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병원 별관 지하 연구실에는 여자 연구원들만 가득했다.
그 연구실에는 3개의 유닛이 있었는데, 큰 방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 유닛은 소화기암을 담당하고 있었다. 20대 초. 중반의 여자들이 가득한 그곳에 한 달에 두어 번씩, 오후 3시~4시쯤이면 정장을 입은 제약사 영업사원이 찾아왔었는데, 출출한 시간을 어떻게 알았는지 꼭 그 시간에 기가 막힌 냄새를 풍기며 포테이토피자를 들고 오셨다.
유럽 A제약사 영업 본부 대리님과 사원이다.
늘 가장 큰 사이즈의 피자와 콜라를 두 손 무겁게 들고 한 여름에도 땀을 흘리면서도 정장을 꼭 입고 오셨다. 번득거리는 은갈치 빛깔 양복을 입은 대리님은 마치 영업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능글맞은 웃음으로 다가와 그동안 잘 지내셨냐며 슬쩍 묻는다.
"선생님 보실 때 진료실에서 요새 교수님들 우리 약 얼마나 처방하시던가요?"
연구 대상자의 진료 시간이면 우리가 직접 진료실에 들어가 처방을 내고 교수님과 연구계획서 내용을 논의하곤 했기에, 진료실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교수님을 뵈러 온 그들은 진료실을 들렀다가 우리 연구실도 꼭 들러가곤 했다.
부리부리하게 큰 눈이 유난히 더 튀어나와 보이던 그분은 늘 땀을 뻘뻘 흘리며 말을 했었다.
넥타이까지 꼭 매고 오셔서 휴게실 냉장고에 있는 음료수를 건네드리곤 했다.
어쩜 그렇게 그 양복만 입고 오시는지, 우리들끼리는 '은갈치 아저씨'로 통했다.
오전 진료 때 환자를 만나러 진료실을 갔다가 마주한 그분은 정말 불쌍했다.
진료실 앞에서 누가 나올 때마다 그는 허리를 굽혀 인사했고, 교수님이 모습을 보이면 문틈 사이로 오늘의 용건을 조심스레 내비쳤다. 들어오라는 허락이 떨어지면 그제야 들어가 이야기를 나눴고, 허락이 없으면 오전 진료가 끝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다. 운이 좋은 날에는 교수님과 점심을 함께했지만, 대부분의 날은 오전부터 오후까지 내내 대기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때로는 교수님이 다음 일정을 향해 이동하는 짧은 거리 동안, 미리 준비해 온 내용을 허겁지겁 전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느껴질 땐 우리를 찾아와,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기 위해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는 듯했다.
그날도 교수님 만나고 인사드리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서류가방을 하나 들고 진료실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대한민국의 제약사 영업맨들.
진료를 마치고 진이 빠진 교수님이 흥미 없는 듯한 표정으로 의자를 눕힌 채로 이야기 듣는 경우도 있고, 왜 약속도 없이 찾아왔냐고 고성을 지르는 분들도 계셨다.
어떤 날은 진료실에 들어가 약을 써 주십사 이야기 나누는 기회가 있었고
어떤 날은 크게 잘못한 게 없는데도 죄송하다며 90도로 허리를 굽신거리며 진료실 문밖에서 쫓겨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괜히 눈이 마주치면 서로 민망해서 피하곤 했는데, 그런 모습을 볼 때면 그 교수님께는 온갖 정이 다 떨어졌다. 속으로는 '의사면 다야? 뭐가 잘나서 사람을 이렇게 대하나?' 하는 분노도 일었다.
왜 저렇게 사람을 무안하게 대할까? 친절하면 어디가 덧나나?
우리는 아무 힘이 없지만 우리에게 잘 보여서 교수님께 영향이 가도록 바라는 간절한 눈빛으로 하는 질문, 교수님께 우리 약 좀 써달라고 해주세요.
목표는 그것뿐이다.
언젠가 연구자 모임 중에 그 제약사가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에서 그 대리님과 이야기 나눈 적이 있는데, 아기 사진을 보여 주며 이제 몇 개월 안된 아들을 자랑하셨다.
가장이라서, 아들과 아내를 위해서 지금 이 순간을 견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매번 똑같은 반짝거리는 은갈치 정장이며, 눈도 능글능글해서 징그러워 싫다고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S센터를 퇴사하고 회사에서 그 제약사 연구를 하게 되었는데,
그 대리님이 아직 남아 계신 줄은 전혀 몰랐는데 어느 날 그분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렇게 병원 영업을 6년을 버틴 후로 승승장구 승진하고 비싼 동네에다 집도 사고 차도 사고 했더란다.
남들이 보기엔 굴욕이요 비참한 세월이었을 테지만, 마치 자존심 없는 이처럼 견디더니 결국은 그 정장처럼 빛나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는 영업 왕에 대한 소문.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고 너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어디에서 만나도 늘 환하게 웃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민망하고 자존심 상할 만도 한데 얼굴 한번 찡그린 적이 없는 그분은 진정한 승자였던 것이다.
우리끼리는 은갈치라고 불렀지만, 그러든지 말든지 목표가 있던 그는 자존심 내세우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고 시간낭비, 에너지 낭비라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었다.
은갈치, 그는 진정 자존심을 지켜낸 승자였다.
자존심은 내세우는 게 아니고 스스로 지켜내는 것임을 보여준 멋진 영업사원.
그 때로부터 18년이 흐른 지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리만브라더스 사태 때도 끄떡없던 철밥통 R&D 업계가 풍전등화다.
"지금 본부가 실적이 너무 저조해요."
"글로벌팀 꾸리는 건 고사하고 국내사 수주 경쟁도 너무 치열합니다."
"당장 있는 인력부터 줄여야 할 판이에요."
"이전에 안 해본 연구 하셔야 할 겁니다. 영업을 나가셔야 할지도 모르고요."
"월 매출 X천만 원 넘지 않으면 모두 연봉 책정 다시 합니다."
글로벌 과제를 수주하기 위해서 밤낮으로 필요한 부서 미팅에 부를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태도가 돌변하다니.
회사는 원래 필요하면 삼키고 아니면 내뱉는 자본주의 생물이라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는 눈치도 빠삭하지만,
내 입장이 가정의 생계를 위해서 참아야 하는 것임을 머리는 안다.
하지만, 마음이 동의하지 않는다.
초심은 지키기가 왜 이리 어려울까?
합격만 하면 정말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입사하기만 하면 시키는 일은 뭐든 하리라 마음먹었었는데,
정년까지 이곳에서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경력과 지식을 다 쏟고 싶었는데
마라톤에 참가할 거라며 러닝크루에 끼워주기만 하면 매일 나가서 달리겠다 다짐했었는데,
에어프라이기만 생기면 배달시키지 않고 집에서 만들어 먹일 거라고 사주기만 해 했었는데
바라는 바를 이루면 사라지는 나의 초심이여 너는 어찌 된 것이냐. 나는 어쩌란 말이냐.
은갈치 형님, 오늘따라 생각난다.
어둠 속에서도, 당신은 한때 불꽃이었음을 잊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