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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낭만 Aug 29. 2023

너에게 진지한 글을 보내고 싶었어



이틀 동안 머리를 감지 말라던 헤어 디자이너 선생님의 부탁을 수행하고 있었다. 원래 파마를 새로 하면 머리에 물과 샴푸가 닿지 말아야 하는 건 당연하다. 나는 씻지 못해서 간질거리는 두피를 외면하기 위해 모자를 쓰고 출근했다. 더불어 생리 중이라 답답한 복부와 죽지도 않고 찾아온 ‘살쪘다’는 감각과 해도 해도 줄지 않는 미래를 향한 불안함도 따라왔다.


나는 짜증이 많은 타입이다. 불만도 많아서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화병 나서 제 명에 못 살 팔자이고, 신경에 스며든 예민함을 쓸데없는 장식처럼 달고 다니는 스타일이다. 정신과 육체는 하나라지만, 적어도 이런 성정을 타고났으면 신체라도 편해야 공평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편안함을 유지하는 기간은 끽해봐야 반나절이다. 길면 딱 하루.


막막함, 암담함, 불안, 짜증, 분노, 슬픔은 하나의 반죽처럼 명명할 수 없는 단어로 위장하고선 갑자기 들이닥친다. 머리 하나 감지 않는 건 쿨하게 넘길 수 있는 부분인데, 그런 날 모자를 쓰다가 순간적으로 이마를 가리는 답답함이 사람을 폭발시킨다. 이건 생리 중이라서 그런 것이라는 단순함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의 입에 권총을 넣고 자살하는 상상을 한다. 매우 극단적이지만 정말 간절히, 이 지긋지긋한 감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절규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만족을 못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무던히 넘길 줄도 알아야 하는데 방법을 알아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라 딜레마 같은 이 만족감을 완벽히 달성할 수도 없고, ‘게으른 완벽주의자’라서 안 할 때는 아예 누워버리는 감당 못할 처지와 성격을 지녔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적절한 해결방법을 스스로에게 부여하지 않는 모습은 나 자신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고, 부정적인 감정을 고조시킨다.


언젠가 ‘예민함은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능력’이라고 말해준 친구 C가 있었다. 그녀는 나보다 예민한 기질이 강했는데, 나와 판이하게 달랐던 점은 이 예민함을 신경질적으로 표출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C는 매사에 웃음이 많고, 지적이고, 기타를 잘 치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덕질도 활발하게 하는 사람이다. 가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해서, 내가 그녀의 집에 놀러 갔을 때 말 많은 나에게 ‘앞으로 5분만 정적을 가지자’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나는 지독하게 말을 안 들어서 다시 입을 열지만, 그럴 때도 C는 짜증이나 화를 내지 않고 웃어버린다. 나와는 다른, 그 생경함으로 인해 나는 자주 C에 대해 생각했다.


‘말을 하지 않고 어떻게 사랑임을 느낄 수 있어?’라는 질문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답변으로 내놓는다. 나와 C는 적고도 많은 연락을 매일매일 주고받는데, 그녀는 힘든 상황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당장 일어난 어려움이 약간의 매듭이라도 풀리고 나서, 그리고 나의 느린 재촉으로 설득당한 뒤에야 굳게 닫힌 입을 연다. ‘나 사실은 이런 일이 있었어’ C의 사정을 듣고 난 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녀의 상황에서 위로를 줄 수 있는 음악을 추천하는 게 전부였다. 그 소박함에, C는 항상 고맙다며 응답했다. 그녀는 매번 별 것도 아닌 것에 묵직한 감사함을 표한다.


C는 타고난 혁명가이다. 그녀의 글에는 말도 안 되는 사건을 지탄하며 사랑을 외치는 문장으로 가득하다. 정제된 언어, 숨기지 않는 정열은 C를 타오르는 불꽃처럼 보이게 했다. 그에 비해, 내 글은 정말 좋게 말해봤자 몽상가 같다. 사색에 잠겨서 몇 시간이고 빠져나오지 못하는데, 그래서인지 현실성이 떨어지기도 한다. 남들 다 하는 얘기를 내놓는 것만 같은 생각에, 내 글을 보고 한숨을 푹푹 쉰 적도 많다. 그래서 나는 C의 글을 부러워했다. 매가리 없는 내 글은, 쓴 사람은 당연하고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정작 C는 내 글을 좋아했다. 장점이라곤 눈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는 글에서 섬세한 칭찬을 열거했다. 그 덕에 나는 짧은 작문의 시간이라도 가지는 일상을 선물처럼 받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더욱 자신 있게 그녀의 글을 칭찬할 수 있게 되었다.


글 쓰는 방식의 차이일 뿐, 우리는 혁명과 몽상을 동시에 품으면서 이 시대에서 소모되는 사랑을 외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래서 같은 대학, 같은 전공을 가진 우리는 졸업 논문을 쓰며 골머리를 앓을 시절, 사랑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았다. 적어도 단둘이 있을 때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쥐고 다니는 스마트폰 화면에서는 매일매일 죽는 사람이 나타났다. 대부분 짐승만도 못한 범법자들이 벌인 짓이었다. 나와 C는, 뼈에 타투를 새기는 것만 같은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서로를 껴안았다.


우리는 언제나 아름다운 사랑만을 말하고 싶어 했지만, 그럴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슬퍼했다. 착각하고 싶어지는 밤을 만들어도 곧 현실로 돌아가곤 했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아스팔트, 본인만을 내세우기 바쁜 간판, 우산을 쓰고 각자 갈 길을 재촉하는 사람들 속으로 숨죽이며 뛰어든다. 남들은 알 바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서로의 색을 존중하고 익히 잘 알았다. 하지만 치이고 처맞는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그 색은 바래지고 말았다. 내가 좋아한 C의 초록빛이 구정물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선명함을 잃는 게 참 보기 힘들었다. 비단 나만 안타까워하는 사실은 아닐 테다.


깊은 감정을 알면서도 표현에 서툰 사람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C는 그와 반대되는 사람이었다. 아마 이 말을 들으면 그녀는 평소처럼 의아함을 대신하는 물음표로 화면을 가득 채울 것이다. 나는 그녀 스스로가 서툴다고 여기는 표현에서 다채로움을 느낀다. 직관적으로 사랑을 말하는 방식이 애틋해서 여러 도움을 받았다. 그 덕에 내 입에 물린 권총은 들어갔다 나갔다를 반복하긴 해도 자의적으로 방아쇠를 당기진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에게 C는 대학 가요제 같은 사람이다. 이미 대학 가요제는 역사 속으로 숨어버렸지만 그녀는 내 삶, 나의 역사에서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화장기 없는 얼굴, 체크 셔츠, 빳빳하게 당겨 신은 양말, 어깨에 맨 통기타, 굵직하고도 섬세한 목소리, 사랑 시 같은 가사. 그녀를 만나는 날이, 바로 나에게 축제다.


8월 초에 삿포로에 다녀오면서 사랑하는 친구들의 선물을 가득 사 왔다. 한국에 오자마자 소분해서 쇼핑백에 정리해 놨는데, 아직 우리 집에 갇혀있다. 주인을 찾아가려면 내가 시간을 쪼개서 밖으로 나가야 할 텐데, 핑계 같지만 도무지 시간이 나질 않는다. C에게 줄 선물도 작은 철장에 갇혀 있다. ‘먼지 쌓이기 전에 줘야 할 텐데...’라는 말만 오백 번 반복한다.


아마 내 생각을 미리 읽은 C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천천히 줘. 날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야.’ 그럼 나는 이렇게 전하겠지. ‘나 지금 발에 모터 달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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