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오는 것
무더운 여름이 어느새 작별 인사도 없이 조용히 사라져 내 곁을 떠나 버렸다.
한낮의 무더웠던 날들 속에서 땀 한 방울 흘리던 시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었는데, 그 무더웠던 날이 언제였는지 내 기억 속에서 천천히 사라져 오래된 먼 추억 속 이야기 같은 기억으로 내 안에 자리 잡았다.
이젠 내 주변에 푸르름이 사라지고, 붉은빛으로 물든 나무들로 가득하게 변해가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차가워진 바람이 조금씩 익숙해지려는 지금, 소리 없이 지나버린 그 여름에 흘리던 땀 한 방울 기억하지 못하는 미안한 생각이 들어 걸어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지나가버린 그 여름날들을 추억한다.
그 지난 시간에, 그 지난날들에 나와 함께한 시간이 아무런 인사도 없이 떠나버려 나에게 아쉬움과 그리움 그리고 서운함을 남기고 지나버린 널 생각한다.
이렇게 지나가버린 널 그리워하며, 그저 흘려보낸 시간들을 이젠 추억이라 말하지만, 나에게 찾아와 함께하는 가을이 혼자만 외로워하다가 알 수 없는 시간들이 지나면서, 그 가을도 나에게 아무런 말 없이 너와 같은 추억으로 내 곁을 떠날 것이다.
가을도 그렇게 지나갈 것을 나는 알면서도, 난 이미 지나버린 그 여름날에 기억이 너무 좋아서, 이제는 지나버린 그 여름날에 기억이 너무 그리워서 이렇게 찾아와 지금 함께하는 가을을 나는 볼 생각도, 가을의 향기를 담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다.
분명 지금의 가을도 나에게 찾아왔는데,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나버린 여름인 너를 그리워하다가, 이렇게 말없이 지금 나에게 찾아온 가을에게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난 말없이 지난 추억을 기억하다 지금 나에게 찾아온 가을을 그냥 흘려보내면, 이 가을은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가을을 보지도 못하고 언제인지 모르게 추운 겨울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지나버린 그 여름날의 기억이 그리워, 이렇게 소리 없이 나에게 찾아온 가을인 너에게 난 따뜻한 미소 한번 보내주지 못한다.
언제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찾아오는 여름이라는 걸 알지만, 왜 지금 지나버린 여름에게 이렇게 마음이 사로잡혀 있는지, 왜 이번 여름에는 그렇게도 많은 추억을 나에게 남겨줬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여름은 다시 나에게 찾아올 것을 알면서도, 지금은 소리 없이 지나버린 여름에 함께한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그리워하며 추억하는 것 같다.
이번 여름에 찾아온 시간에는 나에게 지울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을 남겨줬다.
사람이 살면서 많은 시간이 지나 돌아보는 추억이 있으며, 그 추억하는 시간에 내가 잠시 웃을 수 있다면 그 추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일 것이다.
지나버린 그 여름날에 우연히 만난 너는, 오래전 내가 기억하는 그녀와 조금은 변해버린 다른 모습이었지만, 정말 내 기억 속에 있는 사람으로 잘 있어줘서 감사할 뿐이었다.
처음 본 그날에 너무 떨려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에게 만남의 기회가 많이 찾아왔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너무 편하게 오래전 우리의 기억 속 이야기를 시작으로,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작은 일상 속 이야기부터 각자가 살아온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짧은 시간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며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알 수 없는 행복과 즐거움으로 내 마음속에 무언가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씩 들고, 공원을 산책하던 그날들에 맑은 날씨와 적당히 가려진 그늘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 풀 내음을 가득 품고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이 아직도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기억난다.
그렇게 공원을 함께 산책하며, 무더웠던 날씨에 흘린 땀 한 방울이 나는 다시 그리워진다.
나는 좋은 시간들로 하루하루가 가슴속 깊은 곳부터 무언가 가득 채워지고 있으며, 너를 생각하면 하루에도 여러 번 내 얼굴에 미소가 생기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러면 그럴수록 너를 만나고 싶은 생각에 전화를 자주 걸게 되었다.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내 마음은 형태를 점점 이해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무엇이 맞고 틀린 지 구별할 수 있는 분별력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처음엔 추억으로, 다시 만난 너는 반가움으로, 나는 너에게 다가가려 했다.
함께하는 시간들이 많아지면서, 지금의 나는 내 마음속 오래전에 간직한 추억 속 친구가 새로운 기억으로 자리 잡은 너를 보고 있었다.
일상생활에 지친 내 모습과, 익숙한 습관으로 매일 반복적인 지루한 시간에 남들과 같은 평범하던 날에, 특별하지 않는 시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나에게 우연히 찾아온 넌 선물처럼 내 앞에 나타났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가 많아지고,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내 마음에는 친구라는 말이 점점 다르게 포장되어 가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너를 보는 내 눈은 점점 낮게 숙여지게 되었고, 내가 너에게 말을 하는 것도 점점 조금씩 조심스러워지고, 내 머릿속에는 걱정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너를 친구로 생각했던 이전에 내 마음이 언제부터 조금씩 다르게 변했고, 너를 친구가 아닌 그 이상으로 생각하는 나를 네가 알게 될까 봐, 나는 변해버린 그런 내 마음이 조금씩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런 조심스러워진 내 마음이 나도 모르게 알 수 없이 땀을 흘리고 있었고, 너와 함께 있는 나는 긴장감 때문인지 아니면 두려움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내 마음처럼 나도 계속 땀을 흘리고 있다.
혹시라도 네가 눈치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난 더위에 약하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건넨다.
왜 난 너에게 자신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누구도 나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왜 너에게 나는 자신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내 마음을 네가 알아버리게 되면, 오래전부터 간직한 내 추억마저 잃어버릴 것 같아 말로 표현하지도 못했다.
이런 내 마음을 네가 보게 될까 두려웠다.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한 내 마음을 네가 볼까 정말 두려웠다.
그 무더운 여름이 다 지나가도록 한 번도 내 마음을 말하지 못하고, 어쩌면 다행히 그냥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고 나서야 지금은 네가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럴 거였으면 늦지 않게 한 번이라도 내 마음속 말을 네가 알 수 있게 보여줄 것을 생각하며 지금에서야 후회를 한다.
아니면 한번 만이라도 내 마음을 표현할 것을 그러지 못함에 후회를 한다.
넌 내 마음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이젠 너의 길로 떠나가버렸다.
오래전 친구라는 이름과 그때의 추억만 남기고, 넌 그렇게 너의 곳으로 가 버렸다.
이번 여름은 나에게 특별하면서도 마음 아픈 여름이었다.
다시 찾아올 내년 여름은 지금과 같은 아픔은 없겠지만, 그 여름에는 너를 추억할 것 같아 지금은 후회가 가득한 시간이 되어 버렸다.
지금 후회가 가득한 시간을 뒤로하고, 잠시 나를 위로하기 위한 여유로운 시간을 선물하기로 했다.
난 짙은 색 향기 가득한 커피 한 잔에 여유를 갖고, 어딘지 모르는 처음 찾은 낯선 곳에서 짧은 휴식을 나에게 선물한다.
그 낯선 곳에서 익숙한 짙은 색 향기 깊은 커피 한 잔에 내 주변을 살피며, 나에게 휴식과 같이 선물한 시간에, 평온한 그 시간에 나도 모르게 내 눈가에 눈물이 살짝 고인다.
지금 나에게 찾아온 가을은 내가 지나온 여름에 추억 속에서, 내 마음이 머물고 있었어도 푸르름을 벗어나 이제는 붉은 옷을 입고, 내가 서있는 이곳 내 발아래에 낙엽이 되어 내 주변을 머물고 있다.
바람에 이끌려서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너는 무엇 때문에 나에게 왔을까?
넌 그렇게 잠시 내 발아래에 머물다 다시 바람에 이끌려 어디론가 누군가의 발아래로 찾아가겠지만 넌 그렇게 나에게 찾아온 가을이었다.
잠시 머물러준 짧은 시간에 나에게 눈물처럼 가슴속에 가을로 기억된다.
아침에 뜬 태양이 시간이 지나 조금씩 서쪽으로 넘어갈 때, 그 빛에 비추어진 넌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붉게 물들어 있었으며, 난 그런 너를 보지 못했고, 늦은 지금 이제야 붉게 물든 너를 나는 바라본다.
바람에 흔들리는 너의 모습이, 나에게 인사하듯 손 흔드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흔들리고 있었다.
부는 바람에 흔들리던 모습은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자리에서 넌 내가 볼 때까지 그렇게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뒤늦은 지금에서야 너를 보게 되어 나는 눈물이 난다.
나는 너를 이제야 봤는데, 너무 늦어버린 지금까지 그렇게 흔들며 내가 볼 때까지 부는 바람에 그렇게 손 흔들고 있었구나.
많이 힘들었고, 많이 외로웠을 너를, 늦어버린 이제야 내가 너를 본다.
지난여름이라는 시간에 빠져 그 시간을 기억하다 지금의 너를 보지 못하고, 이제야 나는 너를 본다.
내가 늦어서 미안하다.
내가 너무 늦어서 그 미안함에 눈물이 흐른다.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남아있을지 모르는 가을인 너를, 늦었지만 나는 그냥 흘려보내지 않을 것이다.
조금씩 물들어 가는 나무 끝 너를,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 수 없는 차가운 바람의 너를,
누군가를 스쳐 지나온 것인지 알 수 없는 낙엽의 너를,
무엇이든 나에게 잠시라도 찾아와 줘서 감사함으로 너를 반겨 줄 것이다.
늦은 가을 물들어 가는 나뭇잎에 이제야 다른 너를 내가 먼저 손 흔들어 줄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바람을 지금 내 옷깃을 스쳐 지나감에 감사하게 생각해 줄게.
바람에 이끌려 이렇게 나에게로 찾아온 낙엽의 너를 내가 반겨줄게.
짙은 커피도 어느덧 차갑게 식어 버렸다.
그렇게 식어 버린 따뜻했던 커피가, 오늘은 왠지 커피의 그 따뜻함보다 지금 나에게 불어주는 바람과, 그 바람을 타고 나에게 찾아온 낙엽과, 붉게 물드는 풍경이 향기로 내 곁에 남겨진다.
나는 식어버린 커피 잔에 너를 담으려 하지 않았어도, 넌 나의 식어버린 커피 잔에 가득히 담겨 있었으며, 짙은 커피 향보다 더 향긋한 가을 낙엽 향기로 내 품에 안긴다.
내 식어버린 커피 잔에 담긴 넌 바람에 흐트러지지 않았으며, 그 식어버린 커피 잔 속에서 오랜 시간에 천천히 자리 잡았고, 이제는 내 품에 안겨 있구나.
내 품에 안긴 넌 내 마음속 지난 추억을 쓰담쓰담하며, 위로하고 있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 너를 보고 있는 지금에서야 너의 그 위로를 알게 되었다.
나는 너를 알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넌 그렇게 나에게 위로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늦었지만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너를 보지도 않았는데, 넌 내 마음속에 지난 추억을 위로하고 있었구나.
나는 너를 모르고 있었는데, 너는 나를 계속 알고 있었구나.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잔을 비우기 아깝다.
그렇게 비워진 커피 잔에, 네가 머물지 않고 떠나버릴 것 같아 두려움에 아쉬워진다.
지금 내 앞에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잔에 머물고 있었던 네가, 소리도 없이 그 커피잔에서 지워질까 아니면 떠나 버릴까 두렵다.
그러는 사이 그 많았던 노란색으로, 그 많았던 빨간색으로, 어떤 너는 짙은 갈색으로 물들어 바람에 흔들리며, 그렇게 그 자리에 있었는데 돌아서 다시 너를 보니, 지금 내 곁을 스쳐 지나는 바람을 따라 너도 어디론가 바람의 이끌림으로 하나씩 떠나고 있었으며, 하나씩 바람을 따라 떠나 이제는 가녀린 나뭇가지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렇게, 짧은 시간이었는데 시간이 흐른 뒤에야 네가 얼마나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고 떠났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너를 보지 못하는 순간에도, 너는 스치는 바람을 타고 그곳에서 나에게 손 흔드는 네 모습이 있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 늦은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너를 보지 않는 순간에도, 스치는 바람을 타고 내 발아래 잠시 머물렀으며, 어디론가 다시 떠나버렸다는 것을 늦은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너를 보지 못한 그 모든 순간에 초록의 네 모습은 노란색으로 그리고 빨간색으로 아니면 짙은 갈색으로 성숙해 가던 너를 나는 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늦어버린 이제야 후회하는 건, 그때 그 순간에 다른 곳에 마음을 두고 있는 순간에, 나는 지금의 너와 함께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야 너와 함께할 그 시간이 결코 길지 않다는 것을 알고 후회한다.
이번에 떠나 버린 너를, 난 그리움으로 다시 올 널 기다릴 것이다.
이젠 내가 있는 곳에서 네가 다시 오는 모습을 반겨 줄 것이다.
지금 짧은 시간 너와 함께하는 풍경 속에 많은 것을 담아둘 것이며, 그다음에 찾아오는 너와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고, 지나버린 그때의 그날에 우리를 생각하며 짧은 미소를 너에게 선물하고 싶다.
그 미소와 함께 난 다시 나에게 찾아올 너를 생각하며 반겨 줄 것이다.
너는 나에게 찾아온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