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의 온실
더스트 시대에는 이타적인 사람들일수록 살아남기 어려웠어.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손이니까. 우리 부모나 조부모세대 중 선량하게만 살아온 사람들은 찾기 힘들겠지. 다들 조금씩은 다른 사람의 죽음을 딛고 살아남았어. 그런데 그중에서도 나서서 남들을 짓밟았던 이들이 공헌자로 존경을 받고 있다고.
마을의 분위기는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았다. 누군가가 폐허 탐사를 하러 간 사람들을 비난했다. 그들이 부주의하게 마을의 존재를 드러냈을 거라고. 그러지 않고서는 마을이 외부에 노출될 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폐허 탐사조는 매번 인원 구성이 바뀌었는데, 회관에서 그중 누가 잘못했는지를 가려야 한다며 말다툼이 크게 벌어졌고 대니가 와서야 겨우 상황이 수습되었다. (중략) "돔을 없애는 거야. 그냥 모두가 밖에서 살아가게 하는 거지 불완전한 채로. 그럼 그게 진짜 대안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 똑같은 문제가 다시 생길 거야.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어. 뭔가를 해야 해. 현상 유지란 없어. 예정된 종말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을 계속해서 벌이는 것 자체가 우리를 그나마 나은 곳으로 이동시키는 거야."
나는 왜 망해가는 세상에서 어른들은 굳이 학교 같은 것을 만든 걸까 생각해 보았다. 나를 비롯한 아이들은 대체로 하품을 하며 수업을 듣는 반면, 칠판 앞에 선 어른들은 늘 의욕에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이것이 어른들의 몇 안 되는 즐거움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배워야 해서 학교를 운영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행위 자체가 어른들에게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고.(중략) 무엇보다 내게 주어진 일이 있어서 좋았다. 이 마을이 나를 꼭 필요로 해주는 것 같아서.
프림 빌리지는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걸. 그렇지만 이곳에 남겠다고 거듭 말하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곤 했다. (중략) "이게 마지막은 아니야."
아마라는 누구보다 이곳에 오고 싶어 했는데, 누구보다 이곳에 머무르고 싶어 했는데, 왜 우리는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고, 어떤 곳도 영원하지 않은 걸까. (중략) "다들 어떻게 이 마을을, 이 온실을 지켰는데....
레이철이 마을의 해체를 원치 않았던 건 이 마을을 자신의 실험실로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그럼으로써 지수를, 지신의 옆에 붙잡아두고 싶었던 거였다. 정비사가 아닌, 지수를 옆에 두고 싶어 했던 것이다.
우리는 피라미드형 생물관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식물과 미생물, 곤충들은 피라미드를 떠받치는 바닥일 뿐이고, 비인간 동물들이 그 위에 있고, 인간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반대로 알고 있는 셈이지요.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은 식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지만, 식물들은 동물이 없어도 얼마든지 종의 번영을 추구할 수 있으니까요. 인간은 언제나 지구라는 생태에 잠시 초대도니 손님에 불과했습니다 그마저도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위태로운 지위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