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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스띠모 Oct 02. 2023

몽골 | 아르바이헤르

초원에 누워서 첫키스를 할 거야, 3 weeks in Mongolia

우리는 타왕복드로 향하던 길에 4곳의 소도시에 머물게 되었다. 아르바이헤르는 첫번째 소도시다.


타왕복드에 가는 방법은 우리처럼 육로로 가는 방법이 있고, 돈을 조금 더 쓴다면 울란바토르 공항에서 바양울기까지 비행기를 타고 넘어가는 방법이 있다. 당연히 돈을 아끼는 게 우선이었기에 일정표에 적힌 ‘하루 10시간 이동'쯤은 기꺼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양작 숙소에서 폭풍같은 하루를 보내고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바깥 하늘은 너무나도 푸르고 예뻤다. 모래폭풍이 바로 어제 일이었다는 게 아무도 믿기지 않았는지, 일행 중 몇 명은 차 안에서 이게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일이라는 걸 믿을 수 없다는 말을 했다. 오늘 우리가 갈 곳은 ‘아르바이헤르'이다. 그동안 초원에 게르가 달랑 있는 숙소에서만 지내와서 그런지 육백수에게는 ‘도시'를 간다는 게 왜인지 모르게 설렘 포인트로 다가왔다. 우리가 가장 기대했던 점은, 무려 숙소가 전기, 샤워가 모두 가능한 도시 모텔이라는 점이었다. 앞으로 한 3일 동안은 씻고 전기를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것에 정말 감사했다.



몽골은 사람을 별 것도 아닌 일에 감사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이를 테면 내가 지금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있는 전기, 하루에 두 번씩도 하는 뜨거운 온수 샤워. 마시는 물은 항상 뜨겁게 내주면서 온수샤워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뭐든지 차갑게 먹고 한여름에도 온수샤워를 하는 보통의 한국과는 정반대의 삶이다. 


중간에 들른 마을에서 몽골 잼민이들과 술래잡기도 하고, 공주님들과 사진도 찍었다.


사막 한가운데를 지나며 구글지도를 보니 아르바이헤르에 거의 다 와간다. 사막 한 가운데에 도시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놀라웠다. 누가 처음 아르바이헤르에 건물을 지었을까, 이 땅이 사람이 살기 좋은 땅이라 이렇게들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일까 라는 잡다한 생각을 하던 와중 한 호텔 앞에 도착했다. 날은 정말 추웠다. 체감상 한국의 2월 말 - 3월 초 되는 날씨였다.


유진언니의 말에 따르면 과거 ‘지역관광호텔'의 형태와 닮아있다고 했다. 듣고 보니 로비가 그럴 듯 했다. 그리고 이 호텔에 있던 ‘엘리베이터'. 몽골에 와서 처음 본 엘리베이터에 준열이와 나는 신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숙소 컨디션은 정말 최상이었다. 몽골로 떠나기 전, 나는 아무 게르에서나 잘 수 있다며, 심지어는 초원 위에서도 그냥 잘 수 있을 만큼 몽골 여행에 자신감이 넘쳤었다. 고작 여행을 시작한지 4-5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푹신한 침대, 깨끗한 화장실, 쾌적한 방이 너무도 그리웠다. 자연 속에서는 찾기 어려운 것들. 도시가 싫어서 자연 속으로 떠나온 여행이었는데 도시가 그리웠다니, 어쩔 수 없는 도시 사람이다.

짐을 풀어놓고 가장 먼저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물에 샤워를 했다. 그 며칠 새 쌓인 몸의 피로가 조금이나마 씻겨 내려간 기분을 느꼈다. 침대에 누워있던 것도 잠시, 내일 아침이면 또 이 도시를 떠나야 하기에 서둘러 둘러봐야 한다. 






우선 밖으로 나갔다. 우리가 늦게 도착했던 건지 바깥은 깜깜했다. 결국 우리가 택한 건 노민 마트 ㅡ몽골의 프랜차이즈 마트ㅡ 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마트에 가서 뭘 하겠나, 술을 샀다. 

술을 사서 뭐하겠나, 게임을 했다.


이름하여 내일 자리 정하기 배 윷놀이 게임을 시작했다. 준수 나무, 유진 준열, 지아 슬현 총 세 팀으로 나뉜 이 시간 ‘아르바이헤르에서 가장 진지한 게임’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준수 나무 팀이 선전을 하고 있었는데 준수가 계속해서 깐족거려 화가 난 언니들과 내가 ‘한 팀만 무너뜨리자'는 목표 하나로 심기일전했다. 결과는 결국 준수 나무팀이 1등을 가져갔지만. 어쨌든 준수 나무는 순방향에 앉아서 편하게 갔다고 한다. 


여섯 소도시를 다녀온 내게 아르바이헤르는 '한 달 살기를 하고싶은 도시'로 기억에 남았다. 다른 소도시들에 비해 조금 더 발달한 듯한 중소도시 느낌. 아르바이헤르에서는 몽골 초원과는 어울리지 않는 고층 건물도 몇 채 있었다. 마트에 가던 우리를 보고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준 아르바이헤르의 수줍은 어린이들과 외국에서 여행왔다며 감사의 의미로 커피를 내어준 호텔의 직원들이 내게 좋은 의미를 주었던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괜히 그 차가웠던 공기가 그리워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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