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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 기쁨

숨은 슬픔

by 나철여

평온한 구의 어둠은 두려움도 수반한다.


낯선 곳 여행에서는 더욱 그렇다. 작은 미소와 친절지도 의심과 두려움이 앞선다.


쭈삣쭈뼛하는 그녀의 몸짓과 표정은 나도 잠시 주춤거리게 된다. 지나친 배려라는 걸 한참 후에 알았다.


여행 중 드러낸 기쁨도 있다.

밴쿠버 다운타운에서의 기억이 새롭다. 거리의 신호대기 중 팝콘 튀기는 냄새에 끌려 평소에 잘 먹지도 않던 팝콘 한 봉지를 샀다. 평소에 잘 앉지도 않던 길거리 벤치에도 앉았다.

흰머리가 멋져 보이는 할머니가 나보다 더 먼저 세월을 즐기고 있었다. 나의 오랜 로망이 바로 이런 꾸민 듯 안 꾸민듯한 꾸안꾸 모습으로, 어디서든 여유로운 시간을 갖는 거다. 패키지여행 중에도 마치 현지인처럼 느긋하게 설정한 사진들이 우습고 귀엽다.




패키지여행 옵션 중 하나인 멀린레이크 크루즈(95$) 를 타고 호수 속으로 들어갔다. 배를 타면 항상 주의사항을 먼저 듣는다. 그리고 배에서 바라보이는 설경에 담긴 히스토리 등 해설을 하는 가이드와 선장이 있다. 넋 놓고 드문드문 듣는데 잠시 뷰포인트에 우리를 내려줬다.

모두 사진으로도 담기 바쁘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작품 아닌 곳이 없다. 걸작들을 배경으로 연신 셔터를 누르다 약속된 시간에 다시 승선, 이 타이밍을 놓칠세라 여행 짝지 올케언니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키 크고 잘 생긴 선장과 젊고 해맑은 해설가를 끼고 사진을 찍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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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선을 도우다 흔쾌히 허락한 사진, 승선을 기다리는 여행객들도 엄지 척을 보내주는 바람에 잠시 스타가 된 기분이었다. 눈가 주름살도 선글라스로 가려지니 굿샷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이스필드 파크웨이 남쪽을 지나 약 50분 걸려 콜롬비아 빙하지대로 이동했다.

특수설상차 (US$80)도 옵션이다. 현지 날씨에 따라 운영되지 않을 수도 있었기에 옵션이었나 보다. 여행 내내 날씨도 우릴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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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케언니는 75세, 나는 언니보다 6살 아래다.

우린 슬픔을 숨기고,

목젖이 보이도록 웃고, 목청껏 소리 질렀다, 꽁꽁 얼어붙은 얼음판 위에서는 기쁨도 슬픔도 다 미끄러져 녹아내렸다.

맞다,

세상도 역사도 인생도

지금 이때 지어지는 것은

반드시 다음 계절에 드러나나니... 박노해 <걷는 독서>

그래,

지금처럼 슬픔도 이기고 잘 살아야겠지. 더. 더. 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한여름 한복판 8월 초에 다녀온 로키투어, 나는 아직 그 속에 머물러 있다.

벌써 가을이 깊어가는데.

한여름 캐나다 로키투어는 서서히 녹여 먹고, 계속 우려먹을 참이다.

다시 되뇐다.

브런치에 뭘 쓰던

브런치에서 뭘 읽든

내게 있어 브런치는 또 하나의 숨 쉴 구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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