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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나철여 06화

해결사 바지사장

문신처럼 새겨진 호칭

by 나철여

열을 식히려 숨을 몰아쉰다.


'3D 업종은 정말 D 죽겠다' 고객에게 들들 볶이고 본사에 들들 볶이고 직원들에게 들들 볶인다.


고객은 갑질이 기본이고 고高질의 서비스로 대접 좀 해주면 더 더 고급지게 갑질이다.
본사는 높은 매출 목표를 조금 더 더 높여 잡고 물량배분으로 쥐락펴락 갑질이다.
직원들은 매출엔 관심 없고 월급만 올려주길 바라고 직원 복지만 원하는 색 바랜 갑질이다.
모두 들거리게 한다. DDㆍD


장사꾼이 되라 말은 쪼잔하게 말고 크게 벌라는 엄마표 축복이었다.
명심하고 명심했다.
그렇게라도 표현해야 교육열 높은, 자존심 높은, 우리 엄마의 얼굴에 먹칠 안 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나 하는 장사인 줄 알고 옷장사를 열심히 아주 열심히 했다. 옷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마음을 접고 또 접는다.

모든 장사가 다 어렵지만 생각보다 옷장사는 더 힘들고 어렵다. 실컷 입어보고 다음에 산다는 둥, 색깔이 다른 색은 더 없냐는 둥, 신기할 정도로 본사 창고에도 재고가 없는 맞춤 같은 사이즈만 골라 찾는다.


엄마가 말했다.
"어치피 시작 한 장사, 장사꾼이 돼라. 장사치 말고!"
하지만,
그날은 장사치가 되기로 했다.




"야! 개ㅆㅂ 사장 나오라 그래~"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한 남자를 보며

둘째 손가락 셋째 손가락을 뒤집어 토끼귀 만들어 까딱거리며 한 남자를 가리킨다.


"야, 당신, 바지사장이야?"
"진짜 여사장 나오라 그래!!!!!"

이틀 전 피팅룸에서 옷 갈아입고 나오면서 어깨 문신을 본 터라 별이는 바짝 쫄아있고, 그가 가리킨 한 남자는 남의 집 싸움 구경하듯 아무것도 못 본 사람취급을 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늘 그랬다)


철여는 매장 뒤켠 수선실에서 수선하다 cctv로 그 장면을 보았다. 점점 더 커지는 소리에 뛰어나와 보니 그때 어깨 문신 남자였다.


큰 사건은 미리 예고라도 하지 작은 사고는 예고 없다. 작은 사고가 커지면 더 속수무책이다. 양아치 같은 고객이었다.
양아치를 다루려면 장사치가 되는 수밖에.

철여는 여자들이 무섭지, 남자들은 하나도 무섭다. 자랄 때 사고뭉치 오빠들 사이에서 바람 잘 날 없는 사고를 수없이 보면서 자랐기 때문이다. 어깨 들먹이는 사내들도 용 문신도 무섭지 않다. 남자랑 여자와 싸우면 여자가 이기는 묘한 구석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철여가 뭘 믿고 까부냐면 샌드백 치며 주먹을 키우던 오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넷은 고교시절 하나같이 책가방만 옆에 끼고 다녔지 동네 약자들의 해결사였다.

정학 처분이라도 당하면 샌드백에 훈육 선생 이름 석자 써 놓고 화풀이를 해 대는 오빠들이다. 수많은 이름들이 겹쳐진다.

법은 멀고 주먹이 가깝던 시대였다.
그래도, 주먹 센 오빠들은 가끔 철여의 믿을 구석이 된다.

92년도 처음 장사문을 열었을 때 일이다.

매장 앞에 놓인 개점 축하화환을 보고 항상 제일 먼저 찾아온 건 동네 양아치들이었다.(그땐 그렇게 불렀다)
잔칫집 거지들도 아니고 팔뚝 문신과 붕대감은 양아치들이 교대로 찾아와 금전을 요구했다. 지역을 지켜주겠노라고 교대로 찾아와 으름장을 놓고 장사를 훼방했다.
그때도 넷째 오빠의 도움을 받아 가뿐하게 해결했었다. 오빠가 해용이라는 말만 흘려도 변두리 양아치들은 가게 근처 얼씬도 못했다.



한편,

바지사장은 싸움과는 거리가 멀고 법대 졸업했지만 법 없어도 사는 순한 양이다. 그런 남편과 사는 철여는 더 거칠어져야 했다.

적군을 아군으로 만들려면 심리전에서 먼저 이겨야 한다. 이기려면 상대 심리를 잘 파악해야 한다.

"뭐야, 당신? 바지사장 대신 치마사장 나왔다 어쩔래?"

철여는 그 고객을 끌다시피 매장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딱 봐도 철여보다 어렸고, 가진 거야 까 봐야 알 거고, 학벌? 안 떼 봐도 뻔하다.)


"그래 저 매장 안에서는 고객이지만 나오면 니나 내나 똑같은 사람이야. 뭐가 불만인데?"


"네가 가졌으면 얼마나 가졌고 배웠으면 얼마나 배웠는지 몰라도 나도 배울 만큼 배우고 가질 만큼 가졌어."


"고객은 왕이라고?"
"왕도 왕 같을 때 왕 대접받는 거야!"


"이 씨발 개 씨발 나도 다 할 줄 알아, "
"그런데 내 입 더러워질까 봐 안 해..."

(욕도 이미 다 했다. 철여기세 승!)

철여는 조사하나 붙이기도 아까워 쉴 틈 없이 박사포를 선제공격해 댔다.
그리고는 호흡을 가다듬고 전후사정을 들었다.


그 고객의 사실은 그랬다,
전 날 마신 술이 화근이었고, 전날 싸운 부부 싸움이 화근이었고, 그보다 훨씬 더 전부터 사업실패로 격이 비뚤어졌고 반품해 오라는 마누라 등살에 억지를 부린 거였다.


'허리는 36인데 허리 반 인치 늘리고 바지기장 39반으로 수선함... 박○○'
판매일지에 다 적혀있었다.
수선까지 한 옷을 반품해 달라는 이유는 변심을 넘어 직원에게 화풀이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 남자는 '한 남자가 더 화나게 했다'라고 한다.
그 한 남자는 철여의 남편이었다. 여직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동안도 그냥 지켜보고만 있더란 것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자리에 없거나 있어도 남일 보듯 늘 그랬다


타고난 성품이기도 하지만 외동으로 자라면서 자칭 타칭 학자 스타일이라 장사 스타일에 적응을 못한 건지 안 한 건지 늘 그랬다.

점잖은 바지사장, 뭔지 모를 부글거림이 올라온다.

그 점잖은 바지사장을 유지시키느라 철여는 밤늦도록 수선을 해댔고, 겉으로는 남편, 속으론 평생 웬수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말씀하실 때 원수는 가까이에, 가장 가까이 있다는 말씀도 해 주시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좋아서 한장사도 아니고 좋아서 한 결혼이 아니었다. 철없어 한 결혼이었고 어쩌다 한 장사였다.


어찌 되었건, 바지사장은 황금매장에 없어서도 안 된다.


은행일이며 매출마감은 항상 바지사장이 해야 했다.

대외적으론 싱글실력으로 골프접대를 하고, 출 마감 시간까지 시간 때우기는 기원이다. 가끔 급수 조절한 바둑실력으로 단체복 수주를 곧잘 따온다. 뒷돈이 더 들어도 매출기분은 잠깐이라도 좋다. 사는 체질이 아님을 고객이 직원이 더 잘 안다.


부산에서 법대를 나와 소심한 사법고시를 치르고 대기업에 젊은 과장으로 숨어 지내다가 중소기업 사장에게 발탁되어 봉재 수출공장 이사로 승승장구하나 싶더니, 동남아의 인건비 경쟁에 밀려 갈아탄 게 공동투자로 반도체공장을 차렸다. 쥐뿔 실력도 없는 두 사람이 일본 첨단 기술에 걷어차이고 물려받은 논밭까지 탕진.
다시 서울로 올라가 대기업 이사로 낙하인사 채용됐지만, 적응불가. 다시 대구로 낙향해 듣도 보도 못한 옷장사를 아내에게 부업 삼아 시킨 게 본업이 되었고, 체질이 아닌 장사티를 못 벗어나는 성격 탓에 남일 보듯 하는 바지사장으로만 비친 모양이다.


두 남자의 어이없음은 크게 다를 바 없다. 그게 최선의 해결책이라 믿는 남편에게 그 남자가 붙여 준 호칭의 시작이다.
아내인 철여보다 철여의 남편을 더 잘 아는? 그 남자, 그 남자의 호칭이 모든 고객게 불라는 호칭으로 자리 잡을 줄이야! 문신처럼 새겨진 바지사장은 그만의 방식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열을 식히려 다시 숨을 몰아쉰다.

웬수같은 남편은 있어도 남편같은 원수는 없다.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던 예수님의 씀, 일곱번이 아니라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해야 하는 건 어찌 남편 뿐이랴.


그 고객도 그렇지 바지사장이라니...




혼나는 것은
희망이 있습니다.
혼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은
좋은 결과가 아니라 아름다운 이야기이고,
낙관적 상황이 아니라 절박함의 이야기입니다.

《조선 지식인의 아름다움》에서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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