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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cide Mio Aug 17. 2024

디지털 시대의 생각하는 근육

인공 지능, 특히 언어를 바탕으로 하는 챗GPT 와 같은 도구들을 이용하면 여러 종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도구들은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에 대해 - 그래서 내가 진위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  그럴듯한  글을 써 주기도 하고 내가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논문이나 책을 업로드하고 적절한 프롬트를 입력하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언어로 바꾸어서 쉽게 설명해 주기도 합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계시는 한 교수님은 저명한 학술지에 발표된 자신의 연구 논문을 한 두 페이지로 줄이되 초등학생이 이해할 수는 수준으로 다시 쓰라는 프롬트를 챗GPT 입력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새로 써진 글을 보니 저자인 자신이 보아도 크게  틀린 점은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하시더군요. 이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실제 일반인들의 생활에도 도움이 될 만한 경제학 논문들, 하지만 어려운 학술 용어를 사용한 탓에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든 논문들을 쉽게 설명해서 온라인으로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일을 담당하는 것은  바로 인공 지능입니다. 

이런 식의 인공 지능 활용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도구 사용이겠지요. 하지만 어려운 내용을 인공 지능이 쉽게 설명해 주고 그것을 이용해 정보를 파악하는 이런 과정에서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은 없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고 어렵게 써진  학술 서적이 있고 또 문학 작품 중에서도 읽는 이들을 괴롭히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몇 번이고 같은 단락을 되풀이해서 읽어야 겨우 이해가 되거나 결국 나중에 다시 읽을 요량으로 일단 그 부분을 넘어가야 하는 책들이 있지요. 그렇게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한 채 넘어간 책들이 몇 년 후 어떤 계기를 통해 갑자기 이해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글을 읽을 때면 우리는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최대한 동원해서 그 글의 내용을 이해하려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책이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이러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그 글의 내용도 이해하지만 읽고 해석하고 생각하는 훈련도 동시에 하게 됩니다. 글의 내용을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얻는 점도 많습니다. 어려운 문장들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로 생각하다 보면 글의 내용과는 관계없는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고 그 글의 주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단어 하나 혹은 문장 하나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생각이 더 뻗어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힘든 글을 읽는 순간의 감정 상태와 글을 읽고 있는 환경으로 인해 독자는 저자가 의도하지 않았던 생각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쉽게 설명된 내용을 읽는다면 이런 과정이 전부 생략이 되겠지요.
 

한 권의 책, 혹은 한 편의 논문을 읽고 읽는 사람마다 다른 해석을 할 수도 있고 그 속에서 각자 다른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쉽게 풀어서 설명해 준 내용을 읽을 때는 이런 일을 기대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이 도구를 이용하는 목적에 따라 분명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인공 지능을 이용해서 만들어지는 긍정적인 효과만큼이나 그로 인해 생기는 부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그것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아직 많은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그 속도는 우리가 따라 잡기에 너무 빨라 그것들이 우리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에 미치는 영향을 먼저 파악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면서  변화를 받아 들기는 힘이 듭니다.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나도 느끼지 못하게 내가 바뀌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무서운 일이지요.

다만 적어도 한 가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도구들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물론이고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도 급격하게 바꾸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생기게 될 미래의 모습은 상상하기조차 힘이 듭니다. 전문가들조차 인공 지능을 이용한 유토피아를  이야기하는 이들부터 인류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이들까지 서로 상반된 이야기들을 하고 있으니 일반인들은 그저 듣고 있을 뿐 미래에 대한 어떤 전망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인공 지능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우리는 과다한 정보로 인한 피로를 겪어 왔습니다. 말초적인 자극을 주면서 우리의 관심을 끌려는 인터넷 미디어들로 인해 점점 더 한 가지에 집중하기 힘든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틱톡이나 릴스 등에 소개되는  숏 폼 콘텐츠에는 집중하고 있다고 하실 분들이 계실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우리 의지로 하는 집중이 아니라 의지와 무관한 중독이라고 해야겠지요. 굳이 내가 보고 싶은 영상을 찾을 필요도 없이 알고리즘이 알아서 이어 보내주는 내용들을 수동적으로 보고만 있어도 됩니다. 그러다 보니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힘이 들고 귀찮은 상황에 이르지 않았나 걱정이 될 때도 있습니다.

지금은 기술의 변화가 인해 우리와 우리 사회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더욱더 주의를 기울이고 이런 기술적인 도구들의 사용에 대해 여러 가지를 따져 보고 판단하는 일이 정말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우리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모든 미래의 문제에 대해 기술적인 해결책을 찾으면서 이 모든 문제점들은 기술이 발전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는 말을 하시기도 합니다만 저는 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음모론을 신봉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러한 기술적인 발전이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과 자본에 의해 진행된다면 그들이 제시하는 기술을 이용한 문제 해결법  역시도 기업의 이윤 추구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우리 사회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문제 해결법과는 거리가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이 점을 늘 고려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개개인이 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대비책으로 저는 생각하는 힘을 기르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문제는 점점 주의력이 기울이는 일이 힘들어지는 사회에서 이처럼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더구나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것이 천천히 깊게 생각해서 신중하게 결론을 내기보다는 변화하는 상황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서 빠르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을 원한다는 점도 문제가 될 수 있을 터인데 심지어 그 일도 우리가 가진 생각하는 힘이 먼저 길러져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건강을 위해 매일 운동을 하면서 근육을 기르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매일 훈련을 하다 보면 생각하는 생각 하는 근육이 길러집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은 글 읽기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종이 책을 조심 씩, 하루에 한 페이지라도 읽어 보십시오. 같은 책이라도 모니터를 통해 전자책을 읽을 때와 종이 책을 읽을 때 우리 두뇌의 반등이 다르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 내용을 파악하는 수준도 달라진다는 연구가 있더군요. 물론 이런 내용을 반박하는 연구도 있지만 아직 우리가 아날로그 인간이라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종이에 인쇄된 글을 읽을 때 우리는 훨씬 더 집중하고 깊이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전자 저널과 PDF 형식의 논문이 일반적으로 이용되는 것이 요즈음 학계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런 전자 논문도 깊이 읽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종이에 인쇄를 하는 이들이 더 많습니다. 그만큼 종이에 인쇄된 문자는 우리에게 더 가깝게 와닿고 또 깊은 읽기를 가능하게 해 줍니다.

이렇게 읽을 때는 가능하다면 천천히 읽어 보십시오. 주위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소리를 내어 낭독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천천히 읽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아시게 될 겁니다. 인터넷에 올려진 글들을 홅어가며 얕게 읽는 일에 익숙해진 우리 두뇌는 종이 인쇄물을 읽을 때도 비슷하게 반응하려 할 겁니다. 하지만 최대한 그런 경향을 억누르고 단어 하나하나를 되새기면서 읽다 보면 그냥 건성으로 홅어 볼 때는 찾을 수 없는 내용들이 보입니다. 

읽으면서 글쓴이에게 계속  질문을 던져보십시오. 저자는 무슨 근거로 혹은 어떤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왜 이 단어를 여기서 사용했는지, 나라면 어떤 표현을 했을지,  등등 천천히 읽으면서 해볼 수 있는 생각도 많이 있습니다. 무조건 빨리 많은 정보를 단시간에 얻어야 하다는 강박관념을 잠시라도 벗어두고 천천히 느리게 읽어보십시오.  

반드시 저자가 의도하는 대로 글을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글쓴이의 이야기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글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내 마음에 있는 것을 마치 내가 쓴 것처럼 그대로 글로 표현해 주는 글쓴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도 생각하는 내용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감탄할 만한 그런 이도 있겠지요. 중요한 것은 글을 읽으면서 내 머리로 글쓴이와 대화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읽는 글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고 반응하는 과정은 단순히 글의 내용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두뇌에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러면서 점점 생각하는 근육이 길러집니다. 그리고 이런 운동을 하기에는 아무래도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이 더 낫더군요. 적어도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며 떠오르는 자신의 생각, 혹은 글쓴이와의 대화를 글로 써 보십시오. 할 수 있다면 펜이나 연필로 종이에 먼저 써 보십시오. 인터넷에 올려진 다른 이들의 글을 읽은 후에도 그 내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한 두 줄이라도 손으로 종이에 적어 보십시오.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은 아닙니다만 생각하는 습관이 되어 있지 않으면 처음에는 한 두 줄의 감상을 적는 일도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처음 이 습관을 시작하면서 심한 자괴감에 빠졌었습니다. 단지 몇 줄의 글을 쓰는 게 읽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리고 또 엄청나게 힘든 일이었다는 점도 있었지만 내가 내 머리로 적은 글과 원래 읽었던 내용을 비교하면서 참으로 유치한 제 글에 대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부끄러워서 다시 읽고 싶지 않을 정도로 치졸한 제 글을 보면서 쥐구멍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남들이 읽을 것도 아니고 저 혼자 부끄러우면 되는 일이니,  그러려니 하면서 계속해서 읽고, 생각하고, 대화하고 글로 쓰는  그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다시 내 방식으로 표현하는 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면 그렇게 자신이 적은 글을 블로그든 소셜 미디어든 열린 장소에 다른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공개 해보십시오.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적은 글과 남들이 보는 공간에 올리는 글은 여러 면에서 다릅니다. 그리고 특히 공개를 목적으로 글을 쓸 때는 그 글을 읽는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내 생각을 남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시 표현해 내는 훈련을 하게 됩니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가지고 내 글을 이해하고 해석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최대한 내가 원하는 대로 남들이 읽어 주기를 바라며 글을 쓰게 되지요. 그래서 이것 역시 생각하는 힘을 키울 수 있는 훈련입니다. 특히 내 글을 읽을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전제하고 하는 일이라 자신의 생각을 객관화해보는 훈련도 하게 됩니다.  이런 운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생각하는 근육이 쌓이면 어느 순간부터는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내 머리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고 온라인에 올리는 이유 역시 같은 이유입니다. 사실 10여 년 전 블로그를 몇 년간 운영하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중단한 이후 제 생각을 정리하고 객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진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다시 온라인 공개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 모든 것이 여러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되겠지만 동시에  제 스스로 생각하는 근육을 키우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인공 지능이 토해내는 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과정을 거치면서 천천히 생각하다 보면 그 도구의 장단점을 알게 되고 훨씬 더 우리에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자동차가 등장하고 백여 년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자동차라는 도구는 우리 생활에 필수적인 도구가 되었지만 여전히 자동차가 갈 수 없는 곳을 가기 위해서는 사람의 근육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 사람들은 운동을 합니다. 인공지능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일에도 이런 지혜를 이용할 수 없을까요?


인공 지능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이 가지게 된 질문 중의 한 가지는 과연 인공지능이 내 일자리를 대체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에 대한 답을 최근에 한 팟캐스트에서 들었는데 인공지능이 내 일자리를 대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인공 지능을 이용할 줄 아는 다른 사람들이 내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고 덧붙이더군요. 거기에다가 저는 인공지능을 이용할 줄 알고 제대로 생각하는 힘이 있는 이들이 내 일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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