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은 자신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만든다.
도전이란 거 거창한 게 아니더라.
‘도전’의 사전적 정의는 1. 정면으로 맞서 싸움을 걺. 2. 어려운 사업이나 기록 경신 따위에 맞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언제나 도전을 어렵게 인식했었다. 도전의 결과는 엄청난 결과를 꼭 도출해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도전을 했을 때 99%가 성공이 될지라 하더라도 1%의 실패 가능성 때문에 언제나 단념하고 유유히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다. 25살이 될 때 까지도 나는 무리한 도전을 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 “ 아 그때 내가 이 기회를 잡았더라면.” 하는 후회를 많이 했다. 사례를 하나 이야기해 보자면, 내가 다닌 대학교는 같은 학비를 내고 중국 대학교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
일정한 학점 이상에 중국어 수업을 들으면 2년 동안 같은 학비를 내고 중국 대학교 기숙사에 살며 중국 캠퍼스를 다니는 것이었다. 그러면 중국 캠퍼스의 복수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는데 생활비며, 당시 남자친구를 두고 가는 것이 두려워 지원조차 해보지 않고 포기했었다.
장기적으로 보았다면 너무 좋은 기회였지만, 당시 생활비를 벌어 쓰던 나는 부모님이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생각과 남아있을 남자친구 생각에 사로잡혀 그냥 그저 머물렀고 그저 그렇게 살았고 헤어졌다.
무언가를 놓는 것도 놓치는 것도, 현실적인 내 상황보다 현실을 더 비관적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특별할 것 없는 대학 시절을 보냈고 졸업할 때가 되어 졸업을 했다. 졸업하면 대부분 취업을 하기 마련이나, 취업하는 것조차도 무서웠다.
내가 이 회사에 들어가면 내가 회사에 도움이 될지, 업무를 수행할 역량이 되는지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없었기 때문에 계속 졸업 후 일 년이 지나도 알바를 전전하며 살았다.
사실, 졸업하기 반년 전부터 몸이 급격하게 안 좋아지고 있었다. 어느 병원을 가도 원인을 모르고 건강검진을 해도 딱 이거다 하는 문제가 없이 몸은 너무나 건강했다.
하지만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기도 하고 몸 위에 무거운 추를 올려놓은 듯 일어나기도 힘들고 집에서 조금 멀리 나가면 몸살이 나서 곧바로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원인 모르는 고통을 1년 정도 겪고 있는 와중에 어느 날은 잠들기 전에 눈을 감고 누우면 죽을 것 같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 순간 신체적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고 두려워하던 정신과의원에 갔다.
난 스트레스성 공황장애를 진단받았다. 잠들면 죽을 것 같은 공포감, 대중교통을 타면 미칠 듯이 뛰는 심장과 멈추지 않는 눈물과 헛구역질, 지나치게 무거워지는몸이 그냥 일어난 게 아니라 내가 방치해 버린 몸이 고장 나서 아프다고 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아픈 줄도 모르고 스스로를 방치했다는 자괴감과 실망감이 나를 더 아프게 했고 쉽게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해 병이 심각해지고 있었다.
당시 자취하고 있던 서울을 도피하듯 떠나 본가로 돌아갔다. 본가로 돌아가니 조금 안정을 찾았지만, 부모님께 들키지 않기 위해 내 방 침대 위에서 끙끙 앓고 헛구역질을 숨기며 살다 보니 마음이 편하질 못했다. 그래서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새로운 것을 시도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느 날 오랜만에 친한 친구들을 만나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는 사실 공황장애를 겪고 있고 집에 있는 게 너무 고통스러운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말이다. 그때 친구는 나에게 ’ 너와 연관된 것에서 떠나 여행을 해봐.‘라고 했다. 혼자 여행 가는 것이 두려울지라도 해보면 좋을 것이라며, 돈이 없으면 빌려줄 테니 무조건 가라고 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3박 4일로 혼자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떠나기 전 공황증세가 올 것을 대비해 필요시 약도 충분히 처방받아 출발했다. 경기도에서 전라남도,전라북도로.
막상 출발하려니 마음이 설레 잠을 많이 못 잤지만 생각보다 컨디션이 좋았고 익숙한 곳을 떠나 맑은 날씨에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니 갓 샤워하고 나온 듯 너무나 개운한 기분이었다.
여름이었지만 시원한 기분이 들었고 혼자였지만 오히려 외롭지 않고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움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동안 차 안은 노래방이 되었고 나의 안식처가 되었다. 혼자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처음이었고 나에게 첫 도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