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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울 Jun 06. 2024

너를 조금 더 잘 사랑해 보려고

고전문학 강의시간에 <이생규장전>을 배우면서,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뤘다. 교수님은 색종이를 나눠주고 그 위에 각자가 생각하는 사랑을 적으라고 하셨다. 가장 많은 대답은 배려, 희생, 이해.. 그런 것들이었다.

'눈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게 사랑'이라고 적은 사람도 있었다. 또 누구는 '사랑은 두려움'이라고 적었다. 사랑하는 대상이 해를 입을까 봐 두려운 감정, 사랑에는 그런 감정이 있다는 말이다.

마지막에 되어서야, 교수님은 유일한 답변이라며 한 외국인 학생의 글을 읽어주셨다. '나를 사랑하는 것'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적은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지? 싶었다. 나는 사랑을 스스로에게 줘야 한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요즘 내가 가장 큰 애정과 관심을 쏟는 대상은 애인이다. 나랑 애인은 오랫동안 친구였다. 사귀기 전에도 서로를 '그냥 아는' 사람 정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사이였다. 그래서인지 사귀고 나서 서로의 태도가 확 연인으로 변한다기보다는, 가장 편한 연인과 친구 사이를 동시에 느끼고 있다.

사귀고 나서 크게 싸운 일은 없었다. 다만 내가 자주 토라진다거나, 삐지고, 서운함을 느꼈다. 원래 성격 자체가 누구와 싸우지 않고, 화가 나는 일도 속으로 삭이는 편이라 그런지 화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러지 못하고 혼자 토라져버린다. 사실 자주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여자친구와 만나기 시작하곤 나도 놀랄 정도로 자주 삐진다. 

처음에는 제대로 그 상황을 정리하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그것이 내가 상대를 너무 좋아해서 그렇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 같이 편하지만 연인과 친구는 다르다. 친구일 때는 서로에게 '의무'라는 것이 없다. 꼬박꼬박 연락을 할 일도,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얘기해 줄 일도, 애정표현을 해줄 일도, 서로를 위해 시간을 낼 일도 굳이 약속하지 않고, 서로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그런데 연인으로서는 기본적인 '기대'라는 것이 생긴다. 상대가 자주 연락해 주길 바라고, 사소한 일도 공유해주었으면 하고, 내가 한 만큼 애정을 표현해주었으면 하고, 바쁘더라도 나를 신경 써주고, 나를 위해 시간을 내주길 기대하게 된다. 기대가 높아진 만큼, 그 기대가 이뤄지지 않으면 자주 실망하고 서운해진다.

정말 못났지만, 나는 내가 기분 상한 걸 상대가 알아차리길 바란다. 그것 때문에 조금은 죄책감을 느끼고, 반성했으면 한 적도 있다. 너 때문에 나 이렇게 기분이 상했어. 하고. 참 어린 마음이다. 그런데 애인과 나는 정반대의 성격이다. 애인은 모든 일에 호불호가 확실하고, 할 말이 생기면 바로바로 꺼내는 편이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잘 견디지 못할 때가 종종 생긴다. 난 서운해지고, 애인은 짜증이 난다. 얼마 전에는 이런 일로 조금 다툰 적도 있다. (사실 다툼이라기 보단 내가 일방적으로 토라진 거지만..) 친구일 때는 거의 싸운 적이 없는데, 연인이 되고 선 이런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금방 상하는 스스로에게 신기하기도, 짜증이 나기도 했다.

얼마 전 SNS를 내리다가 이효리가 한 방송에서 한 말을 봤다. 가끔 괜히 서운한 마음을 짜증으로 표현할 때가 있다. 사실 난 화난 게 아니라 슬픈 건데 말이다. "난 네가 너무 좋아서 네가 나를 아껴주길 바라는데, 네가 그렇게 말해서 슬프다."가 진짜 마음인 것이다. 사실 나도 네가 너무 좋은 건데, 왜 자꾸 혼자 풀지도 못하게 삐져버리는 걸까.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다행히도 우리에겐 '대화'라는 창이 있다. 우리는 솔직하게 대화하는 법을 조금은 안다. 난 원래 솔직하게 말하기를 어려워하지만, 워낙 솔직한 애인과 오래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모든 걸 솔직하게 표현하게 된다. 이런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대화의 목적은 서로 싸우는 게 아니라, 좋은 방향으로 풀어나가는 것이었으면 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삐지기보다 대화하길 택하려 한다. 싸우려는 태도가 아니라 솔직하자는 태도로..


아직 사랑하는 관계에서 어른스럽기는 어려운 것 같다. 스스로도 너무 집착한다거나 어린애처럼 굴어서 답답해질 때가 있다. 원래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싶은 순간들이 있다. 처음에 뜬금없는 사랑 얘기를 한 건, 사실 나를 먼저 사랑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였다. 교수님은 그 글을 읽어주시면서 "자기를 먼저 사랑해야 다른 사람도 잘 사랑할 수 있다"라고 하셨다. 그 사랑이 없으면 사랑을 줄 때도 제대로 주지 못하고 불안해지곤 한다고. 어떻게 보면 자신에 대한 사랑은 기초공사 같은 것이다. 그게 제대로 되지 않으면 위에 쌓은 것들도 다 무너지고 말아 버린다. 무턱대고 하는 것보다, 아끼는 만큼 사랑을 '잘' 해보고 싶고, '잘' 주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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