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커먼 먹구름이 날 가린다.

곧 비가 내리겠지

by 아궁이

하늘을 좋아한다.


하늘을 도화지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 신께 감사 편지를 써도 부족하다는 찬송가의 가사를 좋아한다.

거대하게 펼쳐진 도화지 같은 하늘에 많은 편지들을 써 올려 보내봤다.

살면서 속상할 때도 믿을 수 없을 만큼 기쁜 날에도 확 트인 공간을 찾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바쁜 일상에 살다 보면 하늘이 있는 줄도 하늘에 별이 떠있는 것도 잊은 채 산다.

서울의 하늘은 빌딩 사이 틈새로만 보이니 틈새 하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팍팍한 인생살이에 고개 들어 보면 늘 드넓은 하늘이 펼쳐져 있다는 사실만으로 좋다.


한 번씩 출장을 떠날 때면 비행기 창가자리에 앉아 드넓은 하늘 구경을 마음껏 하는데,

폭신폭신해 보이는 구름이 카펫처럼 깔려 있고 높아만 보이던 태양이 어느덧 눈높이에 와 있는 순간은 정말 짜릿하다.

앞에 펼쳐진 하늘은 푸르기만 한데, 조금 내려다보면 시커먼 먹구름이 깔려 있을 때도 있다.


두 하늘의 공존.


땅에서 바라보는 하늘과 더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하늘이 이렇게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한 치 앞을 모르는 내 인생 같단 생각을 했었다.

어두컴컴한 하늘 아래 장대비를 맞고 서있을 때, 기억할 것은 그 하늘 너머에 파란 하늘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일 테지만, 당장 나를 뒤덮은 그 컴컴함에 압도되어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다른 이유는 없지만, 나는 먹구름 낀 하늘, 비를 가득 머금은 무거운 하늘을 좋아한다.

시커먼 아주아주 컴컴한 먹구름이 껴있다가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비를 맞던지 집에서 후드득 이어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엎드려 책을 읽던지

그런 때 마음이 차분해지고 고요해지는 그 기분이 참 좋다.


내 고향 엄마 뱃속이 컴컴했어서 그런 건가?

평소 방방 떠 있는 기질이 그런 날 휴식할 수 있어서 그런가?




40대 나는, 여전히 직장인이고 엄마면서 아내다.


오늘 문득 나 자신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 못하는 기름 한 방울 같았다.

아무리 휘젓고 으깨어 섞으려 해도, 다시 제 모양을 찾아 뽈록 튀어나와 막을 만들고, 물에 스며들지 않고 그 위에 둥둥 떠버리는 기름.


직장인이 된 지 22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흔들리는 나 자신을 보며

세월이 오래 흐르고 나이가 들었다고 닥치는 상황마다 성숙한 대처가 늘 가능한 것은 아님을 배운다.


큰 아이가 학교에서 힘들어하던 시절, 함께 자주 듣던 노래를 듣다가 꺼이꺼이 울어버렸다.


시간보다 더 빠른 세상에서

친구보다 앞서라는 세상에서

누구보다 천천히 걸어가는

한 걸음 느린 아이


꽃향기 맡아보고 밤하늘에 별 쳐다보고

친구얘길 들어주고

가끔씩 뒤도 돌아보는 조금 느리게 가는 아이


마음은 커다란 아이

저길 끝에 보이는 꿈 따라가면

느린 걸음걸음마다

반짝반짝 환하게 빛이 난다.


조금 느린 아이 | 윤학준 곡


우리 본부 이번 달 실적이 너무 좋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며

내가 3개월 전 남편을 따라 너무 먼 거리로 이사를 왔기로 매일 출근할 수 없다는 점과 함께

정리해고 대상이 된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그럼 뭐든 열심히 할 테니 보직을 변경해서라도 회사에 남겠다고 어필하며 사정할 수도 있을 텐데, 난 그저 '그렇군요.'라고 했다.

회사에서 하고자 한 일이 있었다면, 스며들고 버무려져서 어떻게든 함께 있겠다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나 자신이 무능하게 느껴졌다.


'존버 자질 부족! 자네는 탈락일세.' 그렇게 탈락될 것 같은 기분.


이 조직에는 내가 꼭 필요한 존재인 것은 맞으나, 돈을 당장 벌어들이지 못하는 투자 인사였던 사실이 서운한 것일까?

그럴 리 없다고 그러면 회사가 손해일 텐데 하는 자신만만했던 내 마음이 세게 한 대 맞는 것 같은 통증일까? '너를 대체할 인력은 많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력감이 시커먼 먹구름처럼 나를 덮쳤다.


그 옛날 <직장의 신>이라는 드라마 속 김혜수가 외쳤듯이, 회사는 나를, 나는 회사를 필요에 따라 이용하는 계약관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상황에서 내 필요에 따라 회사를 이용하겠다는 이성적인 생각은 전혀 못하고,

회사의 힘든 사정을 되려 이해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 결정은 합리적인 것이라고 순응하는 나 자신이 너무 싫다.

왜 나는 회사를 상대로 인격적인 관계를 기대할까? 적당한 선 그게 왜 이날 이때껏 잘 안되는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이윤을 빠른 시간 안에 남기지 못하면 대가를 치르는 혹독하고도 잔인한 자본주의 세상에 살면서 말이다.


나는 기질을 거슬러 존버할 수 있을까?

어떻게든 남겠다 말할 수 있을까?


시커먼 하늘 위는 분명 푸르고 깨끗한 하늘이다.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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