고 제주여행으로 내가 얼마나 단단해졌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앞서 밝혔듯이 제주기억은 사실을 적시하고 있지 않으며 필요에 따라 가공된 이야기라는 점 다시 한번 밝힌다.


제주기억 시리즈를 처음부터 함께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vol.1은 지쳐있던 중년의 내가 여행을 시작하면서 오는 해방감에 관한 것이었다면, vol.2는 여행을 통해 내 안의 나와 만나면서 잊고 있던 꿈을 되새기는 이야기이고, vol.3은 다시 희망을 발견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제주기억 전체로 놓고 보면 bxd의 탄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브런치 작가로서 글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독자들로서는 이미 결론을 알고 보았던 셈이다. 참고로 필명인 bxd는 표면적으로 보고 듣다의 이니셜이지만, 이미 많은 분들이 예상하셨듯 b는 제주기억 속 그 b가 맞다. 그리고 d는 b가 불렀던 나의 별명이다. bxd는 b와 d가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을 활자로 구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b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b의 변화가 의아했을 분들이 계실 텐데, b는 내가 없는 동안 지난 5년간의 시간을 돌이켰고 종종 눈물 흘렸다고 했다. 우울증이 왔나 생각했고 지난 시간을 흘려보낸 것과 나에게 한 말과 행동을 후회했다고 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애가 닳았다... 이후 b는 나의 글을 가장 먼저 열람하는 첫 번째 독자이자 편집자로서 나만큼이나 내 글에 열과 성을 다했다. 글의 방향이나 문장의 수정을 제안하기도 했으며, 어떤 글은 크게 혹평을 해서 올린 후 다시 작성해 올린 적도 있다. 내가 늘지 않는 조회 수와 좋아요 수에 의기소침해져 있으면 하나씩 쌓다 보면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있을 거야, 라며 응원해 주다가도 왜 자신만 등장하면 좋아요 수가 눈에 띄게 주느냐며 속상해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 글을 읽던 b에게 그만 보라고 핀잔을 주면 b는 네 글을 보고 있으면 편안해져, 라고 말했었다.


단언컨대 b가 아니었다면 이 글은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b는 더 이상 내 곁에 없다.

앞으로 무슨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계속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면 b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글 쓸 때가 행복할 시간일 거야, 넌. 난 알아.


지금까지 긴 대장정을 함께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제주기억에 등장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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