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monster, 2003)
몬스터의 시작은 매우 강렬하다. 작은 프레임 속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내레이션과 함께 점점 프레임이 확장되며 그동안의 모습이 쭉 진행된다. 그리고 붉은색으로 제목이 나오며 도로변에 앉은 형체와 총, 그리고 에일린 워노스(샤를리즈 테론)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아마 당시에 사람들은 단 2분 만에 샤를리즈 테론이 각종 시상식을 휩쓸 것이란 걸 알았을 것이다.
이 영화를 말할 때 흔히들 범죄자에게 동정심을 부여하는 위험한 영화라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그럴 수 있겠다. 나 역시 에일린 워노스의 삶을 보고 어떻게 연쇄살인범이 되었는지를 이해했다. 이러한 동정심은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겐 잔인한 일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연민을 부여할 뿐 미화는 없다. 지금껏 범죄를 미화하는 수많은 영화가 있었다. <히트>, <무간도> 등 느와르 영화의 대부분은 범죄자를 멋있는 마초남성으로 그려낸다. 이러한 영화들의 특징은 이후 모방범죄가 많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범죄를 다룬 영화 중 위험한 건 범죄자를 동정하게 하는 영화가 아니다. 범죄자를 대단한 무언가로 그려내는 것이 더 위험하다.
그런 의미에서 몬스터는 모든 것에 들어맞지 않는다. 할리우드의 대표 미녀 배우인 샤를리즈 테론은 본인의 얼굴을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열연하고 분장했다. 그녀의 인생을 동정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범죄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지는 않았다. 그저 그녀의 인생을 이해하고 우리에게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패티 젠킨스 감독은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영화를 만들어냈다.
실화 사건을 다루는 건 어떠한 소설이나 이야기로 영화를 만드는 것보다 어렵다. 특히나 범죄사건이면 더더욱.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백한 사건은 유가족과 관련자들에게 민감한 사안이며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일린 워노스의 사건은 이런 것을 포함하더라도 꽤나 특이하다. 우선 가장 잘 알려진 여성 연쇄살인범이며 범인은 성매매종사자였고 피해자가 그 성구매자였다. 또한 그녀의 과거는 보는 사람이 처참할 정도로 불행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사리 그녀를 악마라고 말하지 못한다.
제목이 the monster도 아니고 monster인 이유는 지칭하는 대상이 에일린 워노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범죄자들을 우리는 괴물이나 악마라고 말하지만 여기서 몬스터는 그녀를 포함한 사회와 다른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연쇄살인범이 그렇듯이 에일린 워노스의 어린 시절 역시 매우 불행했다. 아마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할 것이다. 모두가 불행하다고 연쇄살인범이 되지는 않는다. 이것 역시 맞는 말이다. 며칠 전 한 교양 프로그램에서 상류층들의 노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트럼프와 같이 재벌 2세, 3세들은 자신의 노력만으로 무언가를 이루어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회의 시스템이나 재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다. 우린 상류층들의 이런 발언들은 비난하면서 반대로 약자에겐 더욱 가혹한 면이 있다. 최하층의 사람들이 범죄의 길로 빠지는 것을 보고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며, 모두가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는다며 쉽게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시스템에서 빈민층은 범죄에 빠지기 쉬우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 하나 구하기 힘들다. 우리의 이런 말들은 이러한 시스템을 무시하는 트럼프의 말과 별로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난 누구를 좋아해 본 적이 없어"
에일린의 인생은 셀비를 만나고 달라진다. 사랑을 알게 된 것이다. 레즈비언인 셀비는 에일린에게 호감을 느끼고 다가간다. 에일린에게 대가가 없는 순수한 호감은 낯설다. 때문에 셀비에게 위의 말을 꺼내며 말한다. 에일린이 정말 레즈비언이었는지는 모른다. 왜냐하면 그녀는 누구를 사랑해 본 적도, 누구에게 진심으로 사랑받아본 적도 없으니까. 결혼을 했었지만 65세가 넘은 노부호였다. 셀비를 만나고 에일린은 달라지려 한다. 집을 나온 셀비와 함께 모텔에 묵으며 창녀를 그만두고 일을 구해 제대로 살아보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의 벽은 언제나 높다. 게다가 팔을 다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셀비는 일을 할 수도 없다. 에일린은 셀비를 통해 사랑을 알았지만 배우지는 못했다. 어른이 될 때까지 사랑을 배운 적이 없는 그녀는 어떻게 사랑을 줄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조언을 열심히 새겨들었고 덕분에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지.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사랑과 자신감만 있으면 된댔어. 그것들만 있으면 못할 게 없다더라고. 사랑과 자신감만 있으면 된다고? 말이야 좋지. 세상은 그렇게 굴러가지 않아. 그래도 열세 살에는 사실을 말하는 것보다 거짓말이 먹히는 법.
대게 연쇄살인범의 어린 시절은 불우하다. 수많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제대로 된 보호자가 없거나 학대하는 보호자를 두었다. 에일린은 이런 연쇄살인범의 법칙처럼 불우한 어린 시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랬음에도 조금의 희망은 존재했다. 무언가를 배우려고 했었다. 하지만 세상은 약자에겐 언제나 더 가혹하다. 사람들은 창녀가 쉽게 돈을 번다고 욕을 한다. 하지만 창녀의 몇은 인신매매로, 몇은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지 못해 성을 사고판다는 걸 간과한다. 그러면 또 모두가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창녀나 범죄자가 되는 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통계적으로 보았을 때 그런 불우한 환경에서 성공한, 흔히들 개천에서 용 난다고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우린 재벌 2세들이 쉽게 성공한다고 욕을 하면서 우리가 보통의 삶을 물려받고 최하층의 삶을 살지 않는 것 역시 타고난 환경과 교육의 힘이라는 걸 무시한다.
게다가 우리가 사이코패스라 부르는 집단은 뇌에 이상이 있는 사람들이다. 공통적으로 전두엽에 기능저하가 나타나는데 이는 공감능력을 상실하게 되므로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다. 장애, 즉 결함으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을 동정하라는 말이 아니다. 살인자의 후손이라던 뇌과학자 제임스 팰런은 사이코패스의 조건에 세 가지를 명시했다. 1. 유전 2. 전두엽의 손상 3. 환경
대부분은 앞의 두 가지를 타고나더라도 행복한 환경에서 자라난다면 그 기질을 조절할 수 있다고 한다. 사회화가 되고 교육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앞의 두 가지가 사이코패스로 발현될 것이다. 모든 게 유전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우리의 환경이 중요한 요소인지를 말하는 것이다. 에일린 워노스는 사이코패스 테스트에서 30점을 넘겼고 연쇄살인범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렇게 된 데에 전적으로 유전의 책임이 있는 게 아니란 것이다.
나한테 상처를 준 건 언제나 선량한 존재들이었지. 상상도 하지 못한 끔찍한 것들은 오히려 상대하기 쉬웠어.
영화에서 에일린이 고통받는 인물들은 대부분 친밀하게 지내던 사람들이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그리고 이웃집의 노인. 동네 사람들. 이제는 사랑하는 셀비까지. 선량한 사람들은 대부분 에일린을 상처 주는 걸 개의치 않아 했다. 그녀가 창녀였기 때문일까, 자신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 어쨌든 사회에서 본다면 우리와 더 가깝게 느껴질 수도 있는 사람들이, 어쩌면 우리 사회가 이런 사람들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에일린은 레즈비언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셀비를 사랑했다. 셀비의 유도로 자백을 하고 사형을 선고받는다. 현재는 이런 판결이 조금 가혹했다는 사람들도 있다. 첫 번째 희생자는 자기 방어로 인해 사망했었고 이런 그녀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셀비가 자신을 배신했음을 아는 순간에도 그녀는 결국 셀비를 위해 자백을 하고 재판을 받는다. 셀비 때문에 시작된 범죄도, 그 끝도 셀비 때문이었다. 사랑은 그녀를 파멸시킨 원인 중 하나였다. 어린 시절엔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해서, 어른이 되어서 조그만 사랑에 매달리다 파멸한 것이다.
사형선고를 받고 에일린은 마지막으로 이런 독백을 한다.
사랑은 모든 걸 이긴다. 시련 뒤에는 기쁨이 있고 신념은 산도 움직인다. 사랑은 모든 길로 통하며 이유 없는 결과는 없다. 삶이 있는 한 희망이 있는 법.
말이야 좋지
좋은 말 뒤에 비웃는 듯한 마지막 말은 결국 앞의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게 아니다. 앞의 사랑, 기쁨, 신념, 이런 것들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한다. 그녀에게는 심지어 삶 역시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행한 것들에는 이유가 있었고 이건 모두 그에 따른 결과라고 말한다. 피해자들에겐 화가 날 소리지만 패티 젠킨스는 위험한 말을 영화 전체를 통해 던진다. 가해자를 동정해 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