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연 Jun 14. 2024

30대 사춘기이시네요.

사장님 월급은 0원 6화 : 30대 사춘기 3 - 나와보니, 팬데믹

나는 그럴 리 없어. 나는 나약하지 않아. 난 괜찮아.

로 버텨오던 퇴사 후의 삶. 마지막 보루였던 내 통장 잔고가 바닥을 치고 버티고 있던 댐이 터져버리고 전 끝없는 바닥으로 떨어져 버린 기분이었어요.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은 와요>에서 우울증을 엄청 잘 시각화해서 표현했다고 느꼈어요. 왜냐하면 제가 딱 그랬었거든요. 발을 떼려 해도 자꾸 늪에 빠지는 기분이 들고, 난 괜찮다며 부정하고, 밖에 나갈 수 없게 되고,...


나는 나의 병을 몰랐다.

정확히는,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통장이 바닥을 치기 전부터 제 상태는 좋지 않았어요. 제가 누구보다 잘 느끼고 있었어요. 하지만 계속 부정했어요.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과의 만남 자체도 그냥 거짓된 인생을 사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 속은 새까맣게 타있는 상태인데, 억지로 괜찮아 보이고 싶어서 퇴사 파티도 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나 잘 살아.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이 모든 게 거짓이었어요.


전 안 괜찮은 게 맞았거든요.


어둠의 숲으로 스스로 뛰어들다.

잠자는 어둠의 숲 속의 살아있는 시체.

그렇게 2019년 12월까지 버티고 버티다가, 퇴사파티 겸 연말파티를 주최한 이후, 전 바로 어둠이 짙은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2020년 1월

2020년 2월

2020년 3월

... 의외로 어둠의 숲엔 끝이 없었어요. 계속 어둠 속에 있었어요. 


핸드폰의 모든 알람을 꺼버리고, 이불속을 벗어나지 않았어요. 하루 24시간 중 잠시 화장실을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그저 시체처럼 누워만 있었어요. 숨은 붙어 있었지만, 미동도 없었고, 제 머리와 마음속엔 어둠만 가득했습니다. 하루 20시간 이상을 잠만 잤어요. 사람이 어떻게 20시간을 잘 수 있냐고요? 의외로 가능하더라고요.


깨어있는 시간은

지옥이었다.

그럼 깨어있는 시간엔 뭘 했을까요? 생각할 시간을 두면 안 됐어요. 누워서 넷플릭스를 보다가 잠들고, 또 깨면 넷플릭스를 보다 잠들고. 그걸 반복했어요. 물론 잠깐씩 생각을 했죠. 정말 그 시간은 지옥이었어요.

불안감의 증폭, 자기 비하의 끝은 언제나 눈물이었어요. 그렇게 넷플릭스를 보거나, 아니면 울거나. 둘 중 하나였어요. 그래서 최대한 깨지 않는 것이 좋다고 느껴졌어요. 당장 그 끔찍한 순간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전 그 지옥 같은 시간에서 도망쳐야만 했어요. 그게 제가 유일하게 살 길이었어요.


어느 순간,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다.

이 시간이 제일 위험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나는 쓸모없어."

"나는 친구들에겐 없는 편이 더 좋아."

"나는 무가치해."

"내가 할 줄 아는 건 아무것도 없어. 나는 무능해."

"나 때문에 다들 힘든 거야."

등등... 의 자기 비하가 끊임없어지던 순간 깨달았어요.


"아, 나는 없어도 되는 사람이구나."


라고 말이에요. 극단적으로 변하는 건 한 순간이더라고요. 미디어에서 우울증으로 죽은 사람들을 보고 저는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죽을힘으로 살지.라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막상 우울증을 겪게 되니 '아, 살아갈 힘보다 죽는 게 더 쉽구나. 죽음이란 그렇게 어렵지 않은 거 같아.'라고 말이에요. 제가 우울증을 겪어보니 알게 된 것 같아요. 역지사지로 배운 거랄까요. 그래서 빨리 생을 마감하시는 분들을 보면 100분, 1,000분, 전부는 아니지만, 이해가 가더라고요. 죽을힘으로 살 수 없을 정도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2020년 4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와의 다툼 끝에

밖으로 나오다.

엄마가 울면서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제발 부탁이니, 병원에 한 번만 가자고요. 저는 너무 화도 나고 짜증도 났어요. 그땐 자기 원망과 타인에 대한 원망까지... 모든 게 뒤엉켜 있었거든요. 

근데, 또 살고 싶긴 했나 봐요. 그 당시 감정은 너무 짜증 나고, 모든 게 싫은데, 이렇게 있다간 진짜 내가 죽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진짜 집에 있는 아무 옷이나 걸쳐 입고, 초라한 모습으로 밖에 나왔죠.


3-4달 만에 나온 세상은 온통 무거웠다.

하지만, 다행이었다.

당시 엄마가 마스크를 챙겨주셨던 게 기억나네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를 쓰고, 엄마와 함께 병원으로 나섰어요. 밖으로 나온 세상은 딱 저 같았어요.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어요. 

대학병원 신경정신과 진료를 위해선 작은 병원에서 진단서를 끊어가야 해서, 대학병원 옆에 있는 내과에 가서 진단서를 받아서 갔던 것 같아요. 그 모든 과정이 너무 짜증 나고 불편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와중에도 마스크를 왜 쓰는지 이유도 잘 몰랐는데, 차라리 다 같이 마스크를 써서 뭔가 내가 그 안에 묻어간다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론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병원이 무너질 정도로

눈물을 쏟아내다.

엄마가 진료를 신청하고, 수납을 하시고, 순서를 기다렸어요. 고개를 푹 숙이고, 구석의 의자에 앉아 있었어요. 정말 아무 생각이 없던 것 같아요. 마침내 제 이름이 호명되고, 진료실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선생님과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선생님이 물어보셨어요. 어떤 게 힘드냐고, 어떤 상태냐고... 별로 뭐 물어본 것도 없는데, 갑자기 저는 눈물이 펑펑 쏟아졌고, 속상한 마음을 모두 털어놨어요. 약... 40분 간요... 원래 대학병원에선 약물 처방에 대한 간단한 진료만 약 10분-15분 정도 하는데, 전 선생님이 물어보신 말에 제대로 대답도 못할 만큼 울어버렸어요. 근데, 또 생각해 보면 울면서도 제가 처한 상황을 다 말했던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일 때문에 너무 속상하고, 나는 거짓말쟁이 같고, 결국 내가 다 문제인 것 같다는 이야기들을 약, 40분간 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제 이야기를 다 받아주시고, 이해해 주시고, 말씀하셨어요.


수연 씨는

30대의 사춘기가 온 것 같아요.

갑자기 그 한마디 말이 뭐라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어요. 그리고 그때 진단들은 좋지 않았어요. 극심한 우울증에, 과수면을 하고 있는 게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요. 너무 오랜 시간을 자다 보면, 몸의 기능과 뇌의 기능도 떨어지고, 활동성도 낮아져서 우울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뇌의 세로토닌을 분비시켜 줄 수 있는 약을 처방받았어요. 그리고 임상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죠.


그렇게 저는 세상 약 4개월 만에 세상 밖으로 발을 내디뎠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제가 치유되어 가는 과정을 이야기해볼게요.


제 월급은 오늘도 0원입니다.


누구나처럼 평범하겠지만,

누군가에겐 용기가,

누군가에겐 도움이,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는 이야기가 되면 좋겠어요.


<사장님 월급은 0원> 구독하시고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의 댐이 무너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