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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엘 Feb 21. 2024

병원에서 마주친 따스함

젊은 팔십


"요즘 사람들은 배려가 없어요."

목소리는 누구를 탓하거나 속상해하는 것 같지 않고 덤덤했다. 


"그러게요. 전에는 서로들 배려하고 양보하고 했었는데요."

맞짱구치는 목소리도 매한가지였다. 


한참을 서 있다가 자리가 나서 앉았는지, 할머니 두 명이 앉으면서 넋두리를 한다. 하지만 화를 내는 것도 낙담하는 것도 아닌 덤덤한 목소리였다. 


오히려 내가 내심 놀란 것은 그들의 말에 '옛날에는'이란 표현이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비슷한 말인데도 '내가 젊었을 때에는'이라거나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라는 말이 나오면 '내 세대'와 '젊은 세대'를 구분해서 대립시키는 느낌이 강한데, '전에는' 안 그랬었다고 하니 과 심하게 훈계하려 들지 않는 태도였다. 


"젊어 보이시는데, 몇이세요?"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던 할머니가 다른 할머니에게 물었다.


"팔십이예요."

"아유, 젊으시네요."


내 귀를 의심했다. 두 목소리 모두 수더분한 성격을 드러냈지만 누구 하나 팔십 넘은 노인이라는 느낌 없이 팽팽했는데, 한 할머니는 자기 나이가 팔심이라 하고 다른 분은 그분이 젊다고 감탄을 하다니.


사십도 열이 며칠째 내리지 않는 첫째 아이의 심한 목감기로 결국 대학병원 이비인후과를 찾은 것은 맞지만, 이리도 다정하고 젊은 할머니들이 만나자마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들으니 여기가 심각한 사람들이 주로 찾는 상급병원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왠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내 옆에 앉은 할머니가 분명히 나이가 더 많다고 했는데, 하고 생각하며 그 뒤로 꺾인 복도 쪽 의자에 걸터앉은 할머니 얼굴을 슬쩍 쳐다보았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를 무릅쓰고 오느라 검은색 패딩과 목도리에 둘러싸인 얼굴은 부드러운 목소리와는 달리 굵은 주름이 이리저리 파여 그간의 인생이 녹록지 않았을 것 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나이 듦


"그래, 여긴 뭐 하러 오셨어요?"

나이가 더 많다고는 했지만 내게 등을 보이고 옆으로 앉은 할머니는 하대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보청기. 보청기를 했는데, 오래 돼가지고 손보러 왔어요."

"아, 나도 보청기 때문에 왔는데. 똑같네요. 전 양쪽 다 했어요."


"저도 그래요. 잘 안 들리면 보청기 하는 게 나아요. 빨리 못 알아들으면 자꾸 물어봐야 하고 소리가 커지고, 서로 힘들어요."

"그렇죠. 나는 귀만 좀 잘 안 들리지, 다른 데는 아픈 거 없어요."

"다행이시네요. 저도 보청기만 했어요."


할머니들은 대학병원에서 마주친 사이여도, 모두 큰 병 없이 건강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서로 다독였다.


"저는 비싼 거 했어요. 350만 원. 한쪽에. 애들이 그냥 좋은 거 하라고 해서 350만 원씩, 양쪽에 700만 원 들었어요."

"그러셨구나. 저는 한 지 좀 됐어요. 옛날에 해가지고 좀 비싸요. 한쪽에 750만 원."


"허어!"

저쪽 할머니가 놀라는 소리가 들린다.


"양쪽에 천오백만 원. 그때는 그랬어요. 그때는. 그땐 그랬어요. 비쌌어요. 여기서 한 건 아니고." 

보청기를 끼기 시작한 게 꽤 오래된 것이 비싼 돈을 주고 한 것보다 더 속상하다는 투다. 잔잔한 목소리에 '그때'를 여러 번 강조한다. 


세상에, 보청기 하나에 수백만 원에서 천만 원이 넘는 큰돈이 들어간다니, 잘 들리는 것이 얼마나 값비싼 축복인가 싶다. 이 할머니들처럼 젊었을 때 이어폰으로 혹사시키지 않아도 늙어지고 닳아질 청력을 지금 젊은 세대들은 함부로 낭비하고 있다. 


이후로도 할머니들은 보청기 건전지를 갈 수 있는 곳들에 대한 정보를 나누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병원 도우미


아이 차례가 되었는지 둘러보다 보니 다른 편에는 중년 남자가 노인 한 명을 모시고 와서 비어있는 의자에 앉으시라고 한다. 서류를 들고 확인을 하고 말을 하는 투를 봐서 가족이 아니라 병원 방문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우미인 것 같다. 


이 할아버지도 귀가 잘 안 들려서 오신 건지, 도우미 아저씨는 무슨 말을 할 때마다 할아버지 귀 가까이에 대고 크고 또박또박 말하려고 애썼다. 


차례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가는 할아버지는 움직임도 조금 어색했다. 아마도 혼자 오기는 어려운데 가족이 같이 오기는 여의치 않았나 보다. 오래지 않아 복도로 나온 할아버지는 다시 자리에 앉고, 따라 나온 간호사가 도우미 아저씨에게 검사와 수납 등 이후에 할 일을 설명해 준다. 


도우미 아저씨는 많이 해 봤는지, 서두르는 기색도 없고, 할아버지가 잘 못 알아듣는다고 짜증스러운 기색도 없다. 지나친 친절함으로 불편하게 하지도 않는다. 


저쪽 구석에는 외국인 가족이 앉아있었다. 아이가 아픈 건지 어린 남자아이와 부모로 보이는 사람들이 같이 앉아 있었다. 여기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것처럼 편안하게 차례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드디어 아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굳이 반대쪽으로 두어 걸음 갔다가 아이가 가야 하는 진료실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내 옆자리에서 왼쪽으로 몸을 틀어 등을 보이고 앉았던 할머니 얼굴이 궁금해서였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슬쩍 본 할머니의 모습은 말소리만큼이나 얼굴이 곱고 팔십 넘은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꽤나 건강해 보였다. 


두 할머니는 여전히 급할 것 없다는 투로 여유 있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대학병원에서는 동선이 길고 복잡해서 진료 보고, 검사하고, 다음번 진료 예약하고, 수납하고 하려면 노인들이나 외국인들이 혼자서 일 보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집에서 멀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오가는 교통편이 불편할 수도 있다. 


그래도 좀 더 정확하게 검사하고 좀 더 확실하게 치료받기 위해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 온다.


작은 바람과 소심한 다짐


이들이 모두 일 잘 보고, 마음 아픈 일 없이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본다. 우리 아이의 그저 심한 감기처럼, 지금은 많이 아파도 꼭 이겨낼 수 있는 고통이기를. 또 저 할머니들의 난청처럼, 쉽게 나아지지는 않더라도 그 상태에서도 지혜롭게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이 찾아지기를.


그리고 주변에 자리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내가 기꺼이 자리를 내줄 수 있게 되기를, 그것을 제 때에 눈치챌 수 있게 되기를 또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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