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살이 다 되어 해외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나는 박사학위 과정 중이었다. 내 상사는 일본인 여성이었는데 아침 6시 반이면 사무실에 도착하여 근무를 시작하고 오후 3시 반이면 칼 같이 퇴근하셨었다. 항상 그분을 보며 멋있다고 생각했다. 인턴인 나는 주어진 업무를 근무 시간 내에 다 마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어떻게 칼같이 시간 맞춰 업무를 완료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상사는 근무하는 곳에서도 업무 성과가 좋은 것으로 평이 나있었는데 제한된 시간 내에 그 많은 업무를 순식간에 해치운다는 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부서가 다른 한국인 전문가분께 나의 상사가 얼마나 빠른 업무 속도와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는지 얘기했다. 나에게 상사는 너무나 멋진 커리어 우먼이었다. 이메일이나 워드 파일 등 문서 작업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망설임 없이 바로 타자를 쳐내려 가기 시작하고 타조가 달려가는 것처럼 타닥타닥 타닥 빠른 키보드 소리와 모니터에 집중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하루에도 끊이지 않고 밀려드는 미팅과 업무 보고 및 처리 속에서도 일이 밀리지 않고 진행되는 모습이 대단한 능력자로 여겨졌기 때문에 상사의 멋진 모습에 대해 표현하였다.
나도 이 일 10년 하면 그 정도는 해
한국인 전문가는 바로 이렇게 말했다. 이 일을 10년 하면 그 정도는 한다. 나는 이제 일을 시작한 인턴이라 10년 후면 나도 그렇게 머릿속에서 영어로 문장이 1초도 안되어 완성되고 명로성과 논리력까지 갖춘 글이 망설임 없이 끝날 수 있을까? 확신이 없었다.
흔히 박사학위를 마치면 한 분야의 전문가로 생각한다. 학문적인 지식과 기술에 대해서는 전문가 폼이 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산업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바로는 박사학위를 마친 뒤 근무 시작한 신입은 대학 학부 졸업과 마찬가지로 사회 경험 제로의 신입임에는 변함이 없다. 학위를 마치고 시작한 사회생활 1년 차 때 나는 내 일에 대한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 일에 대한 성과는 없고 시간은 가장 많이 들여야 하는 가성비 낮은 인력으로 생각했다. 1년 차 때는 스트레스로 인해 갖은 질병으로 병원 신세를 많이 졌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1년 차 때의 나보다 지금은 소위 말하는 칼퇴를 유지하려 하고 있다. 물론 오늘도 약 30분 정도 초과근무를 하긴 하였으나 전반적으로 초과근무시간이 1년 차보다는 줄어들고 있다. 돌이켜보면 1년 차의 나보다 지금의 나는 일을 처리하는 기준이 생기고 효율성이 조금 개선되었다고 보인다.
인턴 시절의 나의 상사를 생각해 보면 10년 동안 한 곳에서 같은 종류의 업무를 지속적으로 다루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눈으로 메시지를 확인함과 동시에 키보드로 문서 작업이 단시간에 완성될 수 있을 것 같다.
10년의 법칙
한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얼마 전 시청한 김미경 강사의 영상에서 자신 주변에서 소위 한 분야 전문가들이 모두 적어도 10년, 15년 일 한 분들이라 했다. 그분들이 대체적으로 소심하고 얌전한 경우가 많단다. 우스개 소리로 소심해서 그만둘까 말까 고민하다 10년 이 갔다는 것이다. 회사도 말 많은 사람보다 조용한 사람이 오래 다닌다고 말을 이었다. 입사 1년 차부터 매일 내적 갈등 '그만둬야지, 이 일은 내 길이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다른 사람들도 겪는 자연스러운 것 같아 한 편으로는 마음이 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