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다운 도서관
최근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 멋진 도서관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큰 도서관은 물론 작은 도서관까지 도서관에 대한 일반인들과 지방 자치 단체의 관심이 예전에 비해 높아진 것이 분명 사실인 듯합니다. 선거로 당선된 자치 단체의 기관장들에게는 도서관 건립만큼 업적을 자랑하기 쉬운 일도 없지요. 그리고 이유를 짐작하기가 어렵지는 않지만 일부 기업에서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분야의 자료만을 모아서 "도서관"이라 이름 붙이고 "고객"들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읽기보다는 장식용으로 전집 류의 책을 구입하고 남들에게 보이던 이들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책과 분위기 있는 가구들로 장식된 공간에 대한 일종의 낭만 같은 것도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공간 속에서 책을 읽는 분들도 계시지만 각종 소셜 미디어에 올리기 좋은 사진 찍을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곳을 찾아 사진을 찍으러 오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부하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일이겠지만 도서관에서 녹음한 백색 소음을 공유하시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도서관이 아닌 곳에서 공부하더라도 도서관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며 공부하라는 그런 의도 이겠지요. 비록 외국이긴 하지만 도서관에서 일하는 한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도서관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이 고맙고 반갑습니다만 그런 관심이 도서관 건물이나 실내 디자인 등 공간에만 치중된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도서관을 이쁘고 아름답게 만들어서 사진을 찍기에 좋은 장소로 만들고 또 그것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을 방문한다면 그것도 한 편으로는 좋은 일이겠지요. 하지만 도서관은 도서관다워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하다고 하더라도 그 공간이 도서관으로서의 기본적인 기능 즉, 정보(책)를 수집하고 이용자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게 정리 및 가공하고 또 미래를 위해 보존하기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제대로 된 도서관이라고 하기는 힘들겠지요.
종종 외국인들에게도 아주 폼나는 도서관의 대표적인 모습처럼 사진에 찍히는 코엑스의 별마당 "도서관"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제가 한 생각은 "저 높은 서가에 있는 책은 어떻게 옮기고 누가 꺼내 읽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높은 곳에 있는 그 책들이 책이 아니라 책 모형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지요. 물론 별마당 도서관을 정식 도서관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실제로 운영되는 도서관 중에서도 이용자들의 손이 쉽게 닿지 않는 곳에 책을 놓아두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런 공간이 방문객에게 전달하는 메시지 그리고 그 공간 속에서 책에 집중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 등을 생각한다면 그런 식의 실내 디자인이 모두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도서관의 기본적인 역할과 제한된 자원(공간)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어야겠지요. 도서관의 기본은 장서(혹은 소장하고 있는 정보)와 서비스 그리고 공간입니다. 만일 이 세 가지 중에서 순위를 매긴다면 저는 서비스, 장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간을 들겠습니다. 왜냐하면 도서관은 보유하고 있거나 입수 가능한 정보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이어주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는 중국에서 새로 지어지고 있는 여러 도서관에 대해 보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북경과 천진 등에서 새로 문을 연 도서관의 겉모습을 보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이라는 찬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사들의 이면에는 검열과 출판 제한 등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시를 막는 중국 정부가 있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폼나는 도서관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눈이 닿는 곳 어디에나 책으로 가득 찬 벽이 사람들에게 주는 느낌, 그리고 그러한 느낌을 통해 사람들이 도서관에 오게 만들고 그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무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그런 것도 도서관에서 해 볼 수 있는 시도이겠지요.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도서관에서는 기본에 충실했으면 좋겠습니다. 도서관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어진 도서관을 어떻게 도서관답게 운영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관심도 중요합니다.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수 천 개의 도서관 건립에 기부한 앤드류 카네기는 도서관을 지어주는 조건으로 그 지역의 자치 단체에서 도서관을 제대로 운영하는 데 필요한 인력을 고용하고 개관 이후에도 계속 장서 구입을 약속한 곳에만 도서관을 지어주었습니다. 도서관 건물을 짓는 것은 어찌 보면 가장 쉬운 일 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왕에 지어진 도서관을 제대로 도서관답게 관리해 나가는 일은 도서관 종사자 들뿐만 아니라 지역의 주민들과 행정 기관 모두에서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해 나가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명심할 일은 도서관은 돈을 쓰는 곳이라는 점입니다. 어줍지 않은 경제 논리로 도서관에서 벌어드릴 수입을 생각하는 이들이 생각해야 할 일입니다. 도서관에서 만들어 내는 이익은 도서관 그 자체가 아니라 도서관을 찾는 지역 사회의 이용자들 사이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정말 제대로 운영되고 폼(도) 나는 도서관을 만들 수 있습니다.
* 이 글에서 쓰인 이미지는 unsplash.com에서 가져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