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검사-PET CT

by bxd


“뭐 검사한 거여?”


방사선과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물었다. PET-CT(양전자 방출 단층 촬영술)는 약물을 주입해 전신에 흡수될 때까지 한 시간을 기다렸다가 촬영하는데, 그 결과에 따라 암의 기수를 대략적으로 판단하고 수술 혹은 항암 여부가 결정된다.


“이따 얘기해 줄게.”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피했다. 휴게실에 가 창가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며 과도로 배를 깎아 먹었다. 오늘 또 하나의 시술이 끝나면 아버지에게 말할 것이다. 그나저나 어떻게 말해야 하지. 또 어떤 얼굴을 하고 있어야 하지. 배 하나를 다 먹는 동안 머릿속에는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시술이 끝나고 의사는 잘 끝났다며, PET-CT 결과도 잠깐 보자며 화면에 띄웠다.


“일단, 전이는 없어 보이네요.”

“다행이네요.”

“정확한 건 열어 봐야 아는 거니까. 이걸로는 안 보일 수 있거든요. 수술은 어디서 하실 건가요?”

“여기서 해야죠. 선생님만 믿고 있는데.”

“수술은 내가 안 하는데?”


의사는 수술은 외과에서 진행한다며 가장 빠른 날로 예약을 잡아두겠다고 했다. 병실로 돌아와서는 아버지를 남겨두고 비상구 층계참에 앉아 동생에게 전화했다.


“결론만 말할게. 일단, 전이는 없어 보인대. 초기라는 거지. 수술할 수 있대. 시술도 성공했고. 오늘 나올 수 있는 최고의 아웃풋이 나온 거야.”


수화기 너머로 안도하는 웃음소리와 코 먹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나는 동생이 틀림없이 행복한 눈물을 흘리고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터뜨리는 나와 달리 동생은 참고 견디는 쪽이었다. 어제 일이 동생에게도 내내 신경 쓰였을 거였다.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하며 속앓이 했을지 모른다. 이전까지 구태여 알 필요 없었던 동생의 모습이었다. 나는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어제 미안했다. 오늘은 걱정하지 말고 쉬어.”


동생은 여전히 웃음소리와 코 먹는 소리를 동시에 내며 어, 대답했다. 전화를 끊고는 앉은자리에서 길게 숨을 토해냈다. 이제 한시름 놓았다. 긴장이 풀리니 참았던 감정이 북받쳤다. 앞으로 어떡해야지.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최대한 빨리 수술을 진행해 전이가 일어나기 전에 암이 더 커지기 전에 도려내야 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얘기해야 한다. 병실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천장을 보고 누워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부지, 딸 믿지?”


아버지가 잠긴 목소리로 어, 라고 했다.


“오늘 낮에 한 건 암 검사였어. 암이 얼마나 퍼져있는지 그거 확인하는 거였어.”

“그려?”


아버지는 그다지 놀라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내가 물었다.


“알고 있었어?”

“그런 것 같대.”

“그 결과에 따라 수술할지 항암할지 결정되는데 아까 의사가 잠깐 말해줬어. 아버지는 수술할 수 있대. 잘 된 거야. 수술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하늘이 도운 거야. 오늘 진짜 잘했어.”


아버지는 알아듣는 건지 못 알아듣는 건지 눈만 꿈뻑댔다.


“아부지, 너무 걱정하지 마. 잘라내면 돼.”


그 말을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했다. 수술해도 2년을 넘기기 힘들다는 사실을 아버지도 언젠가 알게 되겠지. 그때 아버지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 코끝이 따가워졌다. 나는 아버지의 머리통을 여러 번 더 두들기고 나왔다. 크기가 좀 클 뿐 곧 돌을 앞두고 있는 둘째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식탁에 앉아 종이에 간과 담도와 담낭과 십이지장과 췌장을 그려가며 지난 십일 동안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엄마는 진지한 얼굴을 하고 내 말을 들었다. 나의 예상과 달리 엄마는 아버지가 암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엄마를 과대평가했네. 나는 우리 엄마가 눈치챘을 줄 알았어.”

“참내, 너는 엄마 알기를 우습게 알어.”


잔뜩 심각해 있던 인상이 풀리며 엄마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 모습이 엉뚱하면서도 귀여워 웃음이 났다. 왜 아버지는 엄마의 이런 매력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 구박받고 멸시받으면서도 아버지 곁에 붙어 있기를 선택한 엄마. 아버지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안간힘 쓰는 한 여자가 보이지 않는 것일까. 나는 아버지가 안타까웠다. 삶의 기쁨을, 생의 진정한 의미를 이렇게 가까이 두고도 멀리서 찾으려는 아버지가 미웠다.


엄마는 약을 먹고 잠들었다. 고지혈증으로 인해 혈액이 끝까지 순환하지 않는 엄마는 자주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고 했고, 약에는 수면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가급적 약에 의존하지 않으려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엄마는 어지럼증 약을 복용하고 잤다. 나는 그런 엄마가 걱정되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힘든 일이 펼쳐질지 눈에 선했다. 나는 잠든 엄마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내 머리맡에 내려두고 아버지 방으로 갔다. 둘은 각방을 쓴 지 오래였다.


뒤통수에 손깍지를 끼고 이불바닥에 누웠다. 여기저기 금이 가고 곰팡이가 핀 벽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 집도 많이 늙어 있었다. 20여 년 전 아버지가 손수 황토 흙을 덧발라 지은 집이었다. 아홉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일찍이 가장이 된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공고에 들어가 기술을 배웠고 졸업한 후에는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뭐든 빨리 배우고 성실해 막노동을 하면서도 어깨너머로 집 짓는 기술을 터득했다. 이 집도, 고구마 공장도, 하우스도 아버지가 손수 지은 거였다. 그때만 해도 어지간한 별장 저리 가라고 할 만큼 근사했던 이 집은 이제 하자 투성이가 되었다. 황토 바닥은 여기저기 꺼졌고 매년 곰팡이가 늘어갔다. 일 년에 두 번 명절 때마다 엄마가 방바닥에 도배를 했지만 어디 누수가 되는지 금세 곰팡이가 다시 피었다. 여기저기 덧대고 해지고 무너진 벽을 보니 아버지를 보는 것 같았다. 이 집은 아버지와 함께 무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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