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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ctor flotte Mar 29. 2024

철학에서 ‘시작’의 의미

– 최초의 철학자들

대부분의 철학개론서는 사실 철학사든 주제별 철학입문서든 소위 최초의 철학자들이라는 사람들부터 시작한다. 탈레스와 같은 사람들이 그렇다. 뮈토스에서 로고스로의 이행이라든가, 자연에 대한 관심, 세계에 대한 놀라움이나 물음에서 철학이 시작되었다는 말은 교과서적인 이야기이다. 그런데 철학은 그렇게 시작과 함께 또 하나의 옛날얘기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철학의 시작이란 그런 게 아니다.


철학적인 텍스트는 마치 잘못된 표지판과 같다. 생각 없이 따라가면 나는 이상한 곳에 이르게 된다. 아주 오랫동안 되돌아올 생각도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철학박사들이 철학교수들이 되어간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이 시대는 불쌍한 시대이다. 탈레스가 왜 최초의 철학자일까? 그가 세계를 신화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즉 ‘물’이라는 물질로 설명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마는 사람이 있다면 조용히 자리를 뜨자.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의 의무, 즉 ‘생각’을 철학자라는 사람이 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본질이 물이라고 말한 것은 그가 물이라는 용어로 드디어 ‘모든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유한한 한 명의 인간이 (물이라는 이름으로) 감히 이 세상 모든 것을 부르고 있다. 모든 것에 직면해 모든 것에 맞서 싸우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최초의 철학자가 된다. 철학자는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철학은 그렇게 이제 우리에게서도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다리고 준비하고 느끼고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탈레스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탈레스가 되어야 한다.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모든 것에 대해 맞서야 한다. 이때 ‘모든 것’이란 물론 세상에 있는 모든 사물, 모든 지식을 뜻하지 않는다. 긁어모아서 만들어야 할 지식은 저들에게 주어버려라. 모든 것이란 외로움 속에서든 갑작스런 낯섦 속에서든 내가 모든 것에 직면해 있다는 그 순간 나만의 고유한 경험, 즉 내가 그 위력을 다 알 수 없는 세상에 둘러싸여 있다는 이상한 그러나 언제나 받아들이고 다시 시작해야 할 약간은 두려운 세계경험이다. 그 비일상적이고 이상한 경험을 정신을 차리고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 그러면 그곳으로부터 철학의 위대한 주제들이 하나씩 꽃피어 난다. ‘모든’ 현상의 이면에 있는 ‘본질’, 변하는 ‘모든 것’들 속에서 변하지 않는 ‘실체’ 등이 꽃이다. 이게 철학의 시작이다. 탈레스는 시간적으로 최초가 아니라, 언제나 내 안에서 최초이다.


철학은 탈레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나약한 한 인간으로서 모든 것을 감히 불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는 왜 모든 것을 불러내야 했을까? 자기 자신을 알아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무방비 상태로 모든 것에 직면해 있을 때 인간은 모든 것을 어떻게든 감당해야 하는 존재로 드러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언제나 이미 나는 그런 존재였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된다. 이제 나는 그냥 그런 존재가 아니라 모든 것에 맞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지만 비겁하거나 멍청하게 또는 게으르게 그 모든 것을 피하고 살아왔던 존재이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철학적 정의이다. 적어도 탈레스처럼 전체라는 경험을 통해 제대로 이르게 된 인간정의이다. 탈레스가 이러한 인간정의를 실제로 말했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내 삶에 대해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를 철학자로, 즉 가장 순수한 인간으로 만드는 그 최초의 경험을 다시 살려내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인간은 인간을 정의할 자격과 책임이 있다. 탈레스가 말하지 않았지만 탈레스로부터 우리가 들어야 할 인간정의, 이것을 계속 궁금해 하고 반복해야 한다. 그럼 우리는 모든 철학사책의 1장, 최초의 철학자들을 잘 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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