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 1994년
지난 학기에 인문학 수업을 들으며 <르완다 대학살>을 연구 발표한 바 있다.
100일 동안 종족 간에 무자비한 학살로 희생자는 공식 보고된 것만 80만 명 이상, 이는 20세기 이후 인류 최대의 살상이고 최악의 비극이었다.
르완다에는 크게 3개의 종족이 있는데, 후투, 투치, 트와족이다. 후트는 농업 민, 투치는 유목민, 트와는 가장 오래된 토착민족이다. 투치족은 키가 크고 콧대가 높고 오뚝했으며, 눈동자 색이 일반 아프리카인들과 달라 식민치하에서 철저한 서양 제국주의의 기준에서 우등한 종족이며 엘리트로 분류되었다. 당시 투치족은 소수 유목민이었으나, 다수의 후투족을 다스리는 권력과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식민시대가 지나고 독립을 이루면서 선거와 투표에 유리한 다수종족인 후투족이 대부분의 권력을 잡았다. 어이없게도 투치에게 권력을 주었던 벨기에가 독립 직후 후투를 지지하고 나섰으며, 과거에 출세나 성공의 기회가 없었던 후투족에게는 오랜 저항감과 부당함 분노를 바탕으로 사회 전반과 정책에서 투치 차별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과거 역사를 모르는 어린아이들은 학교에서 투치라는 이유만으로 수업을 거부당했고, 어른들은 원하는 직장에서 일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가 될 정도로 다양한 차별을 겪게 된 것이다. 과거 교육의 기회, 사회 진출의 기회가 가로막혀있던 후투족은 그 후로 오랜 시간을 투치족에게도 똑같이 그 모든 권한들을 제한했다.
식민시대에 신분증에 종족을 명시하였던 것을 역이용하여 새로운 차별의 시대를 살게 된 것이다.
아무리 뛰어나도 투치족은 그 재능을 살릴 기회가 없다.
이러한 오랜 세월에 거쳐 켜켜이 쌓인 두 종족 간 서로에 대한 혐오가 대학살이라는 비극으로 결론 났다.
후트가 투치를 학살할 당시 그들은 투치족은 인간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의 구호는 '바퀴벌레 박멸' '투치말살'을 외쳤다. 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비인류적인가?
르완다라는 한 국가에서 국민 모두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정부와 군인, 경찰 모두 하나가 되어 투치 말살에 나섰다.
무능하고 악한 권력은 통치를 쉽게 유리하게 하기 위해 '혐오'를 이용한다.
종족 간에 혐오, 그것을 식민지를 다루기 편한 도구로 이용했던 서양의 제국주의 국가들의 인간에 대한 무책임하고 미개한 정신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종족단위의 아프리카를 식민지 삼으면서 사이가 좋지 않은 종족끼리 한 나라로 묶어, 가로세로 반듯하게 대륙에 선을 그러 나라를 나누어 놓은 그들에게도 이 비극의 책임이 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후투족은 투치족을 총, 칼로 죽였다. 바체트라는 낫보다 더 크고 넓은 칼이 사용되었는데, 후투는 투치를 죽일 때 총알도 아깝다며 그 칼로 마구 난도질해 죽이곤 했다.
하루아침에 살인집단이 된 그들은 바로 어제까지 투치족의 이웃이었고, 직장동료였으며 친한 친구들이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눈앞에서 아무 힘없이 죽임 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자신은 후투족에게 끌려다니며 성노예가 되어야 했던 부녀자들의 증언은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었다. 투치족의 한 어린아이는 자기 부모와 가족을 학살하는 후투족 앞에 무릎을 꿇고 다시는 투치족을 하지 않겠다고 싹싹 빌었다는 대목에서 사람 간의 혐오와 증오가 얼마나 큰 저주인지 느낄 수 있었다. 자기는 르완다 국민이지 종족에 대해 알지 못하던 그 어린아이 시절의 경험을 트라우마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사는 것이 더 괴롭다는 청년의 증언도 있었다.
길에는 시체가 즐비했고 아직 목숨이 남은 사람들도 강물에 던져지고 땅에 생매장되기도 하였다. 땅에 큰 구덩이를 만들어 두고 칼에 맞아 쓰러지는 투치족을 쓰레기 치우듯 내던졌는데, 그런 현장의 시체더미에서 살아 나온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집을 읽으며 이런 일이 1994년도에 일어났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다.
미개한 시절에 일어난다 해도 절대 마땅한 일은 아니지만, 이런 슬픈 아프리칸의 역사도 모르고 아프리카를 사랑한다고 자부했던 내 모습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세상에 그 무엇보다 인간의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다.
외모, 지식, 재산, 권력의 수준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질 수 없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고귀하다.
외세의 침입, 식민시대를 거쳐온 슬픔의 역사 가득한 대한민국,
여전히 우리 사회에도 두터운 차별과 선입견 속에 서로 혐오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꽃피는 봄이 오면,
5월이 되면 대한민국 민주화의 시작, 민주화 운동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영화로 드라마로 다큐로
매체를 통해 꽃을 피워 그 꽃잎이 사회 곳곳에 떨어진다.
잊히지 않도록, 힘겹게 아프게 지켜온 민주화 그리고 지금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