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는 흔들리지 않는다
바지사장이라 부른 건 그냥 그렇게 보였을게다.
남편에 비해 기동력과 추진력이 있다는 철여의 기질이 남들에게 그렇게 비칠 수 밖에 없었다.
"당신은 붓을 들고 나라의 녹을 먹어야 할 사주인데 길을 잘못 들었어. 색시는 잘 만났네"
그 점쟁이의 말은 늘 따라다녔다.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차리면서 아이러니하게 샤머니즘에 의존, 점쟁이가 정한 시간 새벽 두 시에 고사를 지내고 용하다는 신점도 자주 본 적 있다. 물론 기독교 신앙으로 자란 철여의 생각은 전혀 반영된 게 아니었지만 호기심 반 불신 반이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반도체 공장은 망했고 어쩌다 생활전선에 뛰어든 철여의 옷장사는 잠깐 부업으로 하라는 남편의 마지막 자존심이 되었다.
철여는 옷을 팔고, 남편은 자존심을 지켰다.
그 자존심은 곧 철여의 자존심이다.
돈 관리와 사회생활을 맡겼다. 각종 클럽을 통한 사회생활이었다. 돈 좀 만진다 하면 다 들게 하는 L(사자) 클럽부터 각종 골프클럽, 등산모임, 담배연기 자욱한 바둑기원 출입까지 신나게 바빴다.
어느 날, 감기가 너무 오래간다며 병원을 찾았고 검사 후 "C9. 의심"이라는 진단서를 들고 종합병원을 찾았다.
검사결과는 폐암, 그 폐암의 원인이 담배라며 족집게 진단을 내렸다.
"25년 전에 끊었던 담배라고요?"
믿기 어렵다는 듯 되물었지만 어슴푸레한 확신은 담배연기 자욱한 바둑기원 잦은 출입과 남자직원 박주임의 배신과 멋모르고 시작한 주식 투자 낭패로 인한 스트레스가 한데 겹친 원인이었다.
폐암진단 후 바지사장의 옷도 벗어던지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골프채 대신 지팡이를 쥐고, 바둑알 잡았던 손은 성경책을 들게 되었다.
코로나도 지나갔고,
온갖 약부작용으로 5개 과의 진료실을 거치며
원인 모를 바이러스와 투병 중이었다.
약효는 느리고 약부작용은 빨리 나타났다.
급성 폐렴으로 세 번이나 죽음의 문턱을 드나드는 동안 철여는 눈물 콧물에 땀범벅이 되어 기진맥진. 7년 차 폐암 환자의 보호자가 된 철여는 날씨 탓 만 했다.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걱정이었다
홀어머니에 외동으로 자라 온 그는 온갖 응석을 다 받아주던 홀시어머니와 철여를 자주 비교했다. 까다로운 입맛은 환자가 되니 부쩍 더 심해졌다. 응석도 받아주면 끝이 없다. 빠른 부작용을 다스리는 건 철여의 빠른 판단뿐이다. 배고프면 먹게 되어 있다. 입맛을 밥맛으로 고치는 데는 그만한 게 없다. 다행히 그 반작용은 없어서 못 먹을 만큼, 해 주는 대로 뭐든 다 잘 먹게 되었다.
병을 이기는 비결 또한 어떤 음식이든 목만 넘기면 산다는 걸 체득했다.
장사의 매출분석은 기본적으로 날씨와 맞물려 있다. 프로는 날씨도 초월해야 한다.
특히 옷장사는 더 그렇다.
판매의 여왕이라는 호칭을 받고 어깨 으쓱할 때가 아니다.
날씨 탓이라도 할 여유가 생겼을 때 그만둬야 했다.
하지만,
그만둘 수가 없었다.
들어간 돈, 들여진 수고를 생각하면 쉽사리 그만둘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마무리 지을 자녀들의 혼사문제랑 老부모님들의 대사가 남아있어 오히려 외형 확장에 더 신경을 쓰고 투자해야만 했다.
인간은 숨 쉴 구멍만 생기면 교만이 들어온다.
장사도 그렇다. 좀 된다 하면 돈 쓸 구멍이 커지고 유혹도 더 많이 찾아든다.
예측 못했던 매출로 소위 대박을 치면 순간 벼락부자처럼 행세한다. 늘 그늘이 좋을 수도 없고, 늘 해가 쨍한 날도 아닌데 유비무환이 아닌 무한소비였다.
백화점 vip고객으로 초대받기도 했다. 한 맺힌 과소비의 흔적이다.
장사의 매출도 약간의 중독이다.
매출에도 빈 익 빈, 부 익 부의 원리가 있다.
잘 되는 매장은 더 잘되고 안 되는 매장은 더 안 된다. 위수탁 판매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판매율 좋은 매장의 빠른 판매로 물건이 없어서 못 팔면 본사물류팀은 있어도 못 파는 매장의 상품을 매장 간 이동시킨다. T.P.O 적용으로 빼앗길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고객은 마냥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객의 완불주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일 아침 전쟁이다.
컴퓨터로 본사의 지시이동이 뜨면 사이즈교환이라도 맞바꿔야 하니 피 터지게 머리를 굴려야 한다.
더 올라가기 위해 과부하가 걸린 줄도 모르고 자나 깨나 매출 생각뿐이었다.
판매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았다.
고정 고객수가 늘수록 에피소드도 줄줄이다.
프로는 생리현상도 잘 다스려야 하는데 웃음과 방귀가 섞인 해궤망측 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참느라 얼마나 애썼을지 이해하는 건 그다음 문제다
남성복 중에 바지판매는 일매출 거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바지 밑단 수선은 기본이다.
밑단수선 클레임도 만만찮아 수선체크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날도 별이는 바지기장을 재느라 집중했다.
"조금만 더 내려요"
"아니, 조금 더 올려요"
별이는 거울을 통해 서로 바지길이를 조정하고 있다.
"됐죠?"
"다음 손님~!"
별이는 재치 있는 위트와 발 빠른 센스를 지녔다.
"복숭씨까지 올려 주세요"
"에이, 조금만 더 올려봐"
"아니, 1미리만 더 내려"
별이는 거울 속 남자를 보고 그 남자는 살짝 왼쪽 뒤를 돌아보며 서로 기장 체크에 집중하던 중
"뽀~옹!"
아뿔싸 이번엔 손님이 아닌 여직원 별이의 방귀였다.
너무 애쓰다가 괄약근을 미처 잡지 못하고 놓쳐 버린 거다.
그 남자의 순발력은 별이보다 더 빨랐다.
"별이 씨 가슴 참 이쁘네" 였다.
방귀가 먼전지, 훔쳐본 가슴이 먼전지...
그놈의 순발력인지 흑심인지가 절묘한 타이밍이라 웃음으로 모면할 수 있었다.
"하하하"
"아이 웃겨 하하하"
별이와 철여는 유머로 넘기고 고객과 함께 그 생리현상을 웃음으로 날렸다.
보통은 엉덩이 아래에서 기장체크를 하다 보면 고객의 가스발사를 더 자주 당해야 하지만, 그날은 별이의 전날 과음한 술 탓이었다.
술,
본사 영업부 직원들이 오면 영업 마감 후 회식을 했다. 2차는 무조건 별이 점장이 맡았다.
점장별이는 깡마른 체구라 무슨 옷이든 잘 소화시키지만 여성다움을 감추는 직원가운을 입기 싫어했다. 자유복을 허용할 만큼 판매도 잘하고 센스 있게 옷도 잘 갖춰 입는다.
남성복을 팔다 보면 별의별 일도 많다.
바지기장 재다가 고객의 방귀를 맡게 되는 일도 흔하지만, 쪽지를 건네받는 일도 부지기수다.
매출만 오른다면 방귀정도는 더 이상 문제가 안된다.
그날 판매 매출 또한 활짝 웃음으로 마감했다.
(전국 300여 개 매장에서 1등으로)
진정한 장사꾼은 주어진 환경이 어쨌든 날씨 탓이나 생리 탓 만 하지는 않는다.
지금 가고 있는 보호자의 길도 가끔 외롭고 지치기도 하지만
하나에 제대로 빠지면 행복합니다.
하나에 제대로 빠지면 성공합니다.
몰입은 그것과 내가 완전히 하나 되는 것
어떤 틈도 의심도 후회도 용납하지 않는 것
<조선 지식인의 아름다운 문장> 65쪽.
글은 꼬여도
연재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