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리 알려드립니다. 이 글은 사람의 신체 일부와 그것을 이용해서 만든 책에 대한 것입니다. 읽으시는 분에 따라서는 많이 불편하실 내용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의 표지 이미지로 사용한 사진의 책은 이 글의 내용과는 무관한 구텐베르그 성경입니다.
하버드 대학에 속한 여러 도서관 중에서도 호튼 도서관은 귀중본 서적을 소장하고 관리하는 일에 전문화된 도서관입니다. 이 도서관은 구텐베르크 성경이나 셰익스피어의 퍼스트 폴리오(First Folio)처럼 역사적으로 중요하고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귀중본들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는 죽은 사람의 피부를 채취하여 그것을 가죽으로 만들고 그 가죽을 이용해 책 표지를 만들어 제본한 책도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인피장정(Anthropodermic Binding 혹은 Bibliopegy) 책들은 세계의 여러 도서관이나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데 양피지나 그 외 다른 동물의 가죽으로 제본한 책과 겉모습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저 가죽으로 장정된 오래된 책으로 보입니다. 하버드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 책의 경우는 2014년에 DNA 검사를 통해 이 책 표지의 가죽이 사람이 피부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아마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 당시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흥밋거리의 기사로 보도된 일도 있습니다.
그런 사실이 알려진 후 호사가들의 너무나 많은 관심과 이 책의 제작 과정에서 발견된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이 책은 더 이상 연구자들조차 접근할 수 없는 자료로 관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하버드 대학교에서는 사람 신체의 일부인 이 책의 가죽 장정을 분리하여 고인의 존엄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식으로 처리할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하버드 대학의 발표에 따르면 이 조치는 하버드 대학의 여러 학과와 연구 기관에서 연구용으로 보관하고 있는 인간의 유해 및 유해의 일부에 대한 전체 조사의 결과라고 합니다. 실제 하버드 대학은 물론 많은 미국의 대학에서는 연구 목적으로 수집하거나 혹은 기증에 통해 받은 사람의 신체 일부분들을 보관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고인의 동의 없이 수집되거나 이용된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간 혹 그러한 사실이 매체를 통해 알려지고 대학 당국에서는 그때마다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버드에서는 이런 유해나 유해의 일부에 대해 체계적인 조사를 하고 윤리적인 문제가 있는 경우는 이에 합당한 조치를 취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문제가 된 책은 고인의 동의가 없이 사후에 피부가 제본에 이용되었기 때문에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일이지요. 하버드에서는 이 책을 해체하여 더 이상 직접 이용할 수 없게 했을 뿐 만 아니라 이 책의 표지 사진을 모두 온라인에서 삭제했다고 합니다. 다만 책의 내용은 디지털화해서 온라인으로 읽어 볼 수 있도록 해 두었습니다.
이 책은 19세기말 프랑스에서 인쇄되었고 작가로부터 받은 그 인쇄물은 이 책의 최초 소유자인 한 의사에 의해서 제본되었는데 책 안에는 이 의사가 남긴 메모가 들어 있습니다. 이 책의 주제가 인간의 영혼에 대한 것이니 인간의 가죽으로 표지를 만들어 제본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사의 말은 당시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잔혹하게 들립니다. 제본에 이용된 피부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여성으로부터 나왔다는데 그녀는 인근의 정신병원에서 사망한 환자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책을 20세기 초반, 외교관을 지낸 하버드의 한 졸업생이 구입해서 도서관에 기증을 했고 이 책은 그 이후 쭉 도서관에 보관되어 왔습니다. 과학적으로 검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책 속에 있는 최초 소유자의 메모를 통해 이 책이 사람의 가죽으로 제본한 책이라는 사실은 도서관 내에서 잘 알려져 있었고 심지어 과거에는 신입 직원의 신고식에 이 책이 사용되기도 했었다고도 합니다. 이 책이 어떤 책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고 서가에서 신입 직원이 이 책을 꺼내오게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그 책에 대한 사실을 알게 된 도서관 직원이 어떤 충격을 받았을지는 짐작이 가는 일이지요.
그러고 나서 지난 2014년에 DNA 검사로 이 책을 제본한 가죽의 정체가 확실하게 알려진 이후 하버드 대학 도서관의 블로그에서는 상당히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문구로 이 책에 대한 소개를 했고 그 일은 많은 이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버드 대학 도서관에서는 이러한 과거의 잘못들을 이번 기회에 사과했고 책의 최초 출처와 피부가 사용된 고인에 대해 더 조사하여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남은 유해의 일부가 안식에 들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버드에서는 자체 조사에 따라 이런 조치를 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지난 2014년 이 책의 존재가 대중들에게 알려진 후부터 문제를 제기한 전문가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프린스턴 대학 도서관에서 은퇴한 중세 필사본 및 근대 인쇄물의 전문가인 폴 니담이 있습니다. 폴은 도서관의 역할과 윤리 사이에서 도서관이 선택해야 할 바른 길에 대해 이야기했었습니다. 자료의 보존이라는 도서관의 책무가 윤리에 대한 광범위한 질문에 대해 예외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요.
폴이 주장한 것은 문제가 되는 가죽을 제거하고 다른 재료로 제본을 하여 그 책은 그대로 보존하되 고인의 유해 일부는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활동은 2014년 이 책에 대한 내용이 알려진 이후부터 계속 이어져 왔는데 사실 하버드에서 이 번 조치를 내리기 며칠 전에도 폴은 몇몇 동료들과 함께 공개서한을 하버드에 보내서 이 책의 표지 가죽을 분리해서 고인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처리할 것을 요구했었다고 합니다.
귀중본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들은 그 자료의 보존에 엄청난 노력을 쏟습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과도할 정도의 정성을 기울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은 이 자료들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최대한 손상을 막아 후대에도 이용하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그런 관점에서만 본다면 하버드 대학 도석관의 이번 조치는 예외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연구와 교육을 위해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을 원래의 모습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도서관의 첫 번째 의무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한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하는 행위가 될 때에는 자료 보존의 의무도 이차적인 것으로 돌릴 수 있다는 의미이겠지요.
늦었지만 바른 결정을 내린 하버드 대학 도서관을 지지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도 보기가 좋습니다. 하버드 대학 도서관에서는 이 책과 관련된 정보들을 모두 모아 웹페이지로 정리를 하고 있는데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 번 살펴보셔도 좋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폴 니덤 씨가 하버드 대학 도서관에 이 책에 대한 처리를 요구하면서 한 말입니다.
그는 이러한 윤리적인 문제를 비롯한 모든 종류의 반대하는 의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자료 보존 만을 주장한다면 결코 (도서관)은 윤리적인 조직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었지요. 도서관이 가진 고귀한 사명이 있고 그것을 수행해야 할 임무가 사서들에게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에만 매몰되어 기본적인 윤리와 도덕을 배제하고 임무만 고집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임무와 근본적인 인간의 윤리 사이의 고민은 어떤 직업에서도 생길 수 있는 일입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보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내가 하는 일이 중요하고 그것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윤리에 반할 때 과연 그 일을 계속해야 할까요? 그리고 그것보다 먼저 그런 상황이 생겼을 때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 아래에는 이 글을 위해 참고한 자료들을 링크합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 번 살펴보십시오.
- Literary Hub. “What Should We Do with Books Bound in Human Skin?,” March 28, 2024. https://lithub.com/what-should-we-do-with-books-bound-in-human-skin/
- Needham, Paul. “A Proper Burial.” The New York Review of Books, December 3, 2020. https://www.nybooks.com/articles/2020/12/03/a-proper-burial/
- “Q&A with Houghton Library about the Book Des Destinées de l’âme | Harvard Library.” Accessed March 29, 2024. https://library.harvard.edu/about/news/2024-03-27/qa-houghton-library-about-book-des-destinees-de-lame
- Schuessler, Jennifer, and Julia Jacobs. “Harvard Removes Binding of Human Skin From Book in Its Library.” The New York Times, March 27, 2024, sec. Arts. https://www.nytimes.com/2024/03/27/arts/harvard-human-skin-binding-book.html
- 조선일보. “하버드대, 인간 피부로 만든 19세기 책 표지서 人皮 벗겨냈다.” 조선일보, March 28, 2024.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us/2024/03/28/HZ7VFNCSYNA6JPKWMTWPZ7JUX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