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는 아무나 못해
<600만 자영업자들을 위한 극약 처방> SBS TV 프로그램을 시청을 했다.
폐업전쟁 맞다.
폐업 : 생존, 폐업도 쉽지 않고 생존은 더 어렵다. 극약처방은 될까. 매출 구조를 따져보기도 하지만, 답 없다. 경제위기는 예고 없다. IMF도 그랬고 코로나도 그랬다. 지금은 코로나 시국 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뉴스다.
1인 사장이라는 호칭이 생긴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사장을 거꾸로 하면 장사, 말장난 같지만 장사의 사事자는 죽을 사死자로 바뀌는 일이 알게 모르게 부지기수다. 열의 아홉은 살기 위해 시작했지만 죽지 못해 하는 빛 좋은 개살구, 규모가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사장의 고충은 비일비재하다. 언젠가부터 최저임금이니 뭐니 하더니 인건비도 못 맞추는 사업장이 수두룩해졌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최저 임금이 높아지면서 기업의 하청 공장들은 외국으로 옮겨가고, 국내는 외국인 고용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직장이 사라지고 문을 닫는 영업장이 늘어난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비대면은 재택근무와 함께 배달문화로 바뀐 시장의 빠른 흐름도 한몫했다. 식당 서빙도 불평 없는 로봇으로 대체, 계산대에도 키오스크가 자리 잡고 있다.
모든 관계는 갑 아니면 을이다.
갑의 갑질은 다양한 옷을 입고 도처에 깔려있다.
을은 대놓고 교활한 갑의 갑질에 울기도 하지만,
궁색하고 어색한 갑질에 울기도 한다.
철여의 인생에서 27년 간의 옷쟁이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다.
92년도, 잠시 부업처럼 시작한 옷장사였으나 경험 없이 시작한 장사는 문을 열고 닫을 때까지 늘 조마조마한 새가슴이었다. 다행히 전혀 예측 못한 대박이 났다.
그때 끝냈어야 하는데, 욕심은 욕망의 새가 되어 훨훨 날았다.
"미국의 황금시대가 이제 시작되었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보다 훨씬 전에 철여는 철여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17평 남짓한 평수에서 남성복 매장 하나로 시작해, 17년 만에 의류브랜드의 매장만 여섯 개를 운영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한 남성복 브랜드는 본사의 제안으로 120평 남녀 복합매장으로 이전 확장했다.
황금동에 자리 잡았으니 대리점 이름도 황금점이다.
7층 건물의 외벽도 건물주 자랑 중 하나 인 황금색 수입 판넬을 붙여 지은 건물이었다.
1층에 120평 매장을 계약하고 17년째 황금동의 랜드마크로 만들 만큼 대박 매출을 일으켰다.
(조인성 공효진도 황금매장에서 드라마 촬영을 한 곳이다.)
대형매장은 사고도 대형이다.
#1. 겨울 끝자락에 이월특판행사를 했다.
특판행사는 <만원의 행복>이라는 현수막을 미리 내걸고, 고정고객에게 문자 발송을 하면 무조건 일매출 3천 이상을 찍는 5일간의 행사다. 이월상품 확보하여 신상품을 대박내는 작전이다. 화끈한 가치상품으로 신규고객 수를 늘리고, 고정고객에게도 혜택을 주는 특별행사다.
신사바지, 티셔츠, 남방 무조건 만원
정장 한 벌 무조건 5만 원
넥타이 구두 무조건 5천 원
남녀 복합 대형매장에만 절기마다 매년 혜택주는 5일간의 특판행사는 특혜다. (3×5=1억5천) 이월상품은 물론 신상품까지 덩달아 춤추는 매출이다. 100% 고스란히 남는 게 아니다. 슬라이딩 마진이라 이것저것 다 떼고 나면 천만 원 조금 넘는다. (그래도 5일에 천만 원이 어디야)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천만 원이 날아간 사건이 있었다. 어찌나 억울했던지 기억도 하기 싫은 기억이다.
그 해 겨울, 시즌 마감 때 특판 행사의 마지막 날은 눈도 펑펑 내렸다. 마지막이라 손님도 더 붐볐다.
계산대의 긴 줄을 기다렸던 한 모녀가 각자 골라 온 제품들을 한가득 안고 계산하다가 아버지 티셔츠는 매장 바로 앞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아빠에게 마음에 드는지 보이고 온다며 티셔츠 하나를 들고 뛰어갔다.
뛰어 들어오다 눈 밟은 자기 신발에 미끄러지듯 걸려 넘어졌다.
계산대에 기다리던 엄마가 넘어진 딸을 보며,
"에구 조심 좀 하지 다 큰 처녀가 왜 뛰어오냐" 하는데
그 딸은 일어나며 입을 가리고 있는 손가락사이로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입술이 터지고 앞니 두 개가 부러진 거 같다고 했다.
그 모녀는 병원으로 갔고 한참 후에 전화가 왔다. 치료비를 변상하라는 것이다.
곧 결혼 날짜를 잡아둔 예비신부라며 매장 안에서 넘어졌으니 매장이 책임지라는 것이었다.
치료비 천만 원을 요구했다. 본사에도 언제 전화했는지 확인 전화가 왔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리저리 수소문해 알아보니 매장 안에서 상해를 입으면 무조건 매장 책임이라는 그런 법이 있다고 했다. (어쩔...) 고스란히 물어주고, 그렇게 바쁘고 힘들었던 행사는 허사가 되었다.
브랜드는 작은 사건 하나에도 매스컴을 타면 큰 타격을 입기에 소송은 이겨도 이긴 게 아니다.
나 하나만 울고 조용히 손해 보면 되는 일이었다.
억울하지만.
바람만 세게 불어도 걱정이다.
바람에 현수막이 떨어질까 노심초사다.
매일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2. 눈물 뽑은 사건 또 하나는,
착실하기로 소문났던 남자 직원 박주임 이야기다.
판매 융통성은 조금 떨어지지만, 정직과 성실이 이마에 찍혀 있는 듯한 직원이었다.
15년 넘도록 같이 일했는데 3년 동안 현금만 빼돌려 횡령한 사건이다.
시즌반품 때가 되면 다른 여직원들은 퇴근시키고 혼자서 밤늦도록 박스를 싸고, 전산처리와 창고 정리를 혼자 도맡았다.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해 다른 직원 몰래 수당도 챙겨 주었다.
2월 반품 후 정산 때, 일이 터졌다.
본사 물량팀에서 전산이랑 반품 재고가 안 맞다고 전화 오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다. 이상하다며 전화가 왔다. 이상하면 이상한 건데 그래도 믿고 싶었다. 절대 그럴 리 없다고. 하지만 본사는 그런 일을 허다하게 본 터라 직원 의심을 하며 확인해 보라고 했다.
끝까지 믿었지만 믿는 도끼에 발 제대로 찍혔다. 3년 동안 재고와 입고를 돌려 맞춰 놓아 전혀 눈치도 못 챘던 것이다. 예방 못한 시스템 관리 탓도 있었지만, 긴 꼬리는 박주임이 미처 돌려놓지 못한 타이밍에 절묘하게 잡힌 거였다. 대충 계산해도 7천만 원이 넘었다.
사연인 즉, 부모님 병원비 때문에 사채를 쓰면서 카드 돌려 막다가 현금에 손대기 시작했다며 변상할 돈도 없으니 처벌받겠다고 했다.
결정이 쉽지 않았지만 철여의 엄마가 심은 오랜 지혜가 철여의 결단을 도왔다.
'어차피 되돌릴 수 없는 상대의 잘못이라면 용서로 덕을 쌓는 거'라 했었다. 자식 있고 부모 있고 형제 있으면 아무도 큰 소리 못 친다며.
자진 퇴사와 함께 박주임을 용서했다.
어설픈 직원의 어설픈 갑질이었다.
#3. 눈물 뽑은 사건 하나 더도 겨울에 일어났다.
연일 수도관 터지는 뉴스가 이어지는 깡추위에 황금 매장도 소방 스프링클러가 터졌다.
매장 안은 삽시간에 물바다가 되었고 바로 얼어붙었다. 우산 없이 소나기 맞은 옷처럼 코트까지 다 젖었고 고가 캐시미어 양복도 다 젖었다. 소매에 부착된 가격라벨 끝에는 고드름이 달렸다.
모든 직원이 행거를 옮기고 마른 밀대걸레로 쓸어내던 중 철여도 쭉 미끄러졌다. 설상가상으로 꼼짝달싹 못하고 누워, 119에 실려 갔다. (그때도 남편은 오전골프를 마치고 골프백을 들고 천연덕스레 들어오다 난장판이 된 매장을 보고도 남의 집 불 보듯 했다.)
그날 영업은 불가했고, 사후처리는 어쩔 수 없이 남편이 하던 중인데 건물주의 변함없는 갑질언행으로 얼어붙은 얼음판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벌어졌다.
건물주는 자기 책임을 면하기 위해 그 와중에 선수를 치며 스프링클러 시설을 배상하라고 했다. 선과 후를 모르는 건물주의 몰상식은 7층 건물 층마다 임차인들이 눈물 없이 나간 적이 없을 정도였다. 위로는커녕 매장 인테리어 때 배관시설을 잘못 건드렸다는 억지를 부렸다. 건물주와 남편 두 남자의 언쟁이 높아지고 수습은커녕 일만 커질 대로 커졌다. (...)
철여는 급히 병원에서 돌아와 손목이 부러져 팔에 깁스를 걸치고 허리까지 삐끗해 복대를 한 상태로 건물주를 만났다. 남자와 여자가 싸우면 여자가 이긴다. 가끔 여자의 무기는 눈물, 엉엉 대성통곡을 했다. 이래저래 서럽고 화난 김에 고주알 매주알 따져가며 실컷 퍼붓고 울었다. 눈물반, 협박 반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다는 건물주,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괜히 있었던 시대가 아니었으니 눈물로 통하지 않으면 세무직 공무원 오빠도 들먹거릴 (협박?) 참이었다.
적중했다.
건물주의 사과에 이어 본사가 들었던 산재와 상해보험 등으로 젖은 상품 반품과 매출 피해 보상까지 다 받아냈다. 퉁퉁 부은 눈은 가라앉았지만 그때 부러진 손목과 금 간 허리는 아직까지 골병으로 남아 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이 있었다.
그 말은 잘ㆍ잘못을 따지고 소송까지 가는 것보다 당장은 억울하고 손해 보는 것 같아도 합의점을 빨리 찾는 게 이익이라는 말일게다. '세상엔 공짜 없고 아무도 큰소리 못 친다고 했지. 울 엄마가.' '언젠가 그대로 벌 받을 거라'는 저주 아닌 소심한 저주를 퍼부었다.
이 꼴 저 꼴 보기 싫으면 장사를 하지 말아야 했고, 그도 저도 아니면 참아야 했다.
어설픈 직원의 갑질
어설픈 고객의 갑질
어설픈 건물주의 갑질
배신도 설움도 또 참았다.
티브이를 보다가 또 삼천포로 빠졌다.
모르긴 해도 1인 사장이라는 호칭도 절약 속에 전략도 들어 있는 것 같다.
몸은 고되지만 갑질하는 직원 없이 속이라도 편한 게 낫다는 전략도 숨어있을 것이다.
세상에 상식 밖의 사람은 얼마나 많은가.
성공한 장사 뒤에는 얼마나 많은 눈물이 숨어 있을까.
하지만 "울며 씨를 뿌리는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는 시편 말씀은 영원하다.
시장경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펼칠 기술은 없지만 상술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장경쟁에서 기어이 살아남을 길을 찾는데,
이글이
겨우라도 좋으니
한순간이라도 좋으니
누군가의 어둠에 한 줄기 빛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장사는 아무나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