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직장생활 끝에 찾아온 달콤한 휴직 기록 2
매년 새해 목표로 운전 마스터가 빠지지 않은지가 언 8년째이다. 취준생일 때 무기력하고 하고 싶은 것이 하나도 되지 않자, 뭐라도 합격해보자는 마음으로 뒤늦게 면허를 땄었다. 아이러니하게 면허를 따자마자 한달도 되지 않아 원하던 회사에 합격을 하였고, 그 뒤로 계속 운전은 매년 새해목표에만 등장하는 단어일뿐 내 일상과는 점점 멀어져갔다.
생각해보면 면허를 따는 과정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이상하게 항상 자신감은 없지만 실전에 강하던 성격 덕분인지, 턱걸이로 한번에 합격을 하였다. 도로주행을 가르켰던 선생님이 내가 시험을 합격하고 돌아오자 ‘너가?’라는 그 놀란 표정을 아직 잊을 수 없다. 생각보다 내 운전이 심각했었나보다. 하지만 그 때는 ‘합격’이라는 목걸이가 중요했던 날이었다.
‘합격’의 목걸이를 받고 돌아오니 떡하니 무대가 펼쳐진 ‘실전’이 내 눈앞에 펼쳐졌고, 우선 당분간 보류를 택하였다. 나의 수명과 타인의 수명과 엄청난 물적 자산의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어마무시한 것이라는 것을 그 이후에 두번의 교통사고를 통해서 뼈져리게 깨달았다. 내가 운전하지도 않았는데 택시에서 한번, 버스에서 한번 교통사고를 당해 아직도 팔꿈치와 허리가 쑤신다.
이렇게 회사 적응과 교통사고 후유증이라는 핑계거리를 대면서 지내왔는데 이제는 정말 해야 할 타이밍이 찾아왔다. 혼자 마트에 가서 멋있게 장보는 것도 해보고 싶었고, 엄마 집까지 반찬통들도 내가 차에 실어 갖다주고 싶었고, 어느샌가 운전하는 여자들을 동경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젊은 여자들은 모두 스스로 운전을 하는데, 나만 할머니가 되어서 뚜벅이 생활을 이어가는 듯한 기분이…든달까. 주변에서 아무리 얘기해도 들리지 않았었는데 역시 스스로 필요해야 움직이는 것이다. 두달동안 미루다가 네이버 검색창에 ‘운전연수’를 검색했고, 첫번째 나오는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운전연수 후기들을 찾아보기 시작하면 또 알아보다가 끝이 나거나 겁만 먹고 또 미룰 것이 뻔했다. ‘못먹어도고’라는 마음으로 전화를 했고, 바로 다음주에 시작하기로 일정을 약속하였다.
디데이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오는 법, 그날은 평소에는 떠지지도 않는 눈이 아침부터 반짝했다. 온갖 걱정과 근심이 스물스물 기어올라왔고, 떨린 마음을 진정시키려 호흡을 가다듬었다. 시부모님이 10년정도 타다가, 남편이 5년정도 몰다가 물려준 ‘연식이(낡은 하얀색 NF소나타를 우리는 연식이라 부른다.)’는 운전연수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선생님 목숨도 나한테 달려있는 거나 다름없으니 사고는 안나게 해주시겠지 라는 마음으로 엑셀을 밟아 앞으로 나아갔다. ‘생각보다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무렵, 발빠르게 변하는 교통의 흐름과는 대비되게 나홀로 눈치없는 거북이가 된 것 같았다. 넓은 시야는 커녕, 사이드미러 한 쪽 보는 것도 버거웠고, 몇번이나 선생님이 목숨을 구해주셨다. 첫날은 그냥 차에 익숙해지는 연습, 둘째날은 좌회전, 우회전, 유턴을 집중적으로 배웠다. 왜 아직 우회전 신호등이 나오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회전 신호 보는 게 어려웠고, 봐야할 곳들이 너무 많아 내가 눈이 10개라도 되어야 하는 것인지 싶은 답답한 마음이었다. 셋째날은 왕복 2시간은 걸리는 친정집을 다녀왔다. 반포대교와 고속도로를 타고 가야 하는 코스로 어찌저찌 해서 갔다오니 뿌듯하긴 하였다. 이제 마지막 넷째날이 남았는데…10시간을 우선 추가로 등록하였다. 운전이 늘었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크게 들리던 크락션 소리에도 쫄지 않고 꿋꿋히 내 앞길을 가는 것 만큼은 배운 것 같다. 이번엔 기필코 탈출하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