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첫 명절 연휴는 생각보다 바쁘고, 알찼다.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느라 하루하루가 금세 지나갔고, 심지어 결혼 전에도 해본 적 없던 명절 당일 놀이동산 나들이를 했다.
가족들과도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가까운 친척들과 식사를 하고, 아버지와 아이를 데리고 쇼핑도 했다. 대단한 이벤트는 없었지만 평소처럼 평화롭게 긴 연휴를 보내면서 탈 며느리의 자유를 만끽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여유도 있었다. 지난번에 빌린 6권의 책을 반납하고 새로 입고된 책을 무작위로 빌려왔다. 물론 늘 그렇듯이 제목이 맘에 드는 책들이다. 오히려 연휴 기간 동안 한동안 늘어졌던 일상이 타이트하게 조여졌다.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매일 독서를 하고 실컷 산책을 했다. 대체로 명절에는 생활리듬이 깨지기 십상이었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리프레시가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휴식이다. 명절 한 두 주 전부터 산소방문과 제사 일정에 대한 눈치게임을 했고, 봉투에는 얼마를 넣어야 할지, 어떻게 해야 시조부모 댁 방문을 패스하고 친정에 갈지를 고민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모든 의무와 강박에서 벗어난 이혼 후 첫 명절은 집안에 풍기는 간소한 음식냄새와 작은 나들이로 채워졌다. 오히려 전보다 외롭지 않았다.
조상덕을 본 사람들은 명절에 여행을 간다
한동안 새 글 발행이 없었음에도 명절특수(?)인지 지난 브런치북의 조회수가 급상승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검색 경로의 다양한 키워드를 보니 명절에 특히나 강조되는 가족 갈등과 그로 인한 답답함이 검색어에 담겼다. 나 역시 겪었던 명절의 불합리함과 분노의 검색어들.
대체 공휴일까지 끼어 6일이나 되는 신나는 연휴가 왜 누군가에겐 지옥이 되었는가? 우스갯소리로 진짜 조상덕을 본 사람들은 명절에 해외여행을 간다고들 한다. 정작 조상 덕 못 본 사람들이 차례상을 차리고 도로에 갇혀 산소를 오가다 결국 가족 간의 싸움으로 번진다는 것이 우스우면서도 맞는 말이라 씁쓸하기도 하다.
우리 집은 워낙 명절을 간소하게 지내왔기 때문에 지난 결혼생활 내내 명절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누군가는 쉽게 일 년에 겨우 두 번인데 그걸 못 참느냐 했지만, 그 두 번의 뒤끝이 길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횟수는 적어도 반복적으로 겪는 동일한 문제는 일상생활에 확대 적용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평소에 겪던 가족 문제가 명절로 인해 심화되기도 한다. 어쨌든 이런 종류의 스트레스는 누적이 되며 복리효과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그다음에 올 명절은 더더욱 싫어진다.
우리의 진부한 명절 스토리
명절에 대한 하소연은 사실 진부하다. 진부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명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람만 바뀌고 스토리 구조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인데, 여기에는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희생'의 포지션이 존재한다. 때로는 며느리이기도, 어머니이기도, 둘 사이에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남편이자 아들이기도 하다. 이것은 한 둘이 겪는 폐쇄적인 경험이 아니라 꽤 많은 사람들이 겪고 공감하는, 꽤 보편적이기도 한 스트레스의 한 종류일 것이다.
나 역시 그 옴니버스 스토리의 한 사람이었다. 정작 내 조상에게는 하는 것이 없으면서 얼굴도 본 적 없는 그 집 조상들을 위해 상을 차렸고, 우리 엄마 설거지도 못 도와주면서 시가에 산더미 같이 쌓인 제기를 닦으며 차라리 이럴 바엔 명절 특근이 낫다고 생각했다. 살아계신 친정 부모에게 찾아가기 전에 이미 돌아가신, 얼굴도 본 적 없는 그 조상의 산소에 가고, 본인의 친정에 동행을 요구하던 그의 어머니와 매 명절 얼굴을 붉히며 기분이 상한 채 헤어졌다.
나는 명절이 싫었다. 피곤했고, 즐겁지 않았다.
명절 이후 출근을 하면 그날은 며느리들 성토대회로 화장실이 시끌시끌했다. 개중 평화로운 명절을 보낸, 극 소수의 한두 명만 핏대를 세우는 K-며느리들 옆에서 영혼 없이 동조하며 우리의 분노를 직관했다. 친구들 카톡방 역시 마찬가지였다. 훌훌 해외로 떠난 친구를 부러워하며, 빨리 긴 연휴가 지나가길 바라는 이들은 모두 기혼자였으니 말이다.
물론 아무런 문제 없이, 때론 오히려 행복하게 양가를 방문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그들 이야기에도 공통점이 존재한다. 일정이 대체로 유동적이고 강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익숙한 불행
어렸을 때, 우리 큰 집도 차례를 지냈다. 매 명절 가족들이 모였고 엄마는 구석에 앉아 반나절 내내 전을 부쳤다. 나는 친척 형제들과 놀기 바빴고, 갓 구워진 전을 하나 둘 몰래 빼먹거나 용돈을 받아 문구점에 가곤 했다. 어릴 때는 마냥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이가 좀 차면서 엄마의 고생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는 시집살이를 했다. 그것도 시어머니도 아닌, 큰 어머니에게.
우리만 서울에 살았기 때문에 명절 이외에는 친가 식구들을 볼일이 딱히 없었다. 그럼에도 명절에 고생하던 엄마의 기억은 꽤나 강렬했고, 나는 오지랖 넓고 막말하는 큰어머니가 점점 더 야속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건대, 나의 전 시어머니가 그녀와 참 비슷했다는 점에서 더 크게 반발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분명히 과거의 익숙한 불행, 엄마의 불행이 다른 버전의 내 것이 될까봐더욱 방어적이었다. 엄마와 딸의 관계에서 이런 류의 감정은 더욱 긴말하게 이어지기 마련이다. 나는 과거의 엄마에게 나를 투영하고 그때 큰어머니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그의 어머니에게 하기도 했다. 나는 이만 친정에 갈 것이고, 산소나 시어머니 친정에는 가고싶지 않다고 말이다.
안타까운 것은, 내재된 불행에 대한 거부감이 때론 특정 상황에 대한 부정적인 일반화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내가 '명절 = 고생과 불합리함의 집합체'로 느끼며 실제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탈 아내, 탈 며느리의 첫 명절 총평
언젠가 들었던 상담사님의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명절을 기점으로 부부상담이 급증한다고 한다. 뉴스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명절 이혼 등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닐 것이다.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자 바람은_ 예전에 그에게 제안했다가 결국 거절당했던 것이지만_ 어차피 다들 일하고 사는 마당에 가끔은 명절 연휴를 '진짜 휴가'로 보냈으면 좋겠다. 각자가 원하는 대로, 때로는 한 주 전이나 혹은 그다음 주에 가족들이 모여 간단하게 제사건 인사건 하면 어떠냔 말이다.
명절 당일에 자식들이 없으면 외롭다는 어른들 말씀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자식들이 행복해야 당신들도 행복하지 않을까. 게다가 살아있는 사람들이 편안한 것을 조상들도 기꺼워할 것 같다. 명절 당일에 제삿밥 못 먹었다고 행패를 부릴 조상이라면 좀 너무하지 않는가.
쉴 틈 없이 빡빡한 일 년 달력 속 몇 안 되는 빨간 날을 조금 더 행복하게 보낸다면, 그리고 그 시간을 서로 배려받는다고 느낀다면, 안 좋던 관계도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제는 새로운 명절들을 경험하고 싶다. 내가 못 먹는 토란을 뺀 엄마표 뭇국을 먹으며 새삼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지 않아도 되는, 새벽같이 일어나 부산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운 진짜 연휴. 서로의 스케줄을 배려하고, 가족 모두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 말이다.
며칠을 평화롭게 보내고 나니 설 연휴 계획을 벌써 생각하게 된다. 내년 설에도 한복이 아이에게 잘 맞을지 눈대중을 해본다. 여행을 갈지, 이번처럼 가족들과 여기저기 다니며 시간을 보낼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은 신호이다. 다음 명절이 기대될 지경이니 말이다. 부정적 경험의 사고를 바꾸는 데에는 긍정적 경험을 반복하는 것은 확실히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