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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엘 Apr 23. 2023

어느 30대의 암 극복기: Intro_PART 3

왜 쓰기로 했는가

항암 치료와 수술이 끝나고 이제 막 태어난 강아지의 털처럼 얇고 힘없던 머리카락이 ‘이젠 모자를 벗고 다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제법 자랐을 무렵, 나의 투병기와 투병을 하며 했던 생각들, 그리고 투병 후의 생각들을 글로 남기고 싶어졌다.


내가 글을 쓰고자 마음먹은 이유는 많지만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이다.


첫째, 기록하기 위해.

나는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기록을 남기고자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항암치료 기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지만 내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기도 했던 기간이기도 하다.


몸과 마음이 힘들었을 텐데 잊고 싶지 않느냐고? 물론 심하게 고생했던 날들을 생각하면 모든 기억을 잊고 싶을 때도 있다. 가끔은 치료 기간 중에 찍었던 내 사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날 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힘들었던,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린 채 지냈던 시간이 없었다면 현재를 즐기고 작은 것에 감사하는 방법, 인생을 즐기는 방법, 진정으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둘째, 공감하기 위해.

인간은 혼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공감해 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 나는 나와 같은 시간을 겪었던 환우들, 또는 앞으로 내가 겪었던 시간을 겪을 예비 환우들과 공감하고 생각을 나누고 싶다.


암 환자들에게는 같은 처지에 처한 환우들이 큰 힘이 된다. 치료를 받는 동안 환우들끼리 울고 웃고 서로를 위로하다 보면 치료 기간은 생각보다 빠르고 즐겁게 지나간다. 치료가 끝난 후 다시 바깥세상에 돌아갈 용기가 부족할 때, 또는 세상에서 상처를 입었을 때 서로 위로하며 용기를 북돋아주다 보면 내게 아주 크고 튼튼한 울타리가 생긴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하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이제 막 진단을 받았든, 이미 치료가 끝났든, 어디에 사는 누구이든 상관없다. 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은 나의 친구이다. 그러니 나는 당신이 외롭다고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당신이 어떤 걱정과 고민을 하든 당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당신의 생각보다 많음을 알았으면 한다. 당신은 절대로 혼자가 아니다.


셋째, 위로가 되고자.

내가 글을 쓰는 가장 크고 중요한 이유다. 나는 이제 막 암을 진단받은 사람, 또는 사랑하는 사람이 암을 진단받아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다.


암 환자라는 선고를 받은 순간부터 세상은 다르게 돌아간다. 내가 몇십 년 동안 알던 세상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 『농담』에 나오는 한 구절처럼 “양피지에 쓰인 어떤 전설이나 신화 같은 것이 되어 조그만 금속 상자에 숨겨져 내 인생의 저 깊은 곳에 놓여”과거로 귀속되며, 새로운 현실과 미래가 나를 기다린다.


암 환자가 되면 이 세상에 나 혼자만 남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크고 작은 걱정과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암을 진단받았다는 사실보다 혼자가 된 것만 같은 기분과 미칠듯한 외로움,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의문, 그리고 암이 생긴 원인이 내 자신에게 있을거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시간들이 나를 더 힘들게 하기도 한다. (여기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다른 건 다 잊어버리더라도 이것 하나는 꼭 기억했으면 한다. 암은 절대로 당신이 잘못해서, 잘못 살아서 생긴 것이 아니다. 암은 교통사고 같은 것이다. 그러니 절대 스스로를 자책하면 안 된다.)


나는 항암 치료나 수술을 앞둔 당신이 절망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힘을 내길 바란다.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는 음식을 가리지 말고 좋아하는 것을 맘껏 많이 먹고 여행을 많이 다녔으면, 우는 날보다는 웃는 날이 가득했으면 한다. 그리고 항암 치료에 대해 심하게 걱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항암 치료가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것만큼 결코 힘들고 지옥 같지만은 않다는 것을, 치료 기간 내내 침대에 누워 지내야만 하는 것이 아님을, 침대에 누워 지내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고 그 시간이 지나면 운동도 할 수 있고 심지어 여행도 다닐 수 있음을, 정말 아주 가끔은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만큼 힘든 순간들도 있지만 그래도 ‘에이 뭐 이 정도는 견딜만하네’라고 생각하는 날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을 잘 버티고 나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 같던 소소하지만, 그렇기에 소중한 당신의 빛나는 일상이 돌아온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당신 앞에 놓인 터널이 끝도 없어 보일지라도, 그 터널을 지나는 과정이 조금은 험난할지라도 그 터널 끝엔 분명 출구가 있다. 그리고 그 출구를 지나면 당신은 몸도 마음도 이전보다 더 건강해질 것이다.


일상은 돌아온다. 꼭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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