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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ctor flotte Apr 05. 2024

가장 수준 높은 질문

소크라테스의 대화법

AI의 등장과 함께 이제 사람들은 답을 찾는 것보다 질문하는 것이 중요해 졌다고들 한다. 정확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정확한 질문을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AI는 이 세상 모든 답들을 정리해서 알려준다. 이제 인간은 ‘정확한 질문’만 하면 되는 세상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정확한 질문의 정체가 실은 ‘AI가 알아들을 수 있는 자세한 입력어’에 불과하다는 것이고, 더 큰 문제는 ‘무엇인가를 물어본다’는 것이 결코 그런 가벼운 뜻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질문은 여러 가지 용도가 있을 것이다. 인간은 왠지 알 수 없지만 무엇인가를 궁금해 하는 본성을 타고난 생명체이다. 인간을 다룬 거대한 책이 있다면 그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해야 한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알고자 한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아마도 '가장 수준 높은 질문'이라는 것이 있을 것 같다는 점이다. 누가 누군가에게 하는 질문 중에 가장 수준 높은 질문이란 무엇일까? 누군가에게 질문을 한다는 것은 이해나 동의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몰라서 묻는 것을 우리는 가장 수준 높은 질문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해나 동의가 가지 않아서 질문을 할 때 우리는 쉽사리 감정에 휩쓸리게 된다는 점이다. 나름대로 이성적인 척하기 위해서 감정을 억누르고 되묻기도 하지만, 그렇게 억누른 감정은 이미 표정과 억양에 실려 상대방의 감정을 건드리고 있다. 그렇게 나의 가짜 질문은 상대방에 대한 ‘비난’이 된다. 상대방이 그걸 모를 리 없다. 그렇다보니 요즘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아예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무슨 현명한 처세술인양 생각하기도 한다. 수준 높은 질문에 대한 연습이 덜 되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보여준 질문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오늘도 가정을 뒤로 하고 맨발로 아고라 광장에 나가 당대 가장 뛰어난 지식인이라는 사람을 불러 세워 이렇게 묻는다. ‘가장 현명한 당신에게 배우고 싶습니다. 지식이란 무엇인지 알려주십시오’ 수준 높은 질문은 이렇게 겸손하게 시작한다. 그럼 상대방은 약간의 자신감과 우월감으로 대화에 참여한다. 그러고는 놀라운 양의 지식을 늘어 놓는다. 한참을 경청하던 소크라테스가 또 묻는다. ‘죄송하지만 지식의 종류가 아닌 지식이란 무엇인지 당신에게 배우고 싶습니다.’ 지식을 묻지 않고 지식을 채우기 바빴던 그 사람은 그 질문의 의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또 한 차례 전문지식을 늘어 놓는다. 그럼 소크라테스가 더 정중하게 다시 같은 질문을 한다. ‘위대한 ~여! 나는 지금 당신에게 지식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묻는 것은 무엇일까? 그의 질문은 왜 가장 수준 높은 질문일까? 우리를 당황스럽게 하는 것은 사실 소크라테스는 ‘지식’에 대한 정의를 묻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도대체 지식이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은 지식에 대한 질문이 아니다. 왜냐하면 결국 답을 찾지 못하고 소크라테스에게 지식이란 무엇이냐고 반문할 때 소크라테스는 미안하지만 자신도 모른다고 말하고 알수 없는 표정으로 만족스러워 하며 떠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지식을 많이 가진 지식인에게 지식이란 무엇인지 묻는다. 그것은 비난이 아니다. 아테네를 이끌어갈 한 훌륭한 지식인이 더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그는 진정으로 바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비판이라고 한다. 수준 높은 질문, 비난이 아닌 질문, 상대방이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겸손한 질문, 우리는 그 질문을 가장 수준 높은 질문이라고 부를 수 있다. 지식 그 자체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질문은 우리에게 지금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의 한계를 끊임없이 되돌아보게 한다. 그러고는 그 한계를 똑똑히 보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이제는 그 한계를 스스로 뛰어넘을 수 있는 발판과 힘이 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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