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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낭만 Jul 20. 2023

공포영화와 뜬금없는 취향




선천적으로 나에게 부재하는 것이란 ‘물리적 고통’과 ‘겁’일 것이다. 아예 없다는 뜻은 아니고 ‘상대적으로’ 봤을 때 적다는 뜻이다. 예를 들자면, 대미지가 크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타투를 할 때, 아픈 기색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던가(아프다는 것과 거리가 아주 멀었으니 당연하다), 소스라칠 정도로 놀라게 만드는 장면, 또는 고통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한 잔인한 장면을 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던가. 남들의 고통과 겁 지수가 10이라면 나는 3 정도 될 것이다.


나는 사사로운 모든 일에서 회피 대신 직면을 선택하는 편이다. 물론 즐길 수 없을 만큼 두려운 상황을 마주하면 내심 세상 끝으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눈을 딱 감고 발을 담근다. 그리곤 한참이나 꾹 참고 나서 나만의 임시방편으로 내달린다. 멀리 가지도 않는다. 기껏 해봐야 노트북에서 마우스로 몇 번 클릭하면 열리는 인터넷창이 그 장소다.


검고 붉은 공포영화에서 쉬어가는 일은 나의 오랜 휴식 방법 중 하나다. 워낙 잔인하거나 기이한 서사, 이미지를 보고서 겁을 먹지 않는 타입이라, 남들은 그런 나를 향해 독특한 취미를 가졌다며 입을 벌리고 얘기한다. 그것만큼 현실과 동떨어진 공간도 없다. 살인마는 아니지만, 특히 괴물이나 좀비, 귀신은 다른 차원으로 가지 않는 이상 만나기 어려운 존재들이다. 나는 그들이 물어뜯고 부수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한다.


새로운 영화를 보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이미 두 번 이상은 봤던 작품을 반복해서 시청한다. <패컬티>, <도플갱어>, <캐리>, <샤이닝>, <장화, 홍련> 등 다양한 작품이 해당되는데, 의식의 흐름이 뇌를 지배한 사람이라 그런지 공포적인 요소 말고도 다른 곳에 시선을 두기도 한다. 공감할 사람이 적겠지만, 나는 호러 영화 특유의 기묘한 아름다움을 매우 좋아한다. 또는 극 중 인물들의 옷차림, 그들이 대화를 하거나 중요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을 보며 나의 취향을 찾곤 한다.


예컨대, <주온> 비디오판에서 가장 초반에 등장하는 과외 선생님이 그렇다. 일본 영화가 가진 흐릿하고 푸른 색감, 작품 속 화창한 날씨, 으스스한 분위기, 그리고 2000년대 초반의 유행을 따르는 인물의 옷차림과 줄이 덜렁거리는 헤드폰, 거기에 창가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낭만적인 제스처까지 내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그래서 한때는 그 짧은 장면만 돌려보기 위해 <주온>을 본 적도 있었다. <장화, 홍련> 속 배경이 되는 집에 발린 벽지와 주요 인물 ‘수미’, ‘수연’ 자매의 빈티지한 옷차림도 마찬가지다. 어둡고 푸른빛을 지닌 잔잔한 꽃무늬 벽지는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할 만큼 핵심적인 요소이고, 수미가 입은 빨간색 카디건과 수연이 입은 구겨진 블라우스를 보며 입고 싶은 스타일을 정하기도 했다. 마지막에 땀과 피로 얼룩진 흰색 원피스의 기이함도 영화와 조화롭게 어울렸다.


영화 <도플갱어>의 서사는 요즘 시류와 맞지 않아서 특정 장면은 빠르게 넘겼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90년대 카페의 분위기는 멋스러웠다. 무명작가인 ‘패트릭’과 그녀의 여자친구인 ‘엘리자베스’가 LA의 어느 카페에서 아침을 먹는 장면이었는데, 우드톤의 인테리어와 둥근 테이블, 작은 나무 의자, 금색의 스탠드 조명, 엘리자베스가 마시던 라테 잔을 보며 저런 카페에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끄적이던 노트마저 빈티지스러워서, 언젠가 하나 구매했는데 몇 장 못쓰고 구석에 처박아놓았다. 참고로 엘리자베스가 입은 체크 셔츠와 그녀의 곱슬머리도 매력적이었다.


‘공포영화에서 취향 찾기’는 핀터레스트 어플에서 좋아하는 이미지를 저장하는 것만큼이나 기분 좋은 시간을 소비하는 일이지만, 이와는 반대의 생각을 품을 때도 있다. 호러 영화와 시선을 교환하면서, 나는 가끔씩 이 지구가 멸망하기를 소망한다. 내 주변은 특별히 재미나거나 벅차거나 활기찬 사건보다 지루하고 답답하고 억울한 순간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혹은 삶이 종말 직전까지 가는 시차를 다루는 호러 영화를 보며 지금, 이곳, 여기가 눈 깜짝할 새 사라져 버리길 바란다. ‘전부 다 없어졌으면 좋겠어.’ 간단하고도 잔혹한 말이다.


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도 부족해서 가지까지 양산하는 타입이라 위에서처럼 폐쇄적이고 시니컬한 사고를 가지면서, 또다시 좋아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쓸데없이 방황하는 생각을 잡아두지 못하고 내버려두는 건 어찌할 방도가 없다. ‘기억’이란 단어가 아예 부재하고 온 시간을 투자하며 끼워 맞췄던 연인들과의 관계가 소멸되는 게 한편으론 두렵게 느껴졌다. 물음표로 끝나는 터무니없는 질문을 백 개쯤 쌓아두면, ‘그럼에도 지금이 소중하지’라는 매가리 없는 답변을 내놓는다.


잊고 잊혀지고 죽고 사라지는 건, 아무래도 내 성정과 맞지 않다. 하루종일 입꼬리를 귀까지 찢으면서 웃을 수는 없어도 적당히 박장대소할 수 있는 순간이 있고, 무표정이라도 오늘 서로가 쓴 단일한 문장을 공유하며 가슴 한 구석은 미약한 뜨끈함을 느끼는 게 좋다. 나 혹은 누군가가 호러 영화에서 캡처한 이미지를 저장하고 정리하면서 친구들과 ‘너무 예뻐’라고 숨 쉬듯이 말하는 게 아직은 더 좋은 듯싶다. 그러니 어느 날은 세상에게 종말 선언이 떨어지기를 기도하다가도 바로 철회해 버리는 건 스스로 고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정말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멸종하고 일말의 사랑의 체온도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날이 온다면. 정말 그런 날이 온다면, 나는 내가 쓴 문장과 연인들의 손을 잡고 다른 차원으로 도망가고 싶다. 그럴 수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긴다면, 우리가 쓴 종이 뭉치를 불태우고 나도 소멸을 택할 것이다.


이 세상이 스스로에게 종말을 선언하기 전까지, 여전히 지옥이고 앞으로도 지옥일 세상에서 최대한 많은 고백을 남겨야겠다. 과연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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