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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 haoh 오하오 Jun 18. 2024

[책리뷰] 사람을 목적으로 대하고 있는가? 수단이 아닌

부산원북원도서 산복빨래방을 읽고

부산 원북원 도서로 선정이 되어 도서관에서 빌려 보았다. 제목만 보았을때는 소설책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은 일기에 가깝다. 기자와 pd 4명이 직접 겪은 일을 기록한 이야기다. 

 

세탁비를 돈으로 받지 않고, 이야기로 받는 빨래방 이야기다. 제목만 보았을 때에는 불편한 편의점 같은 이야기인 줄 알았다. 기대하고 펼친 순간 실화라니! 약간 당황스러웠다. 나는 개인적으로 뉴스를 잘 보지 않는다. 세상을 보는 눈이 어둡다고 할 수도 있지만, 뉴스는 특성상 세상의 일반적인 부분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부분 가운데에 모여있는 평범한 시민이다. 뉴스는 극단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보도된다.

뉴스는 세상에서 예외적인 경우를 보도하기 때문이다.


 위의 표에서 보면 절반이 넘는 사람들은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95%의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뉴스는 아마도 99.73%의 평균적인 사람들(물론 이 속에도 특별한 사람이 있지만)이 아닌 0.27%의 특별한 경우를 보도한다. 이러한 사람만으로도 대한민국에 13만 명이 넘는다. 


그러니 누가 우리와 비슷하게 사는 사람들의 소식에 관심을 가지겠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특별하게 좋은 일도 없으며(로또 당첨, 고액 연봉의 프로선수 등) 특별하게 운이 나쁘지도 않다.(사기를 당하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등) 사람들은 희소한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그러한 것들이 보도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뉴스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나, 특별한 일을 보여준다. 특히 뉴스에서 가장 많이 보도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운이 없어서 사고를 당하거나 위험하거나 힘든 일을 보여준다. 물론 그런 뉴스는 필요하다. 그래서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필요할지는 모르지만 세상을 정확하게 보는 눈을 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뉴스를 보는 사람들이 뉴스에서 보도되는 일들이 주변에서 자주 일어나는 흔한 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행한 뉴스를 보면 세상이 위험해지고 힘들게 변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행복하게 지내는 뉴스를 보면 부러워한다. 아주 가끔 다른 사람을 돕는 멋진 뉴스로 위안을 삼는다. 그래서 뉴스도 중요하지만 직접 세상을 둘러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그래서 뉴스를 보지 않는다. 그리고 개인의 이야기를 쓴 수필집을 선호하지도 않는다. 세상에 특별하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대신 신문을 읽는다. 신문은 다양한 정보(과학이야기, 주장하는 이야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터넷 뉴스는 자기가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정보만을 찾아 읽게 되지만, 신문은 다양한 관점의 정보, 심지어 내가 관심 없는 정보도 가끔은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달랐다. 이 이야기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부산의 산복도로에 빨래방을 차린 이야기를 쓴 책이다. 6개월간 진행된 프로젝트의 이야기이며 세탁비는 이야기로 받는다. 이 책은 그렇게 탄생했다. 나는 이 책에서 산복도로에 사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풀어내진 않겠다. 유튜브에도 자세히 나와있어서 관심 있는 사람은 찾아보기를 바란다. 



나는 지역신문에 바라는 점이 있다. 지역 신문은 다른 지역이나 수도권의 소식이 아닌 그 지역에 사는 실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기대한다.(수도권이나 중앙의 소식은 다른 신문이 보도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신문에서 중요한 내용이 비슷하다.) 그 부분에서 이 책은 마음에 들었다. 부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효율적으로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을 하루나 이틀 동안 인터뷰한 것이 아니라. 6개월간 잠입취재를 했다. 정확히는 취재를 했다기보다는 다가갔다는 말이 더 적절하다. 아주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마음에 든다. 가짜가 아니라 더 진짜 같기 때문이다. 

 

이 책의 기자는 취재를 하기 위해 산복도로의 어른들을 취재대상인 수단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존중했기 때문이다. 

 

장사하는 사람은 손님을, 선생님은 학생을, 공무원은 민원인을


우리는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을, 수단이 아닌 사람으로서 대하고 존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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