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엘 Feb 18. 2024

결혼식과 결혼생활

예전 상사의 딸 결혼식에 갔다. 이미 퇴직한 회사에서 같이 일했던 상사이긴 하지만, 워낙 성품과 성과가 감동스러운 분인 데다, 아직까지도 가끔 안부를 묻는 사이여서 일부러 가서 축하를 전했다. 


결혼을 하는 딸은 미국에서 유학한 후 눌러앉았다가 직장에서 만난 미국인 동료와 사귀다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좀 일찍 가서 인사하고 차를 한잔 마시려고 동료들과 식당 한 켠에 자리를 잡았다. 


아직 식이 시작되기 전이어서 리셉션홀에서는 양쪽으로 드리워진 커다란 스크린에 얼마 전에 미국에서 가진 결혼식 동영상을 틀어주고 있었다. 양가에서 초대할 손님들을 한쪽으로 몰아서 부르기가 어려우니 아예 예식을 미국과 한국에서 두 번 하는 거였다. 


동영상에는 아까 신부대기실 앞에서 상사에게 인사하면서 살짝 봤던 신부가 미국에서 있었던 결혼식 중 신랑의 “Yes!”에 신나서 방방 뛰는 모습, 친구들과 함께 커플끼리 춤추는 모습, 가족과 친구들이 축하하며 포옹하는 장면 등이 보였다. 손님들이 대부분 서양인이고 장소도 미국이어서 예식의 분위기도 완전 미국식이었는데, 무엇보다 신랑 신부가 밝고 이벤트의 주인공으로 보여서 좋았다. 


내가 갔던 결혼식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결혼식이 생각났다. 십여 년 전 직장 후배였는데, 주례가 없었고 대신 다양한 코너의 이벤트가 있었다. 신랑 신부가 어렸을 때부터 최근까지 각자 찍은 사진부터 사귀면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짜깁기하고, 거기에 위트 넘치는 방식으로 서로를 소개하는 멘트가 입혀져 있었다. 보는 내내 신랑 신부는 물론이고 하객들도 빵빵 터지는 웃음 포인트들이 있었다. 


신부의 아버지가 축사를 했고, 신랑 친구들이 축하의 말과 축가를 했다. 부모 입장에서, 친구들 입장에서 이 둘이 마치 이 결혼을 위해 그동안 각자 열심히 살아왔던 것처럼, 이 둘이 운명적으로 만나 결혼을 하게 된 필연에 대해 확신에 차서 증인이 되어 주었다. 결혼으로 두 사람이 맺어진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깊은 감동에 눈물이 났다가도 한 번씩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푸는 바람에 배꼽을 잡고 웃게 만든 결혼식이었다.


신랑 신부 중 한쪽만 알거나, 그들의 부모 중 한 명을 알고 온 하객들에게 두 사람을 소개하는 멋진 방식이었고, 진심으로 그들을 축복해 주게 되는 들뜨고도 감동적인 분위기였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런 절차를 거치고 나면 결혼의 다음 단계는 현실과의 줄다리기이다. 현실. 냉정한 현실.

결혼식에서 하객들의 웃음보를 터지게 했던 그 커플은, 정말 의외였는데, 몇 년 후 이혼을 했다. 무슨 일이었든 간에 냉정한 현실의 어떤 부분에선가 부딪혔고, 같이 해결하는 것보다는 각자 해결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이 나왔을 테지.


어제 만난 동료들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한 동료는 남편이 이제는 좀 짠 해 보인다고 했다. 이혼도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고. 결혼한 지 25년 된 이 친구는 첫째 아들은 대학생, 늦둥이 둘째 아들은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인데, 남편은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지 오래되었고, 뭔가 사업을 해 보겠다고 별다른 소득 없이 궁싯거린 지도 여러 해가 되었다. 회사 일이 힘들어도 어떻게든 좀 더 다녀야 한다고 하는 이 친구는 그사이 자기도 나이가 들었고 주름이 늘었지만, 남편도 나이 들어 보이고 머리숱도 성성해져서, 옆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짠하다고 한다. 


옆에 있던 다른 동료는 자기는 아내랑 한창 싸우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젠 웬만해선 안 싸운다고 한다. 아내가 뭘 힘들어하는지 자꾸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결혼 초기에나 사랑으로 뭐든 극복한다고 하지, 나중에는 책임감과 노력으로 살아가는 것 아니냐는 거였다. 


“어차피 도파민은 처음 3년만 나와요. 그리고 아직도 도파민이 자꾸 나오면 심장에 나빠요.” 라며 너스레를 떤다. 


귀여운 막내 동생 같은 인상에 누가 끼어들지 않으면 혼자서 하루 종일도 쉬지 않고 떠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이 친구도 결혼 24년 차란다. 회사일로 아무리 바빠도 일정을 정해 놓고, 아내와 둘이 식사를 하거나 친한 친구 부부와 동반으로 어디 놀러 가는 일정을 자꾸 만든다고 한다. 의도적으로 뭔가 같이 하지 않으면 서로에 대해 잘 모르게 되고, 멀어지게 되는 것 같다고.


“요즘은 외국인이랑 결혼하는 것도 많아진 것 같고, 자기랑 잘 맞으면 그런 건 별로 신경 안 쓰는 것 같아요. 전무님은 영어로 대화해야 하니까 좀 부담스러우실 수 있겠지만. 하하.”


“요즘은 그런대요. 나이도 인종도 상관없고, 동성만 아니면 된다고.”


“하하하”


다 같이 웃었다. 


오늘 결혼하는 이 커플, 되게 잘 어울린다. 서로 맞춰가고 배려하면서, 오래도록 건강하고 즐겁게 잘 살기를 기원한다. 


작가의 이전글 할아버지의 선물상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