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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학실험실의소녀 Mar 22. 2023

'연진아, 나는 날씨가 아니라 나의 미래가 궁금해'

내일의 날씨를 알려주는 일기예보는 있지만, 내 삶의 날씨가 궁금해

화제의 작품 '더 글로리' 시즌 2 공개되는 날 새벽까지 드라마에 빠져 있었다. 극 중 박연진이 교도소에 가서도 날씨를 안내하는 멘트는 밝고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지만 눈빛은 그렁거리고 복잡한 감정이 섞여있었다.

 가끔  흑색 하늘빛이 드리워져 가고 있는데 내 가방에는 우산이 없다면, 집에 갈 때까지 비가 안 와야 할 텐데 하는 불안감이 휩싸일 때가 있다. 출발 전에 '박연진 기상캐스터의 일기예보'를 확인하지 않은 나를 뒤돌아보기도 한다. 일기 예보를 통해 내일은 갑자기 한파가 찾아와 묵혀 두었던 겨울용 김밥 패딩을 꺼내야 하는지, 장마가 시작되므로 우산을 챙기고 다녀야 하는지 미래를 예측하고 상황에 맞는 준비를 해 둘 수 있다. 나는 공무원, 공기업의 근로자가 아니라 스타트업에 종사하고 있는 연구원으로 1년 뒤, 5년 뒤, 10년 뒤 미래를 모르기에 묵직한 불안감 전신에 안개처럼  퍼져 있다.



나는 고등학교 인문계 이과를 진학하고, 여학생이 드문 공대를 졸업했다. 이후 여자 인원이 극단적으로 적은 기업 부설 연구소 (R&D center) 화학 실험실에서 연구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아침 출근 시 회사 복도와 탕비실을 지나 연구실 투명문을 지나면 밤 새 시약장에서 미세하게 뿜어져 나온 약품 냄새가 느껴져  환기를 먼저 시킨다. 삶은 계란에서 나는 냄새가 황(S)이라는 물질에서 기인한 건데  화학 물질 중 -SH로 황이 붙어 있는 물질을 사용하다 보니 시약냄새가 공기 중에 계속 퍼져 있다. 내가 근무하는 곳에서 여성 연구원은 나 혼자이다. 특히 이 분야에 여성 인력이 적은 이유는 화학 약품을 다루다 보니 건강과 임신/출산을 고려하는 여성 인력들이 많이 떠나간다. 화학 실험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물질과 1g 보다 10^6배, 10^9배 작은 단위를 다루다 보니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업무라 에너지 소모가 많아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건강 상의 이유뿐만 사회적 폐단으로 여성보다는 남성을 더 선호하는 업무 환경 또한 여성 인력이 적은 원인이 된다. 그래서 나는 늘 내 자리가 불안하다.



만약 '연진아, 날씨 알려줘'라고 말하면 일기 예보처럼 나의 미래를 예측하고 상황을 준비할 수 있게 해 줄 수 있다면 어떨까? 나의 막연한 이 불안을 완전무결하게 해결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1. 수집




일기 예보는 어떻게 내일의 날씨, 다음 주의 날씨를 예측할 수 있을까? 일기 예보는 이전에 기록된 날씨의 변화를 감지하는 요소들의 기록을 통해 비슷한 요소들의 변화가 감지될 경우 다음 날 날씨가 어떨지 예측하는 과정을 갖고 있다. 다양한 변수가 있기에 100% 정확도는 아니지만 한파나 장마와 같은 큰 변화로부터 우리가 최소한의 준비를 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럼 나의 경우, 나와 같은 이공계 전문 연구원을 겪어 왔던 이들의 행적을 찾아본다. 이들의 활동 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어떤 분야를 다루었는지? 집단 속 어떤 역할을 일임해 왔는지? 등 내가 궁금해하는 세부 질문을 던져가며 발자취들을 모아 보는 과정을 하고 있다.




2. 학습




과거에는 박사 학위가 있으면 적어도 국립대와 같은 안정적인 곳에 들어가 퇴직 때까지 엉덩이만 붙이고 있으면 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한 가지 기술로 100세까지 나의 삶을 영위해 나가기에는 세상의 변화가 너무나 빠르다. 새로운 기술과 정보들이 매일 쏟아져 나와 이 전에 없던 직업이 창출되기도 한다. 20년 전 유투버가 전문직종보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 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아는 사람이 있었을 까? 새로운 기술과 정보를 끊임없이 학습하고 나의 장점과 어떻게 결합시켜 볼 것 인가를 고려하고 시도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이 것이 정답이 아닐 수 있지만, 적어도 새로운 환경과 흐름에 고립되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을 것 같다.




3. 기록




아무리 무수한 자료를 읽고 수집하고 분석하여 학습한다 하여도 기록하지 않으면 나의 기억력으로 1년 뒤 3년 뒤에 기억에만 의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기록을 하고 싶다. 나는 노트를 사면 이 노트, 저 노트 휘갈기며 써내려 가는 습관이 있다. 나중에 해당 메모를 찾고 싶어 기억을 더듬어 가다 보면 어떤 노트에 적었는지 찾기가 힘든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기록의 장소를 일원화하고 언제 어디서든 해당 기록물을 볼 수 있는 노션 사용에 대한 강의를 신청했다. 추후 오늘의 1분 기록이 훗날 나의 1시간을 절약해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일기 예보를 생각하며 나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적어나가 보았다. 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고, 내가 모르는 분야를 체험하며 배우고, 행동과 생각을 글자로 적어 나가는 행위를 하며 나만의 일기 예보를 준비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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