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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나철여 05화

새들의 욕망

샵마스터 넷

by 나철여

넘치는 욕망 불타는 야망의 호수하나를 끼고 바람과 구름이 모여들고 있다.
최고는 최적의 환경으로부터 시작된다.

눈을 뗄 수 없는 시간들 속에 옷장사로 발을 들여놓은 지 27년이었다.


판매보다 더 힘든 건 '직원 다루기'이다.

직원이 오래 몸담을 수 있고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은 공간에 있지 않고 공감에 있다.

그들은 그들대로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패션계는 디자이너보다 더 특별한 샵마스터들이 숨어있다.


등장부터 남달랐던 별이도,
타고난 끼를 죽이느라 팔자를 고치던 현주도,
침착하고 당당하기 그지없는 고은이,
자격지심을 저격진심으로 백골분투한 광이도 여전히 패션계를 휘젓는 새들이다.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패션의 트렌드를 읽듯 사교의 흐름을 탄다.

"우리 만나요"

"오세요"
새들의 욕망에 타깃이 되면 백발백중 걸려드는 사내들,

유부남이든 홀아비든 가리지 않고 새들의 먹이가 된다.


"아무것도 몰라요"

"가세요(...)"

구매이력을 데이터베이스로 움직인다.


"(...) 그럴게요"
노출을 꺼려하는 자는 강한 노출을 욕망한다.



#1. 테니스, 광이

테니스공 두 개를 품은듯한 가슴,
개미허리에 걸쳐져 있는 두 다리,
라켓에 공이 닿을 때마다 숨 뱉는 으악소리는 테니스코트를 휘감고 있다.
거친 숨소리가 잦아들 즈음 광이의 머리카락에 남은 샴푸향이 코치의 코끝을 건드렸다(...)


광이는 백화점 명품 여성복에 뿌리를 내리고 샵마스터들의 부러움을 온몸으로 받는 매출 탑 매니저다.

탑을 유지하려 남다른 취미를 갖고 있다. 테니스다.

출근 전 광이의 테니스는 하루의 활력을 땀으로 시작한다.

코치와 광이, 둘은 테니스 라켓을 사이에 두고 있다.


#2. 줄담배, 현주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내가 호랑이라고?"

"이빨 빠진 호랑이가 웃겠다."

ㆍㆍㆍ

"호랑이는 아무 데서나 성깔을 부리지 않는다고..."


직원 탕비실은 비어있다.

폰을 꺾어 넣고 담배를 꺼냈다.

전화 속 인물은 매번 바뀐다.

현주는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담배를 연신 피워댄다.


#3. 양다리, 고은

백화점 5층 명품 골프 샵에서 탑매출을 고수하는 고은이는 양다리 걸치기에 철두철미하다.

결혼 3년 만에 이혼하고 딸 하나를 데리고 살지만 누구도 상상 못 할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비행기 승무원 k와 건축가 B, 둘 사이를 완벽하게 걸쳐두고 차분하게 전남편의 딸을 키우며 산다.


비행이 없는 날은 본처에게 반, 고은이에게 반, 비행을 연속하는 k.

지방에 머무르는 날이 많은 건축가 B는 서울 본가에 보름 머물면, 거의 지방 출장 핑계로 연애 건축 설계를 한다. 살고있는 아파트도 B가 사준 집이다. 샵마스터 고은이라는 타이틀은 두 연인의 날짜가 겹치지 않도록하는 완벽한 방어막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명품샵에 명품고객은 드물다. 이상하다 하면 이상한 관계였다.

고은이는 흉보다 닮아가고 있는 샵마스트가 되어버렸다.

이중 생활 역시 구매이력을 살피다 고은이의 온갖 상상이 현실로 이어진 거였다.



#4. 술꾼, 별이

깡마른 작은 몸매에 어디서 뿜어지는지 모를 재치와 유머를 지닌 별이는 나여사의 분신이다.

모든 문제를 술로 쉽게 풀지만, 샵마 넷의 사이를 오가며 한 트랙 내에서 각 소리를 잘 어우러지도록 조절하는 마스터링 역할에 능수능란하다.


무엇보다,

다들 백화점 명품관 샵마스터로 빠져나가는데 별이는 오롯이 나여사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댁엔 효부로, 무능한 남편에겐 열녀의 자리로 흔들림이 없다.


별이를 찾는 단골이 늘어나고 별이를 모셔갈 브랜드들이 혈안이 되어 있지만 몸값에 관심 없고 술에만 관심, 별이 옷장에 있는 옷 보다 술친구가 더 많다. 훗날 술이 있는 책방 차리는 게 목표다.



그녀들에게는 그 누구도 못 따라 올 판매실력이 있고 같은 여자도 반할만한 외모를 지닌 공통점이 있다.

나여사는

멋모르고 첨벙 뛰어들었던 물길이 이리도 깊은 줄 몰랐다.


철여를 철들게 한 여러분들 속에 샵 마스터 넷도 있었다.


철여는 철새처럼 이리 저리로 옮겨 다니는 직원들을 곧잘 새들에 비유한다.

새들은 변장한 날개를 달고 서로 다른 쪽으로 날아갔다.
화려한 깃털로 암컷을 유혹하는 수컷 새들처럼, 둥지를 튼다.

새들은 서로 부러워한다.

부러움이 질투가 되고 질투는 증오를 낳고 다시 서로 쪼아대다가 지쳐 죽고 만다.

판매는 3D업종에 속했다.

담배도 늘고 술도 늘고 엉뚱한 사교 만남도 서슴지 않았다.

힘들게 번 돈은 힘들게 모아야 했다.

하지만,
판매로 승부하겠다는 새들의 희망은 욕망으로 변했다. 그 욕망은 상처를 안은 채 부풀려가고 있었다.




자랄 때 애먹인 자식이 철들면 효자 된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 잠수 타기 일쑤였고 판매 실수로 진땀 나게 했던 그녀들은 변장한 새가 되어 높이 오르고 있다. 해마다 세배하러 오고, 생일은 꼭 챙겨준다.


몸값 높인 판매실력은 많은 유혹도 따랐다. 철여는 그들의 욕망을 잠재워 줄 생각에 빠졌다.

한 트랙 내에서 각 소리를 잘 오우러지도록 조절하는 마스터링 역할에 능수능란하다.


나여사는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제아무리 빼어난 미모와 판매기술을 지녔다고 해도 실수가 없을 수 없다.

가장 나쁜것이
지독히도 날래고, 지독히도 예쁩니다.
가장 나쁜것이
지독히도 달콤하고, 지독히도 부드럽습니다.
잠깐!
봄직하고 먹음직하고 들음직한 것은
당신에게 지독히도 나쁜 것인지도 모릅니다.

<조선 지식인의 아름다운 문장> 中

처음부터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없다.

지독한 삶은 호기심으로 따라가고 잠깐사이에 저절로 나빠지는 것이다.

끊임없이 뉘우쳐야 하고, 같은 잘못을 두 번 이상 다시 저지르지 않는 게 중요했다.

회개는
죄 많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뉘우침이 많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더러운 것은
죄가 아니라 뉘우침이 없는 마음입니다.

- 다산, 정약용 -


흔들기의 명사수인 철여는 남의 둥지에 앉은 새들을 흔들어 놓지 않으면 안 되었다.

지ㆍ덕ㆍ체로 몸과 마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흔들어 놓는다.

더러운 것은, 죄가 아니라 뉘우침이 없는 마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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