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넷, 드디어 군대를 전역했다. 학교는 자퇴할 생각이다. 나는 글을 쓸 것이다. 강연이 하고 싶다. 단상에 서고 싶다. 사람이 꿈을 품으면 이렇게나 똘망똘망할 수 있구나 싶었다. 이제부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서울에 자취를 시작했다.
군대 안에서 열심히 모아둔 돈은 모두 보증금으로 빠져나갔다. 서울 월세는 또 왜이리 비싼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욕심을 부리지도 않았다. 어차피 혼자살 집이니까. 그냥 집다운 집 찾기도 참 힘들었다. 어찌저찌해서 계약을 했고, 전입신고까지 마쳤다. 이제 해야할 일은 딱 하나였다. 아르바이트... 일단 돈을 벌어야했다. 먹고는 살아야하니까.
알바는 다행히도 빠르게 구했다. 새로 오픈하는 닭갈비집에서 일하게 되었다. 프랜차이즈였는데 이전에 알바를 해봤던 프랜차이즈였다. 덕분에 면접도 없이(?) 바로 합격하게 되었다. 일이 너무 잘풀려서 괜스레 불안했다. 내일이 오픈 날이어서 오늘 하루 일을 배울 겸 출근하기로 했다.
1시 출근이었는데, 여러 서류작업이나 안했던 면접을 하실수도 있으니 조금 일찍 출발했다. 12시 40분쯤 도착해 인사를 드렸다. 사장님께서는 통성명만 하시고 바로 술부터 채우라고 하셨다. 이쯤에서 살짝 위기 감지(?)를 했다. ㅋㅋㅋ
다행히 기우였다. 그냥 사장님께서 오픈 전날이라 이것저것 신경쓸게 많으신 듯 했다. 냉장고 조립을 하고, 술과 음료를 채우고 나니 사장님께서 "이야~ 술 이렇게 예쁘게 잘 채우는 알바생은 오랜만이네" 라고 말씀하셨다. 기습 칭찬에 기분이 살짝 좋기도 했지만, 한 편으론 요즘 알바생들은 술도 제대로 못채우나 싶기도 했다. ㅋㅋㅋ
조금 지나자 알바생 둘이 차례로 들어왔다. 한 분은 여자분, 한 분은 남자분이었다. 앞으로 나와 같이 평일 낮타임에 일하게 될 분들이었다. 같이 일하게 될 사이니까 친해지고 싶었지만, 살짝 낯을 가렸다. 또 첫날부터 너무 다른 알바랑 떠들기엔 눈치도 조금 보였다. 용기내서 이름과 나이만 물어보았다. 서로 통성명을 한 뒤 다시 침묵이 시작되었다. 덕분에 어색한 공기가 가게에 가득찼다.
그렇게 셋 모두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묵묵히 자기 할 일들을 했다. 몰래 몰래 지켜보았는데 둘 다 좋은 사람인 것 같아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도 사장님도 되게 친절하셨다. 이런 사람들과 환경이라면 열심히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재료들도 준비하고, 홀 세팅, 서빙멘트도 배우고, 이런 저런 잡일을 하다보니 벌써 갈 시간이 다 되었다. 그 쯤 되니까 여유가 조금 생겨서 다른 알바들과 이야기를 좀 나눴다. 요즘 젊은이들답게 mbti와 함께 다시 한 번 통성명을 나눴다. 보라씨와 예준씨였다. (둘다 가명)
예준씨가 갑자기 우리 둘에게 여자친구,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었다. 나도 여자친구가 있었고, 보라씨도 남자친구가 있었다. 예준씨가 갑자기 그만둬야겠다며 농담을 던졌다. 둘 다 빵 터졌다. 그랬더니 갑자기 자신도 썸녀가 있다면서 보여주었다. 오늘 데이트 하러 갈 예정이라했다. 참 유쾌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날 무렵 퇴근시간이 되었다. 아직은 어색한 그 셋이서 다같이 가게를 나섰다. 내일 보자며 서로 인사를 나눴다. 그 때 갑자기 이제껏 작은 목소리로만 말했던 보라씨가 큰 소리로 한 마디 했다. "데이트 잘 하고 오세요~" 또 한 번 빵터졌다. 내일이 기대되는 순간이었다.