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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야 Aug 17. 2023

한 끗 차이

내공이 필요해


 지난 결혼생활의 부작용 중 하나는 특정 부분에 두드러지는 혐오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최근 꽤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 중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재채기처럼, 어떤 자극에 있어 참을 수 없는 혐오와 경멸감이 밀려올 때가 있다. 

 이러한 혐오가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분명 이전에는 이 정도로 질색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수차례 안 좋은 경험이 반복되고 결국 그것이 극적으로 내게 영향을 미치면서 '너무 싫어!'라는 발작증상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이전에는 구체적으로 '이러이러한 부분이 싫어'였다면, 최근에는 그 범위가 넓어져 내가 기피하는 대상과 상황이 뭉뚱그려져 '혐오감'이라는 단어 하나로 정의가 된다.


 어쩌면 혐오감이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일반적인 커먼 센스에 부합하지 않는 불편한 거슬림이라기보다 개인의 역사에 따른 심리적 알레르기 증상 같기도 하다.  

 분노가 혐오가 되는 것은 한 끗 차이다. 트라우마의 트리거가 되는 기피의 대상에 대한 뭉뚱그려진 혐오는 때론 흑백논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관계된 모든 것이 다 싫어지는 것이다. 


  



 얼마 전, 친구 J와 함께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한 번쯤 바람 쐬러 다녀오라는 가족들의 배려도 있었고, 때마침 J에게 지방에서 열리는 콘서트 표가 생겨 갑작스러운 여행이 성사되었다.

 실로 오랜만에 KTX를 탔고, 좋은 식당에서 행복한 외식을 즐겼다. 흘러넘치는 자유에 나는 정말 기뻤고, 때때로 아이와의 전화통화를 하며 엄마가 '두 밤 자고' 간다는 것을 이해하고 떼쓰지 않는 아이 덕분에 마음껏 기분전환을 했다. 


 몇 달간의 시골생활과 육아를 하다가 사람 많은 곳에 가니 모든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새 유행도 많이 바뀐 것 같고,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내 취향의 놀거리와 먹거리들에 마음이 바빴다. 우리는 다리가 아플 만큼 걸어 다녔고, 한시도 쉬지 않고 수다를 떨며 맛집과 핫플레이스를 찾아다녔다. 



어쩌다 마주친 발작버튼


 늦은 밤, 호텔로 돌아가기 왠지 아쉬워 근처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번화가에 위치한 호텔 주변은 주말밤을 즐기는 사람들로 대낮같이 분주했다. 낮에는 모르고 지나쳤던 술집과 불법 업소들이 눈에 들어왔다.  

 호텔 옆 골목, 단층의 낮은 상가 입구에 갓 봉고차에서 내린 홀복을 입은 여자들. '노래방'이라 표기하고 사실은 단란주점인 퀴퀴한 지하로 몇몇 남녀가 들락거렸다. 스치듯 지나가다 그중 어떤 여자와 눈이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경멸감이 확 밀려들었다.


  갑자기 뇌 전체가 지배당하는 불쾌감에 재빨리 골목을 벗어났다. 이혼 과정에서도 그런 류의 업소를 보면 불쾌감이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그들의 영업시간에 업소 종사자나 술 취한 고객들을 보니 느낌이 너무 달랐다. 

 그리고 나는, 예기치 못하게 발작버튼이 눌리자 나 스스로 느낄 정도로 재수 없는 표정이 되었다. 아마 나는 노골적인 경멸감을 온 얼굴에 칠한 채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으리라. 

 

 직업의 귀천을 재어 비난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같은 여성으로서, 그리고 그런 세계로 인해 가정이 깨진 사람으로서 분명한 혐오가 존재한다. 어쩌면 이건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같은 문제인 것 같다. 그런 업소가 있어서 사람들이 가는 건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기생집 문화가 아직까지 이어져 당연하게 수요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정확히 말하자면, 그 업소 종사자들 때문에 이혼하는 것이 아니라 거길 간 놈 때문에 이혼하는 것이다. 


본능은 남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비난 어린 시선을 받아야 했던 그 여자는 그저 일하는 중이었다. 내가 무슨 고결한 인간이어 그들을 평가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그들의 일터인 술과 유흥이 판치는 개떡 같은 업소는 주된 이혼 사유였다는 것이 내 눈을 세모로 뜨게 만들었다. 이렇게 뭉뚱그려진 혐오의 감정이 불특정 대상을 향해 튀어나가는 것을 보며 나 스스로도 놀랐다. 마치 그토록 반대하던 인종차별주의자가 된 기분이었다. 


 친구와 이런 대화를 하다 보니 조금 씁쓸해졌다. 꽤 많은 사람들이 '남자가 일하다 보면 그런데 갈 수도 있지!'라고 말한다. 때론 '남자들은 바람피우는 것이 본성이다'라고도 한다.

 아주 개인적인 의견으로, 요즘 이런 말 함부로 하면 스스로가 '나는 시대 흐름에 뒤떨어진, 사회적 지능이 부족한 사람이다'라는 것과 진배없다고 생각한다. 본능을 다스리고 책임을 질 때, 진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점. '남자만 본능이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한 때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던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지선우(김희애)의 대사이기도 한 이 말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재빨리 그 골목을 나왔다. 의식적으로 그런 가게들은 쳐다보지 않고 예쁜 가게, 행복하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남의사 어떻든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하면 그냥 안 보고 안 듣고, 피하면 그만이다.

 이제는 좋다 싫다의 문제를 논할 필요도 없이 그냥 내 인생과 선을 긋는 것이다. 굳이 내가 다 포용할 필요도 없고, 그 불쾌감을 온몸으로 뿜어내며 대면할 필요도 없는 것일 테니까. 내 감정을 건드리는 것들에 시선을 오래 두지 않을 때, '혐오감'이라는 혐오스러운 단어를 쓰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모든 사람의 삶의 목적과 목표, 가치는 다르다. 다 개인의 선택이고, 내가 그것을 판단할 수도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한 끗 차이다. 내겐 너무나 좋은 것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싫은 것이 될 수도 있다. 자로 잴 수 없는 내면의 스펙트럼에서 특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것도 다 한 끗 차이다. 그토록 모든 것이 좋았던 여행의 순간, 스치듯 지나간 장면에 기분이 확 상했던 것만 봐도 그렇지 않을까.

 

 언젠가 '우울과 우웅은 한 끗 차이, 우울해 하지말고 우웅~ 귀여워지자'는 웃기는 이모티콘을 본 적이 있다. 어차피 지나간 일, 더 이상 기분 상할 것 없이 '아 몰라' 하고 우웅하며 지나칠 수 있는 내공을 쌓아야 할 때다.



타이틀 이미지

ⓒ domino magazine , 출처 domin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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