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전하는 우정

너를 사랑하는

by 아궁이

멋진 신세계가 오긴 오나 보다.


각국이 쏘아 올리는 위성은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고,

지구 반대편의 소식은 실시간으로 손바닥 위 화면에 스며든다.

인간은 달의 표면에 그치지 않고 남극에 살아볼 준비를 한다.

과학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어떤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를 디지털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전기 자극을 받는 뇌세포를 배양하고, 가상 환경에서 훈련시켜 원하는 행동을 하도록 설계한다는 것이다.

보상을 주고, 실패하면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그 세포는 결국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고도로 발전하는 과학과 함께 우리는 어디까지 가게 될까.

기술은 쉼 없이 자란다.
어제의 지식은 오늘 낡아지고, 내일의 기준은 또다시 바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간의 마음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런데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 걸까?


이렇게 인간이 신이 되는 것인가?할 정도로 과학과 기술은 발전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 충격뉴스는 연일 쏟아진다.


폭력은 더 잔인해지고,

사람들은 서로 분노를 참지 않으며

자기보다 더 약한 사람을 향해 거침없이 폭력을 행사한다.


남자가 여자를,

사장이 직원을,

선배가 후배를,

청년이 노인을,

어른이 아이를...


예전에는 보호하고 대변하고 지켜주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이 모두 깨져버린 듯하다.

매일 우리가 안심하고 있던 기준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된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인간의 역사에는 늘 폭력과 잔혹함이 존재했고 악함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전쟁과 억압, 차별과 배제는 특정한 시대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세상이 악해지는 것은 죄가 더 많아져서가 아니라 우리가 선을 더 행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무엇이 인간다움인지 끊임없이 묻고,
그 기준을 조금씩 세워왔다.

폭력과 잔혹함을 인간성의 상실이라 부르고,
그것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도 그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변화일 것이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이었다.


세상이 더 악해진 것처럼 느껴질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는 여전히 앞으로 가고 있는 걸까,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


타인보다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을 중심에 두고, 그것밖에 있는 존재를 쉽게 밀어내는 태도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인지, 아니면 우리가 놓쳐버린 무엇 때문인지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선을 선택하는 일에 점점 더 무뎌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는 사실이다.




딸의 친구 이야기


첫째가 초등학교 입학 후 무리에 끼지 못해 외로움을 호소하던 때, 짠 하고 나타난 친구가 있다.

그 아이가 바로 첫째의 가장 친한 친구 K이다.


눈코입이 작고 오밀조밀 귀여운 아이는 세상 그 어떤 차가움도 단숨에 녹일만한 사랑스럽고 따스한 눈웃음을 가졌다. 어른에게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하는 예의 바른 아이다.

그리고 그 작은 아이는 자신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엄마를 늘 걱정하며 그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다.


K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서울의 우리 동네로 이사를 왔다.

외가에서 엄마와 함께 지내던 아이는 처음 보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빠는 먼 나라에 돈 벌러 갔어요."

그 말이 어찌나 또박또박하고 담담하던지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저려왔다.

저 작은 아이가 얼마나 아빠를 그리워할까 싶어서였다.


K는 고학년이 되서야, 엄마의 남자친구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이혼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추운 겨울에도 얇은 옷차림으로 여러 학원을 혼자 오가던 모습이 마음에 걸려
“학원 끝나고 우리 집에서 저녁 먹고 갈래?” 하고 물으면 아이는 늘 이렇게 말했다.

“엄마 혼자 일하시니까 걱정 끼치면 안 돼요. 저 혼자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씩씩하게 인사하고 돌아섰다.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은 것도 딱 한 번뿐이었다.

아이에게는 엄마와의 약속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이다.




늘날 아이들의 삶을 떠올리면 자꾸 어른들의 얼굴이 함께 떠오른다.

아이들이 흔들릴 때, 그 곁에 서 있어야 할 사람들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한 것은 아닐까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먹고사는 일이 버겁다는 이유로 아이를 충분히 돌보지 못했던 순간들,
그 시간들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남았을지 쉽게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남의 이야기처럼 말하기가 어렵다.


나 역시 부부싸움을 반복하며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위태롭게 지나왔기 때문이다.

이혼을 했다고 해서 어떤 삶이 실패라고 말할 수 없고,
이혼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관계가 온전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가정의 형태만으로

그 안의 사랑과 책임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일에 여전히 서툰 존재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는 많은 것을 이루어낸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관계 안에서는 자주 길을 잃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모가 부모의 자리를 지키고,
어른이 어른의 역할을 다하는 일.

그 단순한 문장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마음을 무겁게 한다.




아이야, 상처를 딛고 일어서거라


초등학교 졸업식 날,

엄마를 찾으며 계속 뒤돌아보던 K가 떠오른다.

멀리서 지켜보던 나도 아이엄마가 빨리 오기를 바랐던 시간이었다.

졸업식 내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아이는 끝마칠 무렵 환하게 웃으며 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늦게 도착한 엄마가 빈손으로 왔음에도
아이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엄마 품에 안겼다.

그 모습이 참 사랑스럽고, 또 다행스러웠다.


두 아이가 함께 사진 찍은 후엔 꽃다발을 그 엄마에게 건네주고 두 모녀를 사진 찍어 주었다.

나도 K를 꼭 안아주며 졸업을 축하했다.


중학교는 서로 다른 학교를 갔지만, 아이들은 종종 만나 시간을 가지며 우정을 다졌다.

한 학기를 마치고 우리는 캐나다로 떠나왔는데 그 아이의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최근, K가 동급생 두 명에게 지속적으로 학교폭력을 당했단다.

늦은 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첫째가 안방에 뛰어들어와서

"엄마, 엄마. K가 학폭을 당했대." 하며 들려준 이야기로는

몇 달 동안 그 동급생에게 머리채를 잡혀 화장실로 끌려갔고 고통스러운 폭력을 당했다고 한다.

듣는 내내 심장이 벌렁거렸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을 K를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 가해자 중 한 명은 첫째도 기억하고 있는 초등학교 동창이란다.

한 명이 먼저 머리채를 잡고 흔들며 다른 한 명에게 "야, 넌 왜 아무것도 안 해?"라며 폭력을 부추기면, 머뭇거리던 초등 동창 녀석도 뒤질세라 가담했다고 한다.


K는 지금 가만히 있어도 머리가 아프고 머리카락은 계속 빠진다며 첫째에게 하소연을 했단다.

그런 아이가 첫째에게 억울하다며 호소한 것은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렸고

엄마가 와서 자기가 얼마나 아픈지를 설명했는데도,

자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는 것과

그 결과 가해학생들은 고작 봉사 1일이라는 징계를 받았단다.

그 말을 들으니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몰려왔다.


첫째를 부추겨 전화를 해보았다.

예전에 발랄했던 목소리가 많이 다운되어 힘이 없었다.

나는 일부러 더 밝게, 더 크게 말했다.


아줌마가 다 화가 난다. 그런 못된 놈들이 있나

K야 얼마나 아팠니, 정말 속상했겠다.

서울에 있었으면 당장에 쫓아가서 혼내줬을 텐데..... 나쁜 놈들 다 벌 받을 거야.

K야, 지금 겪은 일들로 몸과 마음이 힘들겠지만 힘내야 돼. 알았지?

네가 자신을 더 아껴주고 응원하고 더 사랑해야 해.

왜냐면 넌 정말 소중하고 귀한 존재야.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해.


말하는 내내 목이 매여 혼났다.


첫째도 옆에서 화가 난다고 소리를 지르며 곁들었다.

말을 마치고는 첫째에게 폰을 건넸다.

"야, 너네 엄마 목소리 들으니까 눈물 난다."

"우리 엄마랑 나랑 엄청 화가 났어. 나도 너 아픈 것 생각하니 눈물 나. 내가 그것들을 진짜."

"아니야. 이렇게 응원해 주고 기도해준다고 한 것 만으로 고마워."

두 아이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캐나다로 와. 너무 힘들면 내가 여기 있으니 여기로 와 버려."

"진짜 가고 싶다. 생각만 해도 좋다. 한국에 오면 나한테 꼭 연락해."




지금도 우리는 매일 밤, K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한다.

K에게 선한 일에 용기를 내는 친구들을 보내주시기를.

상처가 사라지지 않더라도 그 위에 따뜻한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기를.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의 어깨를 감싸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이 땅의 아픈 아이들을 지켜주시기를.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