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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엘 Oct 27. 2023

항암기록지: 1차 항암_PART 1

내 감정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항암제는 내 혈관을 타고.


“망했다”


첫 번째 항암치료를 위한 입원날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처음 한 생각이었다. 정신이 들기도 전에, 눈을 채 뜨기도 전에 ‘첫 항암부터 망해도 제대로 망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치료 중에 필요한 물건을 미리 사놓으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그만 감기에, 그것도 하필 지독한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처음엔 상태가 그렇게 심각하진 않았다. 그저 며칠 잘 자고 잘 쉬면 괜찮아질 컨디션이었다.  하지만 치료 전에 이것저것 정리하고 준비한다고 몸을 혹사시키다가 그만 병세가 심각해지고 말았다. 감기에 걸리면 항암이 밀릴 수도 있고, 혹여 예정대로 치료를 진행한다 하더라도 몸이 많이 힘들다는 말을 들었기에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컨디션을 관리했지만 단 며칠 만에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 첫 치료부터 난항이 예상되었기에 아침부터 쉴 새 없이 눈물이 흐르고 기분은 걷잡을 수 없이 우울해졌다.


겨우 정신을 차린 후 마음을 다잡고 짐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바라본 그날의 날씨는 너무나 청명하고 따스하면서도 시원했다. 먹구름이 잔뜩 낀, 아니 초대형 태풍이 휩쓸고 다니는 것만 같던 내 기분과는 정반대였다. 하루종일이라도 자전거를 탈 수 있을 만큼 파랗고 예쁜 가을 하늘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고 창문을 열고 숨을 쉬면 맑은 공기가 느껴졌다. 차라리 날씨가 좋지 않았다면 내 기분이 조금이라도 괜찮았을까?


불행 중 다행이랄까, 병원에 도착하니 슬퍼하거나 우울해할 시간이 없었다. 내게는 해야 할 일이 엄청나게 많았다. 입원수속을 마치고 병실 안내를 받자마자 옷을 갈아입을 틈도 없이 바로 채혈을 했고 몇 가지 검사가 진행되었다. 간호사 선생님과 의사 선생님, 영양사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찾아와 내게 이것저것 묻고 항암치료 과정과 부작용, 향후 치료 과정 등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병원에 도착한 지 네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는 비로소 혼자가 되었다. 정신없는 일정 덕분에 슬픔과 우울함은 잊힌 지 오래였고 기분은 한결 나아졌다.


병원에서 밤을 맞이한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2013년에 자전거 사고로 며칠 입원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가벼운 부상으로 입원했던지라 마음이 가벼웠고 무엇보다 회사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그저 행복했었다. 그 당시 병원은 치료를 위한 장소라기보다는 쉬는 장소로서의 의미가 더 컸다. 그러나 2021년의 입원은 달랐다. 내 몸에 느껴지는 고통은 하나도 없었지만 나는 환자, 그것도 국가에서 지정한 중증질환 환자였고 회사는 며칠 쉬면 되는 게 아니라 몇 달을 쉬어야 했다. 내 바로 옆 침상에는 당일에 유방암 수술을 하신 환자분이 누워 계셨다. 밤새 커튼 사이로 그분이 힘들어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항암치료를 시작하기도 전에 수술로 힘들어하시는 분을 보니 또다시 스멀스멀 두려움과 불안이 몰려왔다. 잠들기가 힘들어 귀마개를 끼고서야 겨우 잠을 잘 수 있었다.

옆 환자분의 보호자로 오신 아드님께서 죄송하다며 주신 음식들. 얼떨결에 병원에서 야식을 먹었다.


다음 날, 점심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치료를 시작했다. 간호사 선생님께 항암제가 담긴 파우치 네 개와 수액이 담긴 파우치 몇 개를 들고 오셔서 내가 맞을 약이 맞는지 확인하셨다. 파우치를 보며 각 항암제의 이름을 확인하는데 기분이 묘했다. 약 한 달 동안 이름만 알고 지내던 녀석(!)들을 눈앞에서 보니 마치 연예인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음속으로 항암제들에게 인사하며 소원을 빌었다. ’드디어 너희들을 만났구나! 반가워. 잘 부탁해. 힘들어도 되니 부디 내 몸에서 암을 다 없애줘.‘


표적항암제인 허셉틴(Herceptin)과 퍼제타(Perjeta)를 먼저 맞은 후에 독성항암제인 도세탁셀(Doccetaxel)과 카보플라틴(Carboplatin)을 맞았다. 표적항암제를 맞을 때는 별 느낌이 없었다. 몇 년 전 컨디션이 안 좋아 내과에서 비타민C 수액을 맞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느낌이 비슷했다. 하지만 독성항암제를 맞을 때는 약간 가슴이 답답하고 어지러웠다. 모든 항암약을 다 맞고 나서 수액도 맞았기 때문에 총 여섯 시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책도 읽고 낮잠도 자고 영화도 보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항암치료를 하러 온 게 아니라 쉬러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 걱정 없이 푹 쉬는 게 얼마나 오랜만이었는지 내 몸에는 항암약이 들어가고 있는데도 마음은 편했다. 전날에는 그렇게도 기분이 우울하더니 막상 항암제가 몸에 들어오니 ‘드디어 암을 없앤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기도 했다.


약을 다 맞고 나서는 아무 느낌이 없었다. 느껴지는 부작용도 없었다. 유방암 환자들 사이에서 ‘공포의 빨간약’이라 불리는 아드리아마이신(Adriamycin)의 경우에는 항암제를 맞고 몇 시간 후에 즉시 부작용이 나타나지만 내가 썼던 약들은 며칠 지나야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했다. 특히 백혈구 촉진제인 뉴라스타를 맞고 나면 그다음 날부터 엄청난 근육통에 시달린다고 했다. 뉴라스타는 다음날 맞기로 되어 있었다. 며칠 뒤 다가올 고통이 두려웠지만 어쨌든 당일은 컨디션이 괜찮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내 인생 첫 항암치료가 끝났다. 부디 약이 아주 잘 들기를 기도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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