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좋지 않아 오늘은 수업을 들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일주일에 두 번 있는 필라테스를 취소했다. 비도 오고 몸도 무겁다는 핑계를 댔다. 이렇게 당일 갑작스럽게 취소하면 1회분이 차감된다. 7만원을 메시지 하나로 날린 셈이다. 사실 몸살이 왔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전일부터 부글대는 뱃속 때문에 도저히 버스 6정거장 거리를 넘어갈 자신이 없어져서였다. 있는 그대로 말하기는 조금 부끄러웠다. 그게 뭐라고.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위장이 예민해지곤 한다. 시도 때도 없이 끓어오르는 내 안의 그 놈들 때문에 외출이 망설여진다. 당장이라도 신호가 오면 달려갈 수 있는 화장실이 근거리에 있어야 하므로 활동 반경도 자연스럽게 좁아진다. 프리랜서가 되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가끔 그런 하루들을 경험한다.
필라테스를 취소하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6정거장 내에는 공용화장실이 많은 대형 쇼핑몰과 지하철역이 있다. 필라테스 센터 내에도 깨끗한 화장실이 있다. 1:1 수업이니 급하면 급한대로 잠깐 양해를 구하고 다녀와도 될 일이다. 1년 가까이 함께 해 온 강사가 누구나 하루에 한번은 경험하는 현상들을 이해 못할 사람도 아니다. 적어도 출발 전 약이라도 챙겨 먹는 노력은 했어야 했다. 점점 일정을 망친 것이 분해진다. 화장실이 내 하루를 지배하고 있다니.
사람은 그게 무엇이든 목적을 둔 대로 움직이게 되는 듯 하다. 오늘의 중심을 화장실에 두면 모든 일과는 화장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허벅지에 근육을 깨우겠다는 의지에 중심을 두면 화장실은 그저 일상적인 단순한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중심을 작은 것에 두면, 작은 일 밖에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매일은 똑같아진다. 그리고 나는 점점 소심해 진다. 이유는 뻔하다. 목적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너무 작은 것에만 핀을 꽂고 시계바늘을 돌릴 때가 많았다. 회사 상사가 아침 인사를 무시하는 날엔 그날 하루는 상사의 기분에 핀을 꽂았다. 지난 PT의 등수가 낮았다면, 다음 PT때는 1등이 되기 위해서가 아닌 꼴등이 되지 않기 위한 기획안을 썼다. 일상이 지루해지면 내 삶을 풍성하게 할 무언가를 찾기 보다 당장이 외로워 영양가 없는 약속들을 잡기도 했다. 그러니 발전 없는 시간 속에서 나도 점점 작아질 수 밖에.
만약 그때, 상사가 아닌 프로젝트를 원활하게 진행하는 것에 기준을 두었다면 어땠을까. 차 한잔 하자고 제안하며, 그에게 가지고 있었던 오해를 푸는 것은 썩 어렵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실패도 할 수도 있고, 가끔은 사람이 외로울 수도 있다는 것을 그냥 인정하고 가볍게 털어버렸다면. 문제라는 것은 그렇게 해결 했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작은 것들이 지배하는 나는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곤 했다. 두려움과 소소한 것만을 기준으로 움직이면 삶은 아무일도 없이 느리게 흘러갈 수 밖에 없음을 요즘 들어 다시 깨닫는다.
여전히 성나 있는 위장들을 데리고 엊그제 다시 필라테스 수업을 들었다. 집에서 출발 전, 나는 마음 속으로 외쳤다. 작은 것에 중심을 두지 말자. 두려움이 내 하루를 지배하게 하지 말자. 심리적인 요인이 몸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은 맞는 듯 하다. 이 주문이 완벽하게 먹혀들었다. 위장은 조금씩 잠잠해졌다.
“오늘 컨디션 좋아 보이시네요. 생기가 넘쳐요”
강사의 우연한 칭찬이 듣기 좋다. 이렇게 소심함을 이겨내는 또 하나의 방법을 찾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