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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풀 원섭 Jun 26. 2023

다시, 겸손

비정상 일기

  겸손의 반대말은 교만이 아니라 무지다.

  많이 아는 사람은 겸손할 수밖에 없다.         

                                    - 이동규 교수 <두줄 칼럼> 中 -



예전 글인 '겸손은 사양한다'를 통해 당분간 겸손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다 문득 하나의 물음이 떠올랐다.

무지하기 때문에 겸손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

겸손은 성공한 자들의 전유물인가? 그렇다면 성공한 자들은 왜 '겸손'을 대중들에게 강조하는 것인가?

'무지'란 무엇이며 '많이 아는 것'이란 무엇인가?

왜 겸손해지지 않기로 결심을 해서 이 고생을 하는지...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나의 글 '겸손은 사양한다'에서 '겸손의 반대말은 무지이며, 많이 아는 사람은 겸손할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사실 설명을 한 본인조차 확 와닿는 문장은 아니다. 그래서 보다 정확한 '겸손'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그 반대말인 '모름(무지)'의 정의를 살펴보았다.

모름(무지)은 3단계로 구분되어 의미가 확장된다고 한다.


모름의 1단계 :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단계 => 내가 알고 있는 지식만으로 다 안다고 착각하는 단계

모름의 2단계 : 모른다는 것을 아는 단계 => 모름을 인정하고 더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단계

모름의 3단계 : 무엇을 얼마나 모르는지 모르는 단계 => 내가 무엇을, 얼마나 모르는지 모르는 단계

   

  ※  겸손의 수준 = 모름의 1단계 < 2단계 < 3단계

             <--> 모름의 수준 = 모름의 3단계 < 2단계 < 1단계


어떤 분야에서든 일정 경지에 이른 대가들은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 그리고 어느 분야에서든 최고 수준에 다다르면 비슷한 철학적 관점을 지니게 된다. 이는 시작 지점은 저마다 달라도 정상에 오르면 비슷한 곳에 모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 대가들이 정상에 올라 공통으로 하는 말은 '잘 모르겠다' 또는 '여전히 어렵다'였다. 특정 주제에 대해서 1시간짜리 강의만 들어도 '지적 충만함'의 쓰나미를 느끼는 내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이다. 한 분야에서 최고에 이른 대가들은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 즉, '모름의 3단계'의 경지에 도달했기에 할 수 있는 답변일 것이다. '모름의 3단계'는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것을 인정하며, '나는 앎에 있어서 매우 미천하다'라는 가능성을 받아들여야만 도달할 수 있는 앎의 최고의 경지인 동시에 모름의 최고의 경지인 것이다. 

알면 알수록 모름에 가까워진다니... 열심히 공부하지 않길 참 잘했다 싶다. �


그럼 나는 어느 단계인가? 1단계 수준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내 분야에서 모름을 인정하여 더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보통은 지금의 내 지식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착각을 하며 현실에 안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명료함을 좋아한다. 흑 아니면 백으로 나누길 좋아하며, 내가 보고 싶은 울타리 안에서의 세상만 바라보고 외부의 풍파로부터 스스로의 안정감을 유지하는 것에 큰 가치를 둔다.

즉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모름의 1단계'에 귀속시킴으로써 내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만 판단하고, 모른다는 것을 모른 체 결론을 내린다. 이러한 결론은 보통 위험하다. 그러나 개인에게는 안정감을 준다. 

평소 '무식하면 용감하다'라는 칭찬을 많이 들어왔는데, 오늘로써 이것이 내가 용감하다는 칭찬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반면, 현실에는 모호함이 넘쳐난다. 명료하고 절대적인 대답이 불가능한 문제가 사방에 즐비하다.

보통은 모호함을 대할 때 불안감을 느낀다. 스스로 울타리 밖으로 나와, 내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현실의 불편한 진실을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를 그때서야 비로소 내가 얼마나 또 무엇을 모르는지 인지하게 되고, 알아가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인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명료함에서 벗어나 모호함을 지향해야 하며, 울타리에서 탈출하여 불편함을 직면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만 진정 모름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고 동시에 겸손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겸손은 사양한다'라는 명료한 표현 '모름의 1단계' 적 발상임을 인정한다. 손에 대한 나만의 울타리 안에서 그것의 의미에 대해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 체 가장 편한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성공한 대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겸손'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데 있어 나의 경험, 지식 그리고 역량이 부족하여 그 참된 의미를 놓친 것은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겸손하기 참 어렵다.  

'모름의 1단계'인 내가 겸손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는 것이 아직은 무리다.

내 할 일은 모름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알기 위해 노력하며, 모호함을 계속 마주하는 일일 것이다.


오늘로써 나의 울타리에 작은 균열이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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