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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늘보 Jun 05. 2023

"그 시절의 라떼를 뺀다면은 어찌 지금의 내가 있겠냐"

'삶고 또 삶은 나의 티셔츠는 그 시절 나의 라떼 중 하나이다 '

"사람은 누구나 나만의 라떼가 있는 법이야."
"그 시절의 라테를 뺀다면은 어찌 지금의 내가 있겄냐? 안 그래?"
"그러니까 잘 기억해 두쇼. 오늘이 너의 라떼 중에 하루가 될 테니까"
-낭만닥터 김사부 중-

"그럼 삼촌 먼저 출발하세요."

"저는 ~이 어린이집  보내고 출발할게요."라고 삼촌께 전했다

"안 와도 돼 애들 챙긴다고 바쁜데 뭐 하러 오냐"

"그냥 여기는 ~씨 있으니까 배울 겸 해서요"

"그려 그럼 어디 아파트 몇 동 몇 호니까 그리로 와 조심히 와~"


어린이집 차가 오는 시간은 9시 30분이다.

웃는 모습이 유난히 예쁜 아이는 그 웃음을 뽐내기라도 하듯 초승달 눈을 하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나도 웃음으로 답하고 손을 흔든다. 부족한 엄마라 늘 미안한 마음도 함께 담아서...

사랑스러운 아이의 모습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어린이집

엄마들과 대충 인사를 하고 뒤돌아 뛰어 집으로 들어간다.

오늘은 40분도 더 걸리는 먼 거리의 옆 동네이다.

두 아이와 등교 전쟁을 벌인 아침의 흔적을 대충 정리하니

시계는 느새 10시에 가까워진다.

일하기 편한 옷을 꺼내 입고 미니 청소기를 들고

문을 박차고 나간다.

나는 오늘도 현장으로 가기 위해 차의 액셀을 밟는다.


'오늘 가는 집은 에어컨을 틀어주려나'


원래도 날씬하지 않은 나의 몸은 큰아이 출산을 시작으로

둘째를 낳은 후  최고조를 찍고 있었다.


삼촌을 따라 나간 현장은

더위도 더위지만  여름의 습한 기운은

나의 지방세포 속  열과 스파크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조금만 움직여도 벌거진 얼굴을 시작으로

목을 타고 등으로 이어지는 땀은  감당하기 버겁다.



일하는 동안 습한 기운 속 흐르는 땀은  나의 면 티셔츠를 모두 땀 냄새로 배게 만들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날씬해 보이고 싶은 마음과 아이를 키우면서 감당 안 되는 옅은 색의 불편함 때문에 검은색 옷을 즐겨 입는다. 


어느 날은 내 옷에서 사춘기 남학생의 옷에서 날법한  시큼한 냄새가 올라오는 것을 알고 경악한 적이 있었다. 내가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땀이 배고 또 밴 옷은

삶지 않으면  빨래를 해도 섬유 유연제를 들이부어도 시큼한 냄새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은 나의 티셔츠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땀으로 마무리되길 바라본다.



차를 잠시 세워 김밥 파는 가게에  들렀다.

삼촌이 건네주신 견적내용을 확인하고 시공시간을 계산해 보니 점심 먹기는 어중간한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시공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에서 점심을 때우는 게 가장 효율적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패스트푸드는 기피하시는 삼촌을 위해서 먹기 편한 김밥을 사기로 결정했다.

김밥을 3줄을 살까? 4줄을 살까?

 요즘 같은 날씨에 4줄 사서 남으면 두었다 아깝다고 드실 수도 있는 삼촌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식중독까지 고민하며   3줄로 결정지었다.


시람 사는 데는 뭐가 그리 선택할게 많은지...

토핑에 힘을 준 김밥 3줄을 샀고 옆 가게에서 음료수도 함께 사서 급한 마음과 함께 차에 몸을 싣고 출발했다.


삼촌이 알려준 주소를 찾아서 시공하는 아파트에 도착했다.

아파트를 올려다보면서 생각했다.


 '오늘도 역시 땀범벅이 되겠구나 '


주변에 시장을 끼고  있는 오래된 아파트는

상인분들이 많이 사신다.

그분들이  그곳에 거주하시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장사하기 좋은 편리함 때문이다.

그리고 몇십 년씩 장사로 생을 살아오신 분들은 헛으로 돈을 쓰지 않으신다.

오늘처럼 양쪽문만  열면 바닷바람이  부서지게  들어오는 날은 습한 바람도 바람이니 에어컨은 언감생심이다.

장사꾼의 자금 사정까지 운운할 정도로 에어컨이 그렇게 중요할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숨이 턱턱 막히는 한 여름

하루에 사다리를  30번 이상은 타야 하고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세계인 것이다.

에어컨의 세계는...


아파트 지하 오래된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다.

주차장에 시 계단으로 연결된 건물 1층으로  올라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고객님 댁에 복도에 도착했다.


복도식 아파트의 끝으로 걸어가니 현관문이 활짝 열려있다

나의 예상대로 양쪽으로 열린 문사이로 몰려온 바닷바람은 너 한번 나한번 열린 문을 온 힘을 다해

통과하며 구성진 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질세라 조명 박스 안에 비닐들은 박자를 맞춰  바람에 자신의 몸을 맡기고 복도가 끝에서 저 끝까지 흩어져 있었다.


주차장 계단만 올라왔을 뿐인데 벌써부터 목 주변으로 끈적함이 느껴지고  이마로 땀이 한 방울 흐른다.

아직 등과 전기선을 만지기 힘든 나는 장갑을 끼고

챙겨 온 미니 청소기로 삼촌이 시공하신 흔적들을 정리하고 석고  먼지들을 청소기로 빨아들인다.


그리고 고객님 댁에 낡은 등 들을 밖으로 가져가 유리커버는 커버대로 형광등은 형광등대로 정리해서 복도 구석에 쌓아놓는다.


새로운 조명을 달기 위해 새 등의 박스를 풀어서 시공해야 하는 각자의 위치에 배치해 놓는다.


물건의 손상을 막기 위해 꼼꼼히 싸있던 조명 박스를 치운다.

그 박스들을 납작하게 발로 밟아 좁은 엘리베이터에 넣을 수 있게 만든다.


짬짬이 시간 날 때마다 입주민들이 불편하지 않게

복도에 분리해서 쌓아놓은 등과 박스를 주차장안에 차까지 가져다 놓는다.


삼촌이 혼자서  시공을 마치고 남은 등 잔여물까지 캐리어에 싣고 엘리베이터를 타다 보면 그 안에서도 전구나 등

커버가 떨어지고 깨지는   일이 생긴다.


작은 실수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면

경비실과 대면하게 되고 배부른 핀잔도 들을 수 있다.

이것은 시공 현장에서 있을 수 있는 작은 문제 중 하나이다.

현장에서  아직 시공까지는 부족한 내가

그 변수를 방지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주차장까지 움직여야 한다.

이렇게만 해도 2시간은 훌쩍 간다.


스멀스멀 나의 티셔츠 목 주변으로 땀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목 주변을 타고  몸으로 흐르는 땀에 티셔츠 자락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가 비린내 나는 바닷바람과 겹쳐서  나의 코를 자극한다.

'이 옷을 다시 입으려면  또 삶아야겠구나.'


오래된 아파트는 낡은 등과 전선 사이로 들어가야 할 부품들이 녹이 슬어 있기 때문에 부품들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역시나 오늘도 시공 중에 꼭 있어야 하지만 흔하지 않은 부품에 문제가 생겼다.

삼촌은 부품을 사러 공구점에 가신다 하셨다.

내가 가도 되는 일이지만 더위에 지친 삼촌께서도 한숨 돌리고 싶으신 것 같았다.그런 삼촌을 나도 따라나선다.


어느새 점심시간은 훌쩍 지나가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된 삼촌은 분명 아침식사도 일찍 하셨기 때문에 배가 고프실 것 같았다.

차에서 김밥 3줄을 꺼내 왔다.


공구점을 찾기 위해 길을 걸으면서 삼촌과 나는 김밥 한 줄씩 꺼내서 왼손에는 김밥을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김밥을 짚어서 입속에 넣는다.


정신없이 나온 덕에 아침을 거른 나는

차속 운전자들이 지나가며 쳐다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삼촌과 걸으며 김밥을 맛있게 먹었다.

예전과는 다르게 남들 시선에 개의치 않는 것은  아줌마의 힘인 듯싶다.

무슨 이야기 인지 기억은 없지만

삼촌과 나는 많이도 웃으며 김밥 한 줄을 즐겁게 먹었던 것 같다.

늘 먹던 김밥이 그날 그렇게 맛있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본성이 착하기에 결정적일 때 우유부단한 삼촌의 성격이

때론  작은 엄마의 혈압을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결혼 후 어쩌다 보는 삼촌은 가족의 흑역사만 빼면 나에게는 한결같이 다정한 삼촌이고아빠 같은 존재였다.

그날 길에서 먹은 김밥이 맛있었던 건  언제나 내편

"그려 해 봐~ ""그려 "라고 해주는 막둥이 삼촌이 함께여서 인듯했다. 


어느 날 문득 나는  다정한 삼촌을 대하면서

돌아가신 아빠의 자리가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것을 느꼈다.



삼촌 옆에서 이것저것 도와주다 보니

벌써 뛰어야 할 시간이다.

시공을 마무리하는 것은 삼촌의 몫으로 남겨두고 고객님 댁을 나왔다.

둘째 아이의 하원시간에 맞춰서 차의 엑셀을 열심히 밟는다.

땀이 밴 옷을 갈아입을 틈도 없이 주차장에 차를 대고 뛰어 올라간다.

오늘도 둘째는 놀이터에서 친구 엄마손에 맡겨져 있다.

내가 가도 시크한 손바닥 인사뿐 친구들과 들과 흙놀이 삼매경에 빠져있다.

입주 때부터 늘 같이 하던  어린이집 엄마들은 

나에겐 친정보다 가까운 존재가 되어있다.

또래의 자식을 키운다는 이유로

십 년의 나이차쯤은 언니 동생으로 서열이 정리된다.


세대차이는 가끔 있을 수 있는 현상이다.

남편을  따라 작은 섬으로 들어와서 이곳이 제2의 고향이 된

맘들은 도시와는 다른 정이 있다. 친정부모 도움 없이

타지에서 자식을 키워본 끈끈한 품앗이라고나 할까.



노는 아이와는 인사를 했으니 놀이터에 잠시 두고 집으로 들어가면 큰 아이가 집에 먼저 와 있다.

이제 막 사춘기가 시작되는 아이는 표현은 안 하지만 고민이  많은 얼굴이다.

큰 아이는 제대로 살피지도 못하고 둘째를 위해 먹을 것을 한가득 안고 놀이터로 간다.


그곳에서 어린이집 엄마들과 수다 삼매경을 벌이고 1시간 정도 머물다 아빠들의 퇴근시간에 맞춰 집으로 온다.


그리고 다시 육아는 시작이다.

아이들 어려서부터 회사일이 먼저인 남편이 없는 육아는 나에겐 익숙하다. 저녁을 먹이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 어느새 잠들기 전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시간이 된다.

삼촌을 따라다니면서부터 아이들에게 책 한 권 차마 끝내지 못하고 나는  비몽 사몽을 헤매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눈꺼풀은 이기지 못하고 어느새 내가 먼저 잠이 든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서 대한민국의  지극히 평범한 교육열이 있는 나는 USB로 대신하게 되었다.


지금은 오디오북이 있어서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되었는지...

'분명 불편했는데 그때 나는 왜 그런 생각을 나는 못했을까?'


아이템에 집착하지 말고 문제에 집착하라는
'쏘카' 박대표의 말이 떠오르는 요즘이다.



 남편은 사업에서 조금 아니 많이 비켜있다. 나와는 결이 다르지만 참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사업 시작 후 회사에 소홀한  자신의 위치를 찾기 위해 몇만 명의 사람들 속에서 애를 쓴 사람이다.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면서 설계와 현장을 오가며 열심히 일한 덕분에 남편은 조선소 배 한 척을 수주하는데 책임을 맡기도 했다.

조선소의 보통 출근 시간은 6시 30분 정도이다.

사업을 시작하고도 사업에서 물러서 있어도 늘 아빠는 없는 사람이기에 아이들은 무덤덤하다.


나는 남편에게 삼촌을 따라다닌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시작이야 어찌 되었건 내가 이 일을 배우고자 했고 여자에게 친정에 관련된 일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이다.

남편과 편가르기 싸움의 원천 봉쇄를 실천하며

잔소리 1도 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 안에서 나는 내 몫을 꿋꿋이 해 내가고 있었다.

신기한 일은  현장에 가고 있는 나는 나름 힘들 법도 한데

땀 흘리며 느껴지는 희열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늘 내 자아를 찾아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6개월을 따라다니면서 어느새 겨울이 왔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보다 더 큰 사무실을 얻어서 이사를 했다.

12평 복층 사무실에서 40평 내가 사는 옆동네로...

바다가 보이는 2017년 매장 사진

제부가 가고 삼촌을 돕겠다고 나선 현장에서

우리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알게 되었다.

사무실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는 조명일은 할 수 없다는 것도 삼촌을 따라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조명은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각 집마다 다른 사이즈의 조명이 들어가 있고 배선 상황도 다 다르게 들어간다.


특히나 오래된 가옥에서는 더욱 그렇다.

도배나 목작업이 들어가지 않는 순수한 조명시공은 현장에서 어려움을  더한다.  

무거운 조명이  버틸 틀이 없어 조명을 넣을 공간을 파고

지지대를 만들어 넣어야 조명을 넣을 수 있다.

번화가와 떨어져 있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어머님 아버님이 사는 곳은 목재를 구하러 30분 이상을 다녀와야 함에도 추가금을 받을 수 없다. 


자식이 준 용돈을 모아서 등을 바꾸시는 분들께 웃돈을 받기란 미안함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사무실에서만 있었다면 자기 몫도 못 챙기신다며 삼촌에게 한마디 했겠지만 현장을 가보니

백번도 이해가 된다.


얼마 전 플랫폼 2곳에 알람을 껐다. 수수료를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녹여야 하는지  고민도 되고

현장을 모르는 플랫폼 회사들은 행동반경이 경남은 경남인줄 알기 때문이다.


수많은 문자와 카톡 알람 중 상황도 모르고 울리는 알람은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또한 일거리가 많은 대도시의 무료 견적을 주기 위해 2만 원이나 되는 도로비줘야 한다.

거리상 가깝다는 이 유로 비교 견적만 보고

답 없는 소비자에게 가서 견적을 줘야 하다니... 한심했다.

요즘처럼 건설경기가 힘든 때에는


족쇄처럼 울리는 알람에  이 공사를  할지 말지 고민하게 된다. 주변에 비슷한 일을 하는 찐  베테랑들은 나처럼 똑같이 이야기한다.

 싸다고 맡긴 플랫폼 속에는 진짜 고수는 존재할까?



코로나 이후 플랫폼이 당연시되고 있다.

우리와 같은 일을 하시는 분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앱을 쓰고는 있지만 저렴한 견적을 요구하면서

높은 수수료를 챙기는 업체들에 분노를 한다.


우리처럼 10년이 다 되어가는 사람도 힘든데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시는 분들은 그곳이 홍보마당이 기정 사실화돼 있기 때문에 발을 빼지 못하는 것이다.


가슴 아픈 현실이다.

' 편리함이 또 하나의 자영업자들의 목을 죄는구나'


남편은 전기로 조선소 밥을 먹은 27년 차 베테랑이다.

희망퇴직 후 나이 들어가는 남편에게 요식업이 아닌 무언가 찾고 있는 창업자들을 무료 교육시켜서 좋은 인재를 구해보는 게 어떠냐고 나는 물었다.


나만 알 수 있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표정을 애써 감추며

입으로만  웃으며 이야기한다.


"배를 만들어도 설계와 현장이 의사소통이 안되면 회사에 몇조 원의 손해를 끼치는 줄 알아?"


나는 속으로 말한다.

'내가 알겠니? 또 시작이구나...'


자기가 만들었던 배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 배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현장과 설계팀을 모두 알고 있었던 자신과 숨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되는 거라 했다. 


이제 희망퇴직 1년 차인 자신은

아직은 조명에서는 현장이 맞다고 한다.


뒤돌아 생각해 보면 정답 같은 말인데

왜 남편의 말은 오늘도 라테를 운운하는  희망 퇴직자의

허세로만 들리는 건지... 누군가 그 답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속으로 나는  말한다.


'웃기시네. 그 어깨 뽕은 언제 뺄래? 잘난 척은...'


결혼 전 남편과 나는 사주에서 부부는 4개가 맞아야 하는데

4개가 다 맞으면 하늘이 질투하신단다. 그래서 잘 살려면

2개 정도 맞으면 되니 2개가 맞는 우리는 문안한 부부가

될 거라 했다.

 '20년 가까이 살고 있는데 그 맞는  2개는 언제쯤 찾을 수 있을까? 더 살아보면 나타날까?'

맞는걸 찾는게 빠를까?안 맞는걸 포기하는게 빠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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