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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 Aug 28. 2024

끝나가는 여름이 아쉬운

8년 직장생활 끝에 찾아온 달콤한 휴직 기록 5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샤워를 할 수밖에 없는 날씨가 몇 달간 지속되다 보니, 요 며칠 아침저녁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이 반갑기만 하다. 하지만 반가운 마음도 잠시, 투덜거리기만 했던 여름이 끝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손발이 차고 땀을 많이 흘리지 않는 나로서는 항상 겨울보다 여름을 좋아했다. 가벼운 원피스 하나 걸치고 외출을 해도 문제가 없고, 어디 여행을 떠나기에도 단출한 짐을 꾸릴 수 있어 여름휴가를 즐기곤 했다. 에어컨보다는 선풍기, 선풍기보다는 자연바람을 선호하곤 했었는데 올해는 그야말로 에어컨과 함께한 여름이었다. 회사에 출근할 때에는 사무실에서만 온종일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날씨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인지, 올해 날씨가 특별히 뜨거워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침저녁으로 밖에 잠깐이라도 나갔다 오면 속옷까지 땀으로 젖어 매번 샤워를 하였고, 낮에 산책하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전기값이라도 절약하려 에어컨이 있는 카페나 도서관을 종종 찾아 나섰지만, 가는 길에 맞아야 하는 쨍쨍한 햇볕이 두려워 집에서 낮 시간을 보내는 일도 많았다. 집에서 보내는 여름은 뜨거운 날씨를 그대로 맞이할 수밖에 없어, 스스로 더위를 피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여름이 시작할 때쯤 집에서는 선풍기로만 버텨봤지만 실내온도가 30도를 넘는 것을 보고 에어컨을 한낮에도 가동할 수밖에 없었다. 비다운 비도 구경하기 어려웠고, 잠시 스콜처럼 짧고 굵게 내리는 비가 공기를 더 축축하게 해 주어 야속하기만 했다. 얼굴에 생기는 기미와 잡티가 더 짙어지는 것도 고민이었다. 올해 여름은 그렇게 햇빛과 더위를 피했던 시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여름의 추억도 많았다.


한낮 입이 심심해지고 달달한 군것질이 당길 때마다 크고 맛있게 익은 복숭아, 수박, 멜론, 자두 등 여름과일을 먹었다. 원래도 과일킬러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과일 대부분은 다 여름과일이다. 외출을 하고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서 먹는 복숭아 한 조각은 어떤 것보다 달달하고 맛있었다. 멜론과 프로슈토를 같이 먹기도 하였고, 자두를 한 입 베어 먹기도 하였고, 수박주스를 만들어 시원하게 한 입 들이키곤 했다. 마트에만 가면 과일을 사고 싶은 충동 때문에 자제하기 힘들었지만, 냉장고에 넣어놓은 맛있는 과일을 하나 끝내고 그다음 과일을 사러 가는 시간은 행복이었다.


무더위로 외출을 최소화하고 집에서만 온종일 시간을 보낼 때도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남편과 함께하는 밤산책은 즐거웠다. 푸릇푸릇한 나무들과 꽃들, 비라도 온 날에는 향긋한 풀 냄새가 진동하였고, 무더위를 피해서 나온 사람들로 북적북적이던 여름밤이었다. 산책을 하며 조곤조곤 각자의 하루를 공유하던 대화는 즐거웠고, 가끔 따릉이를 빌려 달리던 때에는 온갖 쓸데없는 생각과 스트레스가 없어지는 해방감을 느꼈다. 길어진 밤이 고마웠다.


올해 처음 내 손으로 해 먹었던 콩국수도 빠질 수 없다. 원래는 콩국수를 내 돈으로 사 먹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예전에 콩국수 맛집이 있다고 해서 점심때 회사 직원들과 한두 번 갔던 것 빼고는 기억나는 콩국수 경험도 없다. 그랬는데 이상하게 올해에는 콩국수 맛집 피드와 영상들이 많이 보이더니 계속 콩국수가 당겼다. 나이 때문일 수도 있겠다. 모든 음식에는 평생의 총량제한이 있다는 말을 어디서 본 것 같았는데 이제 나에게도 콩국수의 시간이 시작된 듯싶었다. 마침 우리 동네에는 유명한 두부 가게가 있었고, 거기서 파는 콩국물이 인기였다. 아침 요가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콩국물과 생면을 사와 면만 익혀서 콩국물만 후다닥 부어먹었는데도 너무 맛있었다. 친정에도 놀러가 콩국수를 엄마한테 만들어주기도 했다. 여름을 추억할 수 있는 음식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그날의 온도와 습도와 함께 추억하는 기억은 더 오래 지속되는 것 같다. 무더위로 지친 여름날도 많았지만, 무더위 때문에 느낄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들도 소중할 따름이다. 다가오는 가을도 온 마음으로 맞이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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