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CNN의 한 보도에 따르면 인공 지능이 작성한 기사에 마치 사람이 쓴 기사처럼 기자의 이름을 얹고 심한 경우는 인공 지능이 만든 "기자의 사진"과 함께 올리는 “언론사" 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온라인 매체들은 물론이고 기타 여러 소규모 언론사 들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과연 이것이 우리의 미디어 생산과 소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미디어 소비자들은 사람이 직접 생산한 기사에 대해 더 믿음을 준다는 전제 하에서 언론사들은 마치 그 기사가 사람이 작성한 양 그렇게 발표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사의 내용에 대해서는 당연히 제대로 된 사실 확인이나 분석이 없었기 때문에 잘 알려진 매체에서 조차 그런 기사에 있는 실수를 잡아 내지 못하고 그것 때문에 독자들의 조롱을 받는 일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인공 지능 서비스들을 이용해 보신 분들은 경험하셨겠지만 어떤 주제를 던져 주면 인공 지능은 제법 그럴듯하게 말을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그 말이 그럴듯하다고 해서 인공 지능이 그 주제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갖추고 늘어놓는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인공 지능은 프롬트에 이용된 단어들을 바탕으로 확률적으로 계산하여 다음에 나올 말을 연결하는 도구입니다. 그런 확률적인 연결을 만들어내는 인공 지능의 알고리즘에 대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리고 인공 지능이 만들어 내는 글이 그럴싸하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까지 언급을 한다고 해서, 마치 인공 지능이 그 주제를 이해하고 글을 써내는 것 이라고는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런 생각을 피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인공 지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들 조차도 무의식 중에 그것을 의인화하여 이야기하고 사람처럼 말을 하는 인공 지능을 사람에 빗대어 농담을 합니다. 저는 그래서 농담이라도 인공 지능에 대해 사람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삼가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 자신도 인공 지능을 의인화해서 마치 그 속에 생각하고 판단하는 지성적인 존재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될까 두려워서입니다.
인공 지능이 만들어 내는 글뿐만 아니라 이미지도 여러 면에서 우리의 주의력과 제대로 된 판단을 방해합니다. 각 종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에게 소개되는 이미지 중에는 도저히 현실 이라고는 믿기 힘들게 아름답거나 놀랄 만한 이미지들이 있습니다. 도저히 실제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기 힘든 이미지들은 대개의 경우 사실이 아닌 데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주는 새로움 때문에 우리는 중요한 시간과 주의력을 낭비합니다.
그런 이미지에 클릭을 하는 순간 우리의 취향이 어떤 식으로 든 알려지게 되고 그 정보는 기업들 사이에 공유되면서 우리의 관심과 주의력은 그들의 판매 제품이 되겠지요. 그리고 그들이 알고리즘을 이용해서 저에게만 보내는 점점 더 자극적인 유혹에 빠지다 보면 어느새 몇 시간이 흘러버리고 또 우리는 그렇게 낭비한 시간을 아까워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또 그런 자극적인 링크를 보면 저도 모르게 눈이 가고 마우스를 클릭하게 됩니다.
최대한 이런 악순환을 피하려 하다 보니 이제 저는 자극적인 문구와 이미지로 유혹하는 기사나 링크는 점점 더 피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인터넷이나 소셜 미디어 접속을 꺼리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인터넷에 대한 꿈이 사라지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처음 인터넷을 접한 것은 9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윈도 3.1을 쓰면서 모뎀으로 하이텔이나 천리안의 TCP-IP 서비스를 연결하고 넷스케이프라는 웹브라우저로 야후에 들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웹사이트로 이동하는 동안 넷스케이프의 로고에서 흐르던 별들도 생각이 납니다. 그러던 중 윈도 95가 등장하고 제가 다니던 대학교 근처에 그 도시에서 처음으로 인터넷 카페가 생겼습니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당시로는 엄청난 초고속 인터넷이 깔려 있던 그곳에서 저는 많은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로부터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기억하는 작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처음 그 카페가 문을 열었을 때 지역 신문까지 보도되었고 인터넷 시대의 등장을 알리는 상징처럼 여겨졌지만 실제 이용자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손님으로는 저 혼자 앉아서 카페의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가 많았었는데요, 어느 날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분이 오셔서 정보 검색에 대해 사장님께 질문을 하셨고 나름대로 학교에서 인터넷 입문과 정보 검색 강의까지 했던 제가 이런저런 훈수를 두었지요.
손님으로 오셨던 그분은 의학 관련 정보를 찾고 계셨습니다. 그중에서도 특정한 암에 대한 정보를 찾고 계셨는데 그분과 함께 미국 국립 의학 도서관(National Library of Medicine)에서 운영하는 Medline (지금은 Pubmed로 더 잘 알려진) 데이터 베이스에 들어가서 관련 논문들을 검색해 드렸습니다.
그분은 수 십 편에 달하는 논문의 요약 편을 인쇄하시면서 자신의 어머니께서 우리가 검색하고 있는 그 암에 걸리셨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비록 의학을 전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어머니가 암을 앓고 계시다 보니 그것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정보를 찾았고 마침 인터넷이라는 것이 있어서 해외의 최신 정보를 찾을 수 있다고 하니 그곳에 오셔서 도움을 청했던 것이라고 하더군요. 이제 집에 가서 사전을 이용해 가며 하나, 하나 읽을 거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 일을 겪으며 저는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공유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인터넷으로 공유하다 보면 정보를 독점하여 그것을 권력으로 삼는 이들이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어지다 보면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라는 희망까지도 가졌었지요.
그로부터 약 30 년이 지난 지금, 당시 저의 순진한 생각은 어느 정도 현실이 되었지만 그것이 현실이 된 것 이상으로 더 많은 좋지 않은 일들도 함께 현실이 되었습니다.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길을 잃고 있으며 더 이상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고 헤매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정보가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는 것보다 정보가 너무 많아서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정보의 과잉은 단지 우리의 판단을 헷갈리게 할 뿐 만 아니라 우리가 맞다고 생각하는 정보 때문에,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우리가 믿고(싶고) 신뢰하고(싶은) 정보들 만이 맞다고 여기는 우리 생각 때문에 사람들의 사이를 갈라놓았고 자신이 보고, 듣고, 믿는 것에만 사로잡혀 서로 옳다고 싸우게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인공 지능으로 생산해 내는, 정보 아닌 정보가 우리 주위에 가득 차고 더 이상 아무것도 믿기 힘든 사회가 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인터넷을 통해 정보의 평등을 이루고 그것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꿈은 아마 영원히 이룰 수 없는 일이 될 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고 또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더욱더 눈과 귀를 열고 우리 머리로 생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정보를 그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분석하는 능력은 인공 지능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생존 전략이 될 것입니다. 동시에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열어 두고 내 생각과 믿음에 반하는 다른 의견과 정보도 받아들이고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그런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결국 누군가에 의해 조정되는 꼭두각시 같은 존재, 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우리의 주의력과 관심을 아무 대가 없이 주어 버리는 그런 존재가 될 것이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