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한 바는 아니었습니다
공평과 차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의도적인 차별이 있을 수도 있고, 전혀 의도한 바 없이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공평하지 못하다는, 차별받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으신 분은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분노하게 하고, 동시에 초라하게 만드는지 이해하실 것 같습니다.
늘 공평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어찌 되었든 사람인지라 모든 순간에 자로 잰 듯 정확하게 반으로 나눌 수 없는 상황이 있을 테고 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중고등 아이들을 가르칠 때였습니다.
유난히 예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중학교 2학년 남학생, 바로 현우입니다.
다른 선생님들도 그 아이를 참 예뻐했고, 현우 주변에는 항상 친구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잘생긴 외모에 반듯하고 예의 바른 성격, 그리고 공부는 물론 운동까지도 잘하는 아이라 친구들 부모님들도 현우와 함께라면 무조건 승낙을 해준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냥도 예뻤던 현우를 제가 더 예뻐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그 당시 일했던 곳에서 매달 아이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일종의 만족도조사 같은 개념으로 생각해도 될 듯합니다. 여러 가지 질문 중에 하나가 내가 친하다고 생각하는 선생님이름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현우가 저를 불렀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저랑 친하세요?"
질문이 좀 뜬금없긴 했지만,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을 했습니다.
" 그럼. 선생님 현우랑 엄청 친하지..."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이 반 친구들 모두 좋아한다고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나중에 그 반 담임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00 선생님은 우리 반 아이들이랑 되게 친하신가 봐요~"
이유는 그반 아이들이 친한 선생님으로 저를 많이 적었다고 하셨습니다. 일련의 비화를 숨긴 채 저는 선생님반 아이들이 너무너무 예쁘고 좋다고 너스레를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람마음이라는 게 참 희한했습니다. 한번 그렇게 입으로 뱉고 나니 원래도 예뻤던 그 아이가 더 예뻐 보였습니다. 사람마음은 말하지 않아도 겉으로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특히나 누군가를 예뻐하고 좋아하는 마음은 숨겨지지가 않았나 봅니다. 그 당시만 해도 문제들을 일일이 만들고 수정하고 했던 때라 가끔 재미 삼아 정답선택지에 현우이름을 넣고는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 사이에 00 선생님 문제 정답은 현우다...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그저 장난 삼아 재미로 했던 일이라고 하지만, 안 했으면 좋았을 일이다 싶습니다.
현우가 아닌 다른 친구들의 기분은 미처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요즘 아주 작은 하나하나도 서운해하고 간혹 심각하게 속상해하는 제 모습을 보며, 갑자기 십여 년 전 현우가 떠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다른 아이들을 차별할 의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차별이 아니라 그저 현우를 조금 더 이뻐해 줬을 뿐이라고 그 당시 제 행동을 합리화시켜보려 하지만, 요즘 문득문득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감당 못할 서운한 감정은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그때 그 아이들이 느꼈을 거라 생각하니 너무나도 미안해집니다.
도대체...
내가 그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 분명 겉으로 표현은 못했을지라도, 별 생각 없이했던 행동에 누군가는 차별받는 듯한 안 좋은 감정이 들었을 테니 말입니다.
늘 역지사지를 이야기하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보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나의 행동은 살펴보지 않은 채 그저 다른 이의 행동을 서운해하는 제모습은 그야말로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음을 반성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