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회전목마
언리미티드에디션이라는 북페어에 들렀다. 아이랑 단 둘이 북페어를 가게 되다니.
내 인생에도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언제까지고 아가일 줄만 알았건만, 내 아이는 어느새 엄마가 가고싶어하는 곳에 내가 한 번 가줄게. 엄마도 내가 원하는 곳에 가자, 하는 딜을 넣을 수 있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덕분에 난이도는 헬이었지만.
북페어의 목적도 있었지만, 실은 편집장님을 만나러 왔다.
현재 기고(?)하고 있는 포포포매거진의 편집장님을 만나서 출판계에 대한 이러저러한 얘기를 듣고, 앞으로의 진행방향에 대한 브리핑도 조금 공유받았다.
소규모 출판사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의 고민과 고난, 그리고 희생. 그러면서도 놓을 수 없는 신념.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쩜 이렇게 듣기만 해도 즐거운지.
그러면서 편집장님이 천방지축인 아이와도 함께 놀아주다가(내가 왜 애를 데리고 왔지, 하고 세 번 정도 생각했다.) 가지고 있던 스탭 목걸이를 선사해줬는데, 바로 큐브였다.
아이는 집에서도 색깔이 맞춰지지 않는 큐브를 “고장났다”고 표현했었는데, 모든 것이 균일하게 맞춰진, 색의 어긋남 없는 새 것 그대로의 상태인 큐브를 보고나서 어? 저도 이거 뭔지 알아요. 했다.
아이는 또다시 스탭 큐브를 ‘고장냈고’ ‘고장난’ 큐브를 제자리로 맞추기 위해 낑낑대며 애썼다. 돌리면 돌릴수록 아이가 원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굴려지는 큐브를 보며, 아이는 다소 울적해했다.
우리는 아이를 격려했다.
계속 돌려! 돌리다 보면 다 맞춰질거란다.
그러다 문득 우리의, 나의 인생이 이렇겠구나. 싶었다.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태어난 우리들은 어떠한 선택,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통해서 자기만의 인생의 결을 바꿔간다. 아무도 똑같은 인생을 살수도 없거니와, 누구도 똑같은 인생을 살면서 똑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요새 들어 자주 생각하고 있는, 직장에 대한 고민도
정말 단순히 한 통의 회유 전화에 내가 혹했기 때문에 시작하게 된 것이다.
직장을 옮길까 말까 고민하며, 학교에 좀 더 남아있을까 고민하며 길에 흘려보낸 수많은 그리고 치열한 고민들은 내 큐브를 조금은 살살, 때로는 세게 밀었을 것이고 그 와중에 듣게 된 조언들은 돌릴지 말지 더 고민하게 했을 것이다.
이직해야겠다,
고 결심하고 힘껏 한 바퀴를 돌린 순간, 나는 ‘고장나있으면서’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고, 그 선택을 통해 나는 이직하며 정기적인 출근을 하게 되었다. 아이에게 더 큰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지만, 좀 더 안정적인 행복을 주는 것을 선택했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건 그 상황에서 내가 큐브를 돌리지 않았더라도. 혹은 큐브를 돌렸더라도. ‘고장나있는’ 나의 삶은 그대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불안한 마음 때문에 또 어떤 이에게 지나치게 마음을 베이기도 하고, 또 어떤 이의 위로가 되기도 하고. 그 위로가 된 덕분에 글을 쓰게도 됐고, 소설을 쓰게도 됐다.
그럼에도 항상 나는 나의 불만족스러운 상태를 ‘고장나있는’ 상태라고 여길 수는 없었다.
이 직장을 계속 다니기 위해 사택으로 이사를 했고, 직장어린이집으로 아이를 옮겼다.
삶의 질이 좋아진 동시에 사는 집은 좁아졌으며, 아이는 더 즐거워 하지만, 나는 아이의 생생한 모습은 많이 볼 수 없다. (아쉽게도 어린이집에서 찍어주는 사진은 기존 어린이집에 비하면 다소 한정적이다.)
안다.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얻을 것은 얻어야 한다는 것을.
누군가가 내 선택을 가지고 엑셀로 비교해본다면, 나는 아마 현재 큐브를 열심히 돌리고 있으므로
한 줄 정도나 혹은 한 면 정도는 맞춘 성적표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원래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 한번쯤 상상해주는 게 그 길을 가고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하는 내 인생의 가능성에 대한 든든한 지원과 격려 아니겠는가.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 하는 안정은 대체 언제 오는 것일까.
순간아, 멈추어라. 하는 순간이 오기는 할까.
오늘도 열심히 내일도 열심히 살테지만,
먼 훗날 헛되고 헛되었도다, 하는 후회만은 아니길 바라며 아등바등 오늘도 큐브를 힘껏 밀고 있기에 안간힘을 쓰며 나는 고민한다.
이 큐브가 언젠가 균일한 색상의 면을 가진 큐브가 되기는 할는지.
내가 그것을 참으로 바라기는 하는 것인지.
그것이 참 헷갈리는 바이면서도, 오늘도 열심히 뛴다.
그저 나도 나뿐만 아니라 포포포매거진의 편집장님, 어딘가 꿈을 꾸고 있을 초롱한 눈망울의 소녀, 또는 소년, 또는 소녀와 소년을 가장한 어른.
지금도 큐브를 돌리고 있을 우리 모두를 응원할 수밖에
계속 돌려보자구요! 돌리다 보면 다 맞춰질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