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프리랜서의 일상
밤 9시가 다 되어서 친한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일 놀래?” 한 시간 후 답문이 왔다. “좋아, 근데 꼭 내일만 되는 거야?” 언제 어디서 볼지 정하진 않았지만 그녀집과 우리집 사이는 대중교통으로 대략 3시간이다. 당장 내일 보자고 늦은 저녁에 연락을 해놓고는 약속이 잡힐거라 당연하게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게 예의 없는 일인가 라는 것을 따질만한 사이도 아니다. 그녀가 결혼 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기 전까지는 ‘지금 편의점 앞에서 맥주 마시자’가 충분히 가능했던 사이니까. “다른 날도 괜찮아. 그냥 심심해서” 아쉬운 마음에 괜히 ㅋㅋ를 한 10개 보냈다. 집안일로 바쁜 주부에게도 평일 시간은 틈을 내기 쉽지 않다. 그에 비해 나는 주부도, 직장인도 아니다.
프리랜서를 선언한지 약 3개월이 됐다. 퇴사와 동시에 과감하게 도전 한 것도 아니고, 대단한 계획 하에 시작한 것도 아니다. 작년에 회사를 그만 둔 후 1년 가까이 백수로 살았다. 이제 돈을 좀 벌어야겠다 싶어 스스로에게 선언한 지 3개월이다. 감사하게도 오랜 경력과 인맥이 일거리들을 가져다 줬다. 프로젝트 하나를 진행 하는데는 2주에서 3주 정도가 소요된다. 그리고 그 다음 프로젝트가 들어올 때 까지 말 그대로 자유다. 일을 쉬는 1년 동안 늘 상상 해 왔었다. 어떤 날은 조금 붐비는 카페 안에서, 또 어떤 날은 바람이 선선한 야외 테라스에서 노트북 하나 펼쳐 놓고 여유롭게 작업하는 내 모습을. 작업하고 싶을 때 하고, 놀고 싶을 때 노는 그 로망을. 실상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생각했던 여유로움은 착수 초기 하루이틀만 존재했고, 남은 보름정도는 대부분 공유 오피스에서 치열하게 보내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다.
작업 기간 중에는 시간이 마치 양쪽으로 팽팽하게 당겨진 실처럼 빠르고 예민하게 지나간다. 누가 닦달하는 사람도 없으니 스스로 할당량을 정하고, 시간 배분을 해야 한다. 포스트잇에 해야 할일과 시간표를 수시로 체크하며 작업하는 데도 늘 쫓기는 기분이다. 하루 하루가 아쉽고, 아깝다. 그렇게 팽팽하게 당겨진 실은 프로젝트가 끝나면서 다시 흐물해 진다. 바로 다음날부터 침대에서 일어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백지가 된다. 뭘 해야 할까. 매일 매일이 심심하다.
심심하다는 것만 빼면 좋은 점도 있다. 당근마켓 거래 할 때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언제든 가능합니다”라고 답 해줄 수 있고, 평일날 바쁜 언니 대신 사랑하는 조카들을 돌봐 줄 수도 있다. 은행과 우체국 가는 길도 부담이 없다. 그 외에 남은 시간은……간식거리를 사와 넷플릭스 영화나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게 전부다. 회사 다닐 때는 이런 여유를 꿈 꿨지만 사실 이것은 여유도 뭣도 아니다. 그저 시간을 ‘소비’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일을 할 때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과 다른 결로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매일 같이 2-3시쯤 방문하며 친해진 카페 사장님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볼까 싶기도 하다. 드럽게 할일도 없나보네. 그런 시선으로 보지는 않을까 하는 괜한 예민함은 스스로가 시간들을 그저 흘려 보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거다.
그동안 회사가, 일이라는 것이 내 삶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이제 조금씩 그 빈 구멍을 들여다 보는 과정은 참 쓸쓸하다. 프리랜서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그 구멍을 나를 위한 시간으로 메꾸겠다는 선언이었다. 불균형을 균형으로 맞추겠다는 결심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 결심을 잘 이행하고 있는가 라는 물음을 가끔 던진다.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에 나의 대부분을 맡기며 살아온 날들이 많다. 올해의 목표, 인생의 계획까지. 변변한 취미생활 하나, 즐길거리 하나 못찾은 내가 그냥 바보다. 다음 프로젝트가 들어올 때까지 체력을 축적 해 놓는다는 이유로 풀어진 실마냥 늘어진 하루를 보면 그렇다. 일주일에 2번 필라테스를 배우고, 브런치를 시작했는데도 잘 모르겠다. 뭘 더하면 좋을까. 나를 위해 무엇을 더 배우고, 실행하면 좋을까. 나를 더 알아가려는 노력은 하고 있는가. 답을 찾는 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퇴사 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엄마가 자주보는 TV프로그램들을 나도 좋아하게 됐다. 주로 KBS1 채널인데 광고도 많지 않은 이 채널을 보다 보면 빼곡한 구성에 감탄한다. 1분 1초를 허투루 쓰지 않는다. 드라마, 다큐멘터리 사이의 빈틈을 공익적 메시지들로 꽉꽉 채워 송출한다. 시간은 이렇게 쓰는 거라고 알려주는 것 같다. 반성하게 된다. 돈벌기, 육아, 꿈의 실현, 연애...자신만의 카테고리들로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한발씩 나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에 비해 심심하다는 말을 내뱉는 나는 얼마나 한심한가. 프리한 삶을 살려면 앞으로 나는 더 ‘계획적인’ 삶을 배워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