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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Apr 16. 2024

첫사랑의 맛

혹시, 그 맛을 기억하나요?

혹시 첫사랑의 맛을 기억하고 있나요?

저는 첫사랑이 언제인지, 그 대상이 누구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첫사랑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문사진 보셨지요?

혹시 무슨 꽃인지 아시나요?

지난주, 예전에 같이 일했던 분들과 만나 데이트를 했습니다.  다들 서울 사시는 분들이 아니라서 서울의 봄소식에는 깜깜이들이었답니다. 매스컴으로 봤던, 수많은 인파들에 떠밀려 다니는 상상을 하고 여의도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더라고요. 흩날리는 벚꽃은 구경을 할 수 있었는데, 사람대신 도로에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여의도 벚꽃축제가 이미 끝났다는 것!

아쉬운 대로 몇 장의 사진을 찍고는 여기저기 구경을 다녔습니다.

일명 서울구경 말입니다.


그 노래 다들 아시지요?

이문세 님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

그 노랫말 속에 라일락꽃이 등장합니다.

 "라일락 꽃향기 맡으면/ 잊을 수 없는 기억이"라고 말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꽃이 있는데, 우리가 흔히 착각을 하는 게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사진 속 수수꽃다리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수꽃다리꽃을 라일락으로 잘 못 알고 있다는군요. 생김새도 비슷하고 향도 비슷하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수꽃다리/라일락/미스김 라일락


그날 사진으로 찍은 꽃은 수수꽃다리였습니다.


그분이 저 꽃을 라일락으로 착각을 하고는 갑자기 첫사랑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여고시절 국어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첫사랑의 맛이 어떤지 물어보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교정에 핀 라일락 잎을 하나 떼어서 두 번을 접은 후에 어금니로 꽉 물어보라고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순진한 여고생들은 선생님께서 맛 보여 주신다는 첫사랑의 맛이 궁금했겠지요?

다들 잎사귀 하나씩을 떼어서 고이 접은 후 어금니고 힘껏 물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진하고 향기로운 맛이 느껴졌을 까요?

주변에 라일락꽃이 있으면 한번 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분도 그 시절 국어선생님 말씀대로 따라서 해보았다가 정말 진한 첫사랑의 맛을 느꼈다고 합니다.


저는 사실은 그분이 해보라고 잎사귀 하나를 따서 주었는데 살짝 망설여지더라고요. 일단은 길가에 있는 것들이라 깨끗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쭈뼛쭈뼛하는 사이에 옆에 계셨던 분이 아주 감사하게도 먼저 힘껏 깨물었던 것입니다. 순간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바닥에 뱉어버리는 걸 보면서, 안 하길 잘했구나 안심을 했습니다.

일명 실험맨이 된 그분은 그 이후로도 계속 미각이 마비된 것 같다고 하시더니 나중에는 두통을 호소하시더라고요.  

'아, 잊고 있던 첫사랑이 저렇게 쓰고 생각하면 머리도 아픈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제야 첫사랑의 맛을 이야기해 주신 분이 뒷이야기를 덧붙이셨습니다.

 "어때? 쓰지?"

"네."

"너희들, 지금 이 맛을 잘 기억해. 첫사랑은 이런 맛이야."라고 하셨답니다.


모두에게 첫사랑이 쓰디쓴 맛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떠올리면 풋풋하고 아름다운 기억일 수도 있고요, 안타까워서 눈물이 날 수도 있겠지요?


사실 라일락꽃향기는 모른척하고 무심히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사방으로 향기가 진동을 하죠.

"어딜 보는 거야?"

"나 여기 있잖아." 하는 듯 말입니다.


그런데 혹시나 그 맛이 궁금하지는 않으신가요?

저는 처음에는 실험맨이 되지 않은 사실에 다행이다 싶었는데, 갑자기 그 맛이 너무나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어제 공원에 들른 김에 여기저기 라일락을 찾아다녔습니다. 안타깝게도 라일락은 없었고 모두 수수꽃다리였습니다. 아쉬운 대로 일단 수수꽃다리 잎을 따서 두 번 접은 후에 어금니 쪽으로 넣어 깨물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그냥 풀인 듯 봄나물인 듯 풋내가 나서 그냥 삼켜도 되겠다 싶었는데, 순각 훅~하고 올라오는 쓴맛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들고 있던 커피로 입속을 헹구었는데 아무런 보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커피맛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쓴맛이 계속해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아~, 이게 쓰디쓴 첫사랑의 맛이었구나.' 싶었습니다.


혹시라도 첫사랑이 기억이 나지 않으시는 분이나, 다시 한번 그 맛이 궁금하신 분은 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왠지...

이문세 님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이라는 노래를 듣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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