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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ctor flotte Mar 22. 2024

철학에 대한 오해 두 가지

철학이란 무엇인가?

차라리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그나마 낫다. 아름답거나 서정적인 분위기 또는 시나 소설 같은 장르 그것도 아니면 시대나 사회문제에 참여하는 문학운동 등 아무튼 맞고 틀린 것을 떠나 어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나름의 배경지식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그런 게 없다. 막연히 철학적인 것에 대한 동경이나 그리움 같은 것에 휩싸여 이런저런 책들을 찾아볼 뿐이다. 그러다가 아마도 말이 어렵다거나 기대했던 것보다 더 공허한 이야기들이 많아 포기할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철학자들은 왜 그렇게 말이 많은지 말은 끝도 없고 책은 두껍기만 하다. 이러한 장애물을 참고 이겨내야 철학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은 사실 자포자기와 같다.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철학자들에게도 골칫거리이다. philosophy의 어원을 분석하는 일은 솔직히 나도 아직 철학이 뭔지 모르겠다는 고백과 같다. 전문 철학자들은 자기 전공에 빠져 그 물음을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 대부분인 것 같고, 가끔 덜 익은 철학자들이 철학을 함부로 정의하거나 나이 지긋한 철학자들이 알 듯 말 듯 한 미소로 철학을 정의하긴 하지만 그 사이에 끼어 있는 나로서는 아직 철학이 무엇인지 찾고 있는 중이다. 겸손이라 생각하며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거대한 물음을 한 없이 미뤄두는 것도 비겁한 것 같고, 남들이 했던 말을 따라 하거나 섣불리 정의하는 것은 더 싫다. 그래서 나는 고민하고 붙잡아 보려고 한다. 물론 거짓말이 있어서는 안 된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이 정도로 정해보자. 어쩌면 이 방법이 자연스럽게 우리를 철학이란 무엇인지 알게 할지도 모르겠다. 철학에 대한 오해 말이다.     


‘철학이 무엇인지 알 필요도 없이 철학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할 뿐이고 그래서 아무 쓸모가 없다.’ 지금 이 말에서 틀린 말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우리가 놓친 것이 있는데, 공허한 것이라고 해서 모두 쓸모가 없다거나 쓸모가 없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한 것이라면 그건 너무 생각이 짧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고 정확히 알지 못하는 공허한 것들 중에는 사실 우리의 평범한 상식과 일상을 지탱하는 것들이 많다. 숫자 0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없지만 있다고 간주하고 우리는 10을 100을 센다. 선분은 있는 것일까? 두 점 사이의 최단거리라는 선의 정의를 따르자면 사실 자로 대고 그려서는 안 된다. 볼 수 있는 그려진 선분은 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단거리라는 거리의 정의에는 아직 검고 얇은 선이라는 뜻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그렇다고 생각하고 산다. 그런데 이것은 문제가 안 된다. 우리가 엄격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게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특별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내일은 아직 없지만 있다고 생각하고 일정을 짜고, 나의 성공은 어디에도 없지만 있다고 생각하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한다. 없지만 있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들 중에 우리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것들을 철학은 다루고 있는 것 같다.     


‘철학은 말이 어렵다.’ 철학은 거짓말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삶이 무엇인지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우리는 삶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살아간다. 삶이 어려운 것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삶을 철학이 쉽게 설명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어려운 삶을 속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다루려 하기 때문에 철학자들의 말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철학적인 개념이란 난생 처음 본 모습을 그려야 하는 화가의 처지와 같다. 책임은 삶에 있는 것이지 철학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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