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의 마지막 여행 06.
한 달 가까운 유럽 여행의 추억을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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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도착해 야경 관광까지 다소 무리를 했음에도, 시차 극복이 안된 데다가 긴장을 해서인지 일찍 일어났다. 간단한 아침식사 후 벨베데레 궁전으로 아침 산책을 나갔다.
전날 충분한 휴식이 전제된다면, 여행에서의 아침 산책은 정말 멋진 경험이다. 관광객들을 비롯한 인파에 치일 일도 거의 없고, 날씨도 청명해서 걷는 기분이 그만이다. 우리는 아직 여행 초기라 체력이 받쳐주었는지 매우 기분 좋은 산책을 했다.
호텔에서 벨베데레까지는 도보로 15분 ~ 20분 정도의 거리였다. 클림트의 <키스>로 유명한 벨베데레 궁전은 9시에 문을 열지만, 정원은 아침 일찍부터 개방되어 있다. 다소 쌀쌀한 날씨에 우린 가벼운 겉옷을 걸쳐야 했지만, 조깅하는 사람들은 모두 짧은 반바지 차림이다. 벨베데레 정원의 우아한 환경에서 조깅이나 산책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이른 시간의 궁전 정원은 상쾌하고 아름다웠다. 같은 관광지라도, 어떤 날씨에, 어떤 시간에 방문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정말 많이 달라진다.
호텔에 복귀해서 커피 한잔 마시고, 외출 준비 후 트램으로 미술사박물관으로 향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관동 8경이니, 서울 5대 명문 사립고등학교니, 이런 분류에 익숙해온 것 같다. 그래서인지 유럽에 대해서도 유럽 3대 미술관이니, 돌로미티 8 경이니 하는 말을 많이 듣고 보게 된다. 그런데 실제 유럽인들도 그런 분류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빈 미술사박물관은 파리 루브르, 마드리드 프라도와 함께 (혹자는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을 꼽기도 한단다.) 유럽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규모 있고 유명한 미술관이다. 실제로 우리가 교과서나 또 어디에선가 본 듯한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대 피테르 브뤼헐의 <눈 속의 사냥꾼>, <농부의 결혼식>, <바벨탑>, 요하네스 페리메이르의 <회화의 기술, 알레고리>, 벨라스케스의 <마르게리타 공주>, 라파엘로의 <초원의 성모> 등 수많은 유명 작품들이 있다.
미술관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는 것으로 미술사박물관 방문을 마치고, 가까이에 있는 구도심 산책을 나섰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오스트리아 의회의사당부터 걸어서 찾아갔다.
빈은 중세 대제국을 이루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도였고, 합스부르크의 통치자는 동시에 신성로마제국 황제이기도 했다. 물론 신성로마제국에 대해 볼테르처럼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제국도 아니었다’라고 혹평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신성로마제국은 자신들이 로마의 후예라고 주장하였고, 건물 양식을 비롯한 여러 곳에 그리스, 로마의 스타일을 도입하려 애썼다.
그 대표적인 예의 하나가 바로 오스트리아 의회의사당일 것이다. 정면에 우뚝 선 아테나 여신의 동상부터, 건물 앞을 받치고 있는 열주 기둥들까지 그리스 로마의 느낌이 강렬하다. 아랍계의 느낌이 나는 신랑 신부가 웨딩 촬영을 하고 있었다.
의사당 가까운 곳에는 라트하우스라고 불리는 빈 시청사가 자리하고 있다. 시청사 앞마당인 라트하우스 광장은, 여름에는 영화제가 열리는 야외극장으로, 겨울에는 시민들이 즐기는 스케이트장으로 활용된다고 한다. 시청사의 높은 첨탑은 마치 성당의 탑처럼 근처에서 잘 눈에 띄는 랜드마크였다.
연극을 상영하는 국립극장인 부르크 시어터를 지나 빈의 유명한 카페 중 한 곳인 카페 첸트랄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예약을 하지 않았다면 입장 자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관광객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출국 전부터 예약을 했고, 비너슈니첼, 생선 요리, 치즈케이크 등을 먹었으나, 어수선했고, 맛도 그리 감동적이라고 하긴 어려웠다.
식사 후 토요일 오후의 극심한 인파가 몰려있는 그라벤 거리로 접어들었다. 흑사병이 물러간 후, 삼위일체에게 감사하는 의미를 담아 만든 페스트조일레가 거리 중심에 있었다. 사진에서 본 느낌은 다소 그로테스크한 것이었는데, 실제 느낌은 매우 화려하고 크기도 규모가 있었다.
거리의 인파는 슈테판 성당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빈 시민들의 자부심이며, 빈 시가지의 중심이라고 일컬어지는 슈테판 성당은 웅장한 규모와 세월을 이겨낸 위용이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미 영적인 거룩함을 뒤로하고 관광객들과 상인들이 엉킨 관광지로 변한 모습이었다.
성당을 뺑뺑 돌아가며 노점상들이 빽빽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심지어는 그리스도 상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비웃었던 젊은이들이 모두 치통을 앓게 되고, 회개하자 나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치통의 그리스도 상’ 바로 앞에까지 장사치들이 판을 벌이고 있었다. 성당 정문 앞은 관광용 마차들이 주차해 있다가 출발하는 곳이어서 말똥 냄새가 가득했다.
성전 앞 장사치들에게 채찍을 들었던 예수님은 이 모습을 어떻게 보실까? 또 무지한 유대인의 돌팔매에 쓰러졌던 스데반 집사, 독일어로 슈테판은 자신의 이름이 붙은 교회의 오늘 모습을 어찌 생각할까?
오후 4시쯤 지하철로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후 저녁식사를 하고, 저녁 8시에 시작하는 음악회 감상을 위해 나섰다.
지하철로 The Schloss Capelle Orchestra가 모차르트와 비발디의 작품을 공연하는 Musikferein(무지크페라인), 일명 악우협회 공연장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매년 빈 신년음악회가 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린 시절, TV에서 중계한 빈 신년음악회를 자주 보았던 기억이 있다. 또 지난 1월 1일, 메가박스의 클래식 소사이어티 프로그램으로, 메가박스 신촌에서 동시 중계한 빈 신년음악회를 보며 가슴 설렜던 곳에서 직접 음악회를 보게 된 것이다.
음악회의 입장 절차는 매우 혼잡했고 직원들의 안내 혼선도 있었다. 관객 수에 비추어 볼 때 다소 입장 시스템에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회 가는 출발이 늦어 시간이 촉박했는데, 양쪽 계단 입구 안내 직원들이 둘 다 서로 반대쪽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높은 계단에서 오르내리느라 고생했으나, 결국 알고 보니 서로 통해서 어느 쪽으로 가도 상관없었다.
좌석은 2층 맨 앞 열 중간이어서 편안했고, 감상에 아주 좋은 자리였다. 연주회에서는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협주곡 중 발췌된 몇 개의 악장 연주에 이어 비발디 사계 전 악장 연주가 이어졌다. 모차르트와 하이든은 오스트리아에서 출생, 사망한 오스트리아인이고,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비발디는 말년에 빈에서 다소 불우한 시간을 보낸 후 사망했다. 오랜만에 들어본 사계 전곡 연주는 참 반갑고, 익숙해서 친근했다.
첫날에 이어 다소 타이트하고 힘든 하루를 보낸 후 숙소로 복귀했다. 걸음 수 23,099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