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호랑이에게 물려갈 때 정신차리기

들꽃의 마지막 여행 05.

by 들꽃연인

한 달 가까운 유럽 여행의 추억을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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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소대장으로 군 생활을 할 때 일이다. 우리 중대장을 비롯한 부대 간부들 대부분은 퇴근해서 부대 밖으로 나갔고, 나는 일직사관으로 부대에서 근무 중이었다. 그때 실제상황이라며 공습경보가 울렸고, 상급부대로부터 출동명령이 떨어졌다.


우리 부대는 기계화 부대였는데, 전시상황이 되면 무조건 북으로 치고 올라가게 되어있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즉, 출동명령이 떨어지면 죽을 확률이 무지하게 높은 것이다.


중대장을 대신해서 부하들에게 실탄을 나누어주면서 ‘이제는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상하게 정신은 말똥말똥 침착해있었다. 몇 시간 만에 상황은 해제되었으나, 난 그때 호랑이에게 물려가면서 정신을 차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참 드물고 희한한 경험이었다.


그 이후 살면서 여러 번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이했지만, 그때처럼 침착하고 의연했던 적은 없었던듯하다. 아마도 상황이 너무 극단적 이어서였나?


이번 여행에서도 예상치 못한 우여곡절을 몇 번 겪었는데, 역시 침착하지 못했던 듯하다. 그렇게 위험스러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차분했더라면 좀 더 잘 대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원래는 빈 공항에 도착해서 ‘간단, 신속하게 입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철도로 빈 중앙역으로 역시 간단, 신속하게 이동’ 이게 원래 시나리오였는데, 이상하게 꼬여 고생을 했다.


티켓 자동판매 Kiosk에서 티켓구입을 하고, 플랫폼 번호를 확인하는데, 같은 시간대에 출발하는 열차가 두 대가 있는 것이었다. 티켓에 열차 번호도 표시되어있지 않고, 어떤 열차인지 몰라, 순간 당황했다. 무작정 근처에 있는 젊은 현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 청년은 “이 티켓은 중앙역까지 직행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갈아타야 되는 열차다. 플랫폼도 이동해야 한다.”며 본인이 도와주겠다고 했다. 시간이 촉박해 계단을 뛰어 오르내렸는데, 그 청년이 아내 짐까지 들어주고 출발하는 기차에까지 동승, 동행해 주었다. 너무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혹시? 하는 불안감과 의심이 없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청년은 중앙역 근처에 갈 일이 있기 때문에 전혀 문제없다며 기차 환승도 도와주고 중앙역 출구까지 동행해 주었다. 정말로 귀인을 만나 예상치 않은 난관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간단한 선물이라도 주었으면 좋았으련만 악수만 하고 헤어진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


어떤 사람이 어두운 새벽에 산길을 가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호랑이를 만나게 되었다. 이 사람은 메고 있던 활에 화살을 끼워 온 정신을 집중해 호랑이를 쏘았다. 화살에 맞은 호랑이는 움직이지 않았고, 화살을 쏜 사람도 호랑이의 상태를 알 수 없어 움직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날이 밝자, 앞에 드러난 것은 호랑이가 아니었다. 호랑이의 모습과 닮은 커다란 바위였다. 그런데 그 바위에 화살이 꽂혀있는 것이 아닌가? 어려운 환경에서도 정신을 차리고 치열하게 집중하면 바위에도 화살이 꽂힌다. 한자 성어로 사석위호(射石爲虎)라고 한다. 그러지 못했던 나 자신이 아쉽기만 하다.

(이미지 : Pixabay)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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