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품었던 청춘의 초상

순하고도 쌉싸름한 소년 시절

by 이낭만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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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청춘 영화’라는 공식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의 소녀시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청설>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작품들의 흥행으로 이 공식은 굳건하게 지켜지고 있다. 오토바이, 습한 날씨, 넉넉하고 편한 교복, 외식 문화 같은 대만 특유의 정서와 모두가 공감할 만한 아련한 첫사랑 서사의 결합은 익숙한 듯 새로운 감각으로 관객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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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 부산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어 화제를 모은 <우리들의 교복시절> 역시 대만 청춘 영화의 계보를 이어가는 작품이다. 90년대 대만을 배경으로 제일여고 야간반 학생 ‘아이(진연비 분)’와 주간반 학생 ‘민(항첩여 분)’이 그리는 우정과 사랑을 중심으로 하는 이 작품은 시놉시스만 보아도 평소 대만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자석처럼 끌릴 작품일 것이다. <우리들의 교복시절>을 더욱 흥미롭게 관람하기 위해 준비한 세 가지 관전 포인트를 통해 영화에 더 깊이 들어가 보자.



우정을 가로막는 계급, 계급을 지우는 우정


아이와 민이 재학 중인 제일여고는 주간반과 야간반으로 나눠 교실 하나를 공유하는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다. 반이 나뉘게 된 경위에는 학업 성적이 있다. 대개 주간반은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 야간반은 상대적으로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라는 꼬리표가 교내와 바깥세상에 만연하게 퍼져 있다. 노란색과 흰색으로 구분되는 명찰도 성적에 따른 구분에 힘을 보태며, 명찰 하나로 학생들의 처지는 완전히 갈리고 만다. 본격적인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기도 전에 불평등을 피부로 느껴야 하는, 이 서글픈 상황 속에서 주간반과 야간반의 사이가 완만할 리 없다. 주간반은 야간반을 열등한 존재로, 야간반은 주간반을 거만한 존재로 인식하며 싸움까지 난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불평등을 그대로 답습하는 영화 속 학생들의 모습은 어쩐지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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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반부터 아이와 민은 이 계급을 말끔히 무시한다. 두 사람은 쪽지를 교환하며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이어폰을 나눠 끼거나 음료수를 함께 마시며 우정의 토대를 쌓는다. 때로는 귀엽고 발칙한 일탈을 꾸미기도 한다. 야간반인 아이가 몰래 학교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민은 자신의 교복을 가져와 아이에게 입히고, 두 사람은 함께 좋아하던 밴드의 공연을 보러 간다.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출입이 막혀도 괜찮다. 계단에 앉아 출입문에서 새어 나오는 노래를 듣는 것 자체만으로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웃음을 자아내니 말이다.


주간반과 야간반이라는 특징 외에도 영화에서는 부유함/가난함, 우수함/평범함처럼 차별을 자아내는 이분법을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지워버린다. 부모의 재력, 성적, 외모가 친구 사이에 불필요하다는 사실을 아이와 민은 이미 체득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위와 아래에 놓이는 것이 아닌 옆에서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아이와 민을 통해 한 번 더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이 끝까지 유효할 수 있을까?



우정은 사랑 앞에서 작아져야만 할까?


탁구장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아이는 손님으로 방문한 루커(구이태 분)에게 호감을 느낀다. 첫사랑의 시작에 설레던 것도 잠시, 루커와 같은 학원에 다니고 있던 민이 절친 아이에게 자신이 루커를 좋아하고 있음을 고백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친구와 같은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 비슷한 집안 환경을 가진 민과 루커에 비해 초라하게만 느껴지는 자신의 환경, 소외받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인해 아이는 거짓말을 하고 만다. 민에게는 루커에게 호감이 있으며 같이 탁구 시합에 나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루커에게는 야간반에 재학 중이라는 사실을 감춘다. 일종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시작된 이 거짓말은 아이가 맺는 관계들에 미세한 진동을 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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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들통나면서 가장 피해를 본 관계는 우정이다. 아이와 루커가 서로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민은 루커의 어머니가 연 전시회장에서 아이의 거짓말이 발각되도록 상황을 은근히 조종한다. 정작 아이에게 먼저 자신의 교복을 빌려주며, 주간반 학생인 것처럼 굴라고 했던 사람이 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사랑 앞에서 그간의 우정은 무너지고, 이분법적인 불평등이 되살아난 것이다.


사랑이 등장하는 순간, 우정은 종종 사랑보다 뒤처지는 감정으로 취급받는 경우가 있다. 가장 강력한 감정이 마치 연인 간의 사랑이라고 단정 짓는 것처럼. 그러나 영화는 아이와 민의 갈등이, 후반부로 갈수록 우정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도록 서사를 이끌어 나간다. 질투심 때문에 아이에게 창피를 안겨준 민은 루커와 연인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아이의 빈자리를 그리워하게 된다. 아이가 자신의 마음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깨달으면서.


갈등이 해소되는 영화의 말미에서 아이는 루커에게 진심 어린 고백을 받지만, 두 사람은 연인이 되지 않는다. 그 대신 아이와 민이 서로의 가장 밑바닥에 있던 감정을 꺼내며 화해하는 장면에는 오래 머물면서, 누군가에게는 우정이 사랑보다 더 앞설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바로 이 부분이 남녀의 사랑에만 초점을 맞추었던 그간의 대만 청춘영화와는 차별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랍스터


<우리들의 교복시절>은 처음부터 끝까지 학업 경쟁에 놓인 청소년들의 갑갑한 현실을 응시하고 있다. 소위 ‘명문대’에 진학해야만 앞길이 창창해진다는 어른들의 목소리는 학생들이 가진 저마다의 꿈을 무시하고 오직 ‘공부하는 기계’로서만 기능하도록 압박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의 정신적 성장이 가능할 리 없다. 여기서 영화는 십대 시절을 거치고 있는 사람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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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아이는 평소 동경하던 배우 니콜 키드먼에게 편지를 보내고, 기적적으로 답신을 받는다. 아쉽게도 그 답신은 아이가 기다렸던 니콜 키드먼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고 밝혀졌지만, 편지 내용에는 성장통을 겪는 아이에게 꼭 필요한 말이 담겨 있다. “랍스터는 자라면서 낡은 껍데기를 벗기 위해 바위 밑으로 들어가. 불편하고 고통스럽지만 그건 반드시 필요한 성장의 과정이야.” 이 메시지는 감독이 영화의 주인공인 아이뿐만 아니라 재수를 통해 주간반에 오게 되었지만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는 민에게도, 부모님의 재결합을 바라는 루커에게도,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갈등이 종식되고, 마음의 짐이었던 입시까지 마친 아이는 홀로 옥상에서 가짜 니콜 키드먼에게 받은 편지를 다시 읽는다. 이윽고 후련한 얼굴로 바뀐 아이는 과감하게 편지를 태워버린다. 낡은 껍데기를 벗기 위해 바위 밑으로 들어갔던, 고통의 시간을 겪어낸 아이에게 편지 속 위로는 이제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첫 번째 성장통은 벌써 과거가 되었다. 한 뼘 더 성장한 아이는 다음에 찾아올 성장통이 마냥 두렵지 않을 것이다. 극복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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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교복시절>의 엔딩 크레딧을 보며 나는 이 영화가 현재 교복을 입고 성장통을 겪는 학생들에게도, 성장통을 이미 거쳐온 어른들에게도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여러 감정이 들이닥쳤지만 결국엔 ‘좋다’는 단순한 감상만이 남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좋은 영화’의 기준에는 결국 웃음을 짓게 만드는 영화, 모든 사람에게 치유가 되는 영화도 포함되기에.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으로 마무리를 해 보려고 한다. 이 문장을 이미 아는 사람, 처음 알게 된 사람 모두에게 소량의 힘이라도 보탤 수 있기를 바란다. May The Force Be With You.



* 본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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