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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남 May 01. 2023

13. 누나를 위하여

삼십 년 만에 다시 음악을

최근 방미 중인 윤대통령이 백악관 만찬에서 Don Mclean의 American Pie를 부르는 것을 보다가, 5 년 전 내가 Vincent를 연습하던 일이 생각났다.


2017년 6월 초, 막내누나에게서 문자가 왔다.

'이번 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 인천대공원에서 수요사생회가 있는데 점심시간에 연주해 줄 수 있니?'

이화여중을 졸업한 누나는 서울예고를 톱으로 입학했을 정도로 미술에 재능을 보였지만 대학을 진학하지 못했다. 재수를 하던 바로 위의 넷째 누나와 동시에 합격을 하자, 사업에 어려움을 겪던 아버지께서 '딸들은 대학에 못 보낸다.'라고 하셨다.

그러자 절망한 넷째 누나는 약을 먹고 죽겠다고 소문을 냈다.

그러자 착한 막내누나가 아버지에게 '저는 제가 돈 벌어서 대학에 갈 테니 언니를 대학에 보내주세요.' 하고는 그 당시 유행하던 문학전집 할부책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누나는 대학을 포기하고 결혼하였다. 조카 둘을 낳고 잘 살던 누나는 매형이 사업에 실패하여 어려워지자 부평의 재래시장 노점에서 양말을 팔기 시작하더니 몇 해 후에는 작은 점포를 얻어 옷가게를 열었다.

그리고는 가게 뒤편의 좁은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더니 몇 년 후 국전에 입상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이 누나의 그림을 샀다는 소문이 나자 인근의 학부모들이 자기 자녀들 그림을 가르쳐 달라고 매달리는 바람에 누나는 옷가게를 정리하고 미술학원을 냈다.

칠십이 가까운 이제는 여유 있게 그림만 그리며 산다고 한다.


나는 누나의 초청에 쾌히 승낙을 하고 어떤 곡을 연주하면  화가들이 좋아할까 생각하다가 VINCENT 가 떠올랐다.

 곡은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추모하는 곡으로 팝 음악의 명곡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젊은 시절에 이곡을 연습해 보았는데 주법이 특이해 연주가 쉽지 않아 포기했었다.

나는 누나를 위하여 이 곡을 연주하기로 결정하고 연습에 들어갔다.

하지만 쉽지 않은 기타 연주와 방대한 가사는 육십 대 중반에 든 나의 몸에서 거부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왼편 어깨에 통증이 오기 시작하더니 몸살까지 났다.

주일에 교회에 갔더니  목사님이 '선생님, 어디 편찮으세요? 안색이 안 좋으시네요.' 하셨다.

나는 '누나를 위하여 빈센트를 연습했는데 곡이 너무 어려워 노인의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 같아요.'라고 하자 '아니 왜 그렇게 어려운 곡을 연습하세요?'라며 말렸다.

나는 '음악을 하던 시절의 경험을 보면, 어려운 곡을 열심히 연습해 연주해 내면 청중들의 반응이 바로 오거든요. 아마 일주일만 더 연습하면 해낼 거예요'라고 했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신도가 열명도 채 안 되는 작은 개척교회다.

나는 어깨에 파스를 붙이고 조심조심 몸을 달래 가며 연습해 나갔다. 그리고 방대한 가사를 전부 외웠다.

다음 일요일에 교회에 가서 예배 후에 연주를 하자 목사님과 신도들 모두들 환호했다.

초로의 육신의 거부반응에도 불구하고 완주해 낸 이 곡은 나의 음악 도전에 큰 힘이 되었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결혼의 달은 5월이지만, 유럽이나 미주에서는 비가 가장 적게 오고 꽃이 많이 피는 6월을 선호한다고 한다.

날씨가 화창한 6월의 마지막 수요일에 나는 기타를 둘러매고 인천대공원에 갔다.

넷째 누나도 초대받았는지 미리 와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여기저기 흩어져서 그림을 그리던 화가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나는 기타를 꺼내고 화가들에게 '나는 멕시코의 세레나데  밴드처럼 연주할 테니 박수는 치지 마시고 식사하시며 즐기세요.'라고 했다.

나는 음향장비도 없이 그저 통기타를 연주하며 허공에 대고 노래했다.

첫곡은 한국인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를 시작으로 올드 팝 몇 곡을 부른 후, 그간 공들여 연습한 VINCENT를 부르자  그만 박수가 터지고 말았다.




     우측 두 번째가 저자, 다음 넷째 누나, 다음 막내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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